아니타슈레브장편소설‘조종사의아내’최필원번역,대현문화사9000원376쪽
아무리우리가그것을배반이라부르지말자하고만났다하더라도사랑은양이적고많을뿐일정한몫의자기비밀을등에지고있을수밖에없으니,언젠가때가되면네가나에게이럴수있느냐고따져묻게되는배반의암영이일찌감치드리워있는지도모른다.아무리그가살을맞댄남편이요아내라할지라도‘사람을알아간다는것의불가능성’(302쪽)같은허망함이겨드랑이를간지럽힐때우리는텅빈얼굴로웃을수밖에없지않겠느냐고이소설은말을걸어오고있다.‘사람들이만들어가는구성체의허약함’(〃),예를들어결혼이나가족같은것이실상은얼마나무른지를진지하게생각해라고권하는소설이다.
제목이말해주듯이미국의항공사에서일하는한조종사의아내가주인공이다.캐트린(34세)은뉴잉글랜드에서살면서음악과역사를가르치는교사다.매티라는열다섯살딸이있고,남편잭(49세)은열다섯살연상이다.잘생긴얼굴에다딸을지극정성으로사랑하는남편을아내는인생의안전판으로여기며으레그렇듯안정되고행복한가정을꾸리고있다고믿는다.
그러던어느날새벽3시쯤,남편의항공사에서근무하는노조직원이집으로찾아온다.남편은그시각대서양상공을비행하고있어야할텐데,하고생각하며불길한마음으로문을열어주는안주인에게느닷없는방문객은너무도엄청난비보를전한다.남편잭이조종하던여객기가폭발사고로추락했으며,남편을포함한100여명이아일랜드근해에서몰사했다는것이다.
스포일러(작품의결과를미리알려주는악동)가되기로작정하고말씀드린다면,이소설은비행기추락이문제가아니다.남편에게혹시가정생활에문제가있지는않았느냐,비행기탑승전에술을마시는습관은없었느냐고따져물어오는‘그들’앞에서자신의이성을지켜냈던아내캐트린은그보다훨씬가슴미어지는비밀을하나씩알게된다.
남겨진유품들이단서가돼서드러난결과를추적해보니남편은영국런던에아이를둘씩이나낳으면서딴살림을차리고있었던것이다.남편의숨겨진여인은같은항공사의객실승무원으로일하던아일랜드출신의뮈어볼랜드였다.시신을찾지못한상태에서남편의추도식을치른후볼랜드를찾아간캐트린은이상한감정에휩싸인다.
‘그녀는어째서분노가치밀지않는지궁금했다.칼에깊숙이베어통증조차느껴지지않는경우와비슷했다.그저약간의충격만이느껴질뿐이었다.’(280쪽)
지금까지살아온인생은전부거짓이었다는것을알게되는때(320쪽),그리고이제자신의모든기억(남편을믿고아름다운생을긍정하던)을수정해야하는때(314쪽)에이르면남편의죽음을통보받았을때보다더비참할수있는것이다.통증도비켜갈만큼.
그러나여기까지의얘기도그다음에전개되는얘기에비교하면아무것도아니다.남편은그보다훨씬더엄청난국제적인사건에연루돼있었다.그것은남편의태생과삶의궁극적인철학과깊이관련돼있었고,두곳의여인들과따로가정을꾸리고있던일은오히려사소한일로전락해버릴지경이었다.
시종긴장의끈을놓지못하게만드는긴박감에덧붙여,매장면마다산뜻하게들어있는삶에대한통찰,그리고인물들의감정변화와주인공의심리묘사는가히비교가불가능할만큼압권이다.우아한문체와간결한압축미의황홀함을보이는저자슈레브는둘째치고,최필원의번역문장은오히려슈레브가빚지고있다할정도다.
슬퍼할수없다는게가장견디기힘든분들께,그러나용서해야만하는분들께이소설을권해드린다.
/김광일기자k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