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랜만에이시영시인과
데이트를했습니다.인사동두레에서요.
그분과마주하면늘,자분자분이라는단어가떠오릅니다.
낮은목소리,상대를바라보는투명한눈길,
그러면서조금씩조금씩마주앉은사람의
가슴을훔치는솜씨가가히당대의일인자입니다.
그러면서이시영시인이지난번에냈던시집’바다호수’가
떠올랐습니다.그때제가썼던시집리뷰입니다.
최근에시집사서읽어본지가
어느덧30년이되셨다구요?
시집을돈주고사서읽는다는것을한번도해본적이
없으시다구요?
그러시다면이번이기회네요.
한번해보세요.주머니에서돈을꺼내서
이시영의’바다호수’혹은’은빛호각’이라는시집있느냐고묻고
한권을사서읽어보세요.
세상이그대로있나,아니면뒤집어지나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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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무슨‘보복’처럼한꺼번에몰려왔다.나는그것을밤새워
성실하게받아적었다.”(自序)
문학을복수하기위해서쓰는것은벌써낡았다.이시영<사진>은
늙은나이에그진부함을역으로안고뒹군다.보복하려고쓰는
사람들이넘쳐날때그는시에
보복당하고있다.(내그럴줄알았지.)
이번시집은시를통해서그들(역사에남아야합당한인물들)을
기록
해야겠다고결심하듯쓰는시다.무엇을기록할까?동리에대한섭
함?문구형에대한추모…?
그는적을뿐이고,무엇이기록됐는지엿보는것은독자의의무다.
그는그냥고유명사로엮인시를쓴다.
이보다불과몇달전에나온시집
‘은빛호각’(창비)에서이미독자들이구경한그의풍경이다(내면
이아닌).김병걸,김현,고은,윤흥길,김남주,조태일,송영,
방영웅,청진동,송기원,의왕시서울구치소,용준이….
“잠들면서내려다보니이불밖으로발가락들이모두삐죽이나와있
다/의왕시포일동서울구치소12舍下/과실치사의고단한운전사들
이세상모르고단잠든밤”(‘겨울’전문)
그러니까시큰해지고따스해지려고?그따스함을나누어가지려고?
모르겠다.몰라야한다.결구에서느닷없는테크닉으로,생의비밀을
공유하고싶은것을증폭하기위해,다시한번‘문학적힘’을빼고,
그러니까흡사내려놓듯이울려(共鳴)놓는다.
그를일컬어포스트모던리얼리즘으로타락하고있다고혐의를씌운
다해도그는그냥해죽이웃을것이다.가령이런시다.
“매미들이참열심히도운다/쉬지않고운다/새벽까지운다/소나기
속에서도운다//저러다간여름의책장이다찢어지고말겠다”(‘방학’
전문)
저멀리창비의유니폼을벗고,시적(詩的)장삼(長衫)도벗고,이젠내
시를내옷으로지어입을래,하고말하듯이,생을메모하듯이쓴다.
한때의저항에서이제저항스러움으로넘어갔다가그나마벗어놓는
다.그러니시(詩)가,그러냐,그래한번해볼테냐,하고보복하듯이
몰려오지않을도리가있겠는가.
이번시집의여러페이지에서드러나듯이아프리카에가든,몽골에
가든,저70~80년대로가든,나중에남는심중은비슷하게시로부터
의피폭(被爆)이다.생(生)때문에쓰러지면서도장면(場面)을재빨리
화폭에옮겨놓는아편쟁이화가처럼환멸을감추려한다.
“동몽골고원의얕은여울속을꼬리를툭툭치며거슬러오르는경쾌
한송사리들/그러나그위의협곡에는거대한망각의해가바짝마른
혀를적시며기다리고있다”(‘여름’전문)
그런데이시영의시를읽으면서는조심해야한다.느닷없이터지는
폭소때문에곁에있는사람에게핀잔을들을까염려된다.약간길어
서옮길수는없지만,가령‘광대탈’같은시를읽다가요즘관광버스
안에서의음주가무를갈수록엄중히단속하려드는법령을떠올리면,
아마소리없이허리를꺾으며웃지않을도리가없을것이다.아니
‘노변정담’이라는제목으로쓴시에서황석영의‘쎈구라’얘기는어
떻고.
쉿우리끼리비밀이다.
이시영의이번시는한마디로말하면,(독자들께서그한마디를바라
시는지모르겠지만),한곳에오래서있는선량한허리는굽기마련이
라는점이다.한곳에오래서있으려면욕심이없어야하고,꼿꼿한
것들때문에굽을수밖에없었다는고백이다.
“날저물면호남평야의전봇대들은큰키를수그리고달려가우묵한
마을부터제일먼저불을켜고나옵니다.한곳에너무오래서있다
보니선량한허리도많이굽었습니다만.”(‘변함없는일’전문)
그러다가만나는전라북도장수군번암면에살았다던이시영의친구,
장점현의무덤이야기(‘고향’)를듣고이시집의독자가눈물을삼키
든말든.
이즈음이임영조시인의1주기인가싶은데,이런시가있다.“소년
문구형이아직어린영조형을업고뜰팡에서구슬치기하는꿈을꾸
었다/그런데그곳은어디인가?”(‘관촌수필’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