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가장하찮은잎사귀라고말한작가가있었다.
가장새로운것은언제나가장작은법이기에.”(自序)
시인나희덕교수(조선대)는1997년시집‘그곳이멀지않다’를
냈을때크게호평을받았고,그이듬해김수영문학상의영예를누렸습니다.
그시집을올해다시냈는데,7년전초판서문을보니
“고통을발음하는것조차소란처럼느껴질때가있었다”면서
“끝내절규도침묵도되지못한언어들을여기묶는다”고적고있습니다.
‘얼은붙은호수는아무것도비추지않는다/불빛도산그림자도잃어버렸다
/제단단함의서슬만이빛나고있을뿐/아무것도아무것도품지않는다/
헛되이던진돌멩이들,/새떼대신메아리만쩡쩡날아오른다//네이름을
부르는일이그러했다’(‘천장호에서’전문)
폭넓게말한다면나희덕의시는“덮어주는”시입니다.‘피와온기,절망과
기다림의흔적이낯설고어색할때’면그낯섬과어색함을덮어주고,
‘오랜만에돌아온옛집앞에서누구의이름을불러야할지모를때’는
그영영잃어버린것같은심사를덮어줍니다.
그러나이시집에서가장인상적인첫시일‘천장호에서’를읽으면,
나희덕은덮어주다가또덮어주다가어느순간부터는잠든것들을
일깨우고숨죽인것들을입맞추어숨쉬게한다는것을알수있습니다.
근본의시,사랑의시이므로더욱그러합니다.삼엄한호명으로사랑하는
‘너’혹은‘그’를간명하게부르면서독자의호흡을흔들어버립니다.
한없이신선하면서도따뜻한시어의리듬을타는방법으로나희덕은
삶의치명적인장면(場面)과스토리를정지시킵니다.수십대의카메라가
같은찰나에굳혀놓은듯한신(scene)들이묘한동선(動線)을그리며
떨림을줍니다.
‘피흘리지않았는데/뒤돌아보니/하얀눈위로/상처입은짐승의/
발자국이/나를따라온다//저발자국/내속으로/절뚝거리며들어와/
한마리짐승을키우리//눈녹으면/그제야/몸눕힐양지를/찾아떠나리’
(‘사랑’전문)
결코공유할수없을고통,절망,슬픔같은것들이나희덕의
시상(詩想)으로여과되면서너무도강력하게독자들가슴에물들어
오는것은,그짐승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