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아침,경기도구리시아치울마을에사는
박완서선생을만나고왔습니다.
이번주말에신작장편소설’그남자네집'(현대문학)을
내기때문입니다.
우리시대에문학적으로그리고대중적으로도
가장많은사랑을받고있는
원로작가가아닌가합니다.
그분을동인문학상때문에한달에한번은만나는데요,
지난5년여동안
50여회를만나면서느끼는점은,참뭐랄까,
강단과부드러움을겸비한
작가라는생각입니다.사랑과시새움과진통과애무를
함께지니고있는
복잡한마음속에말을아끼는작가이기도합니다.
어느자리에서건그분의목소리가크게나는것을
본적이없습니다.
그러면서도툭부러져야할부분에서소리를내시고,
또독한한마디가필요할때는입을여시는때도
있습니다.
그리고나이를드실수록아름다움을생각하게
하는면모를보여주십니다.
걸음이요즘들어그렇게경쾌하실수가없습니다.
다음은21일자신문에게재될인터뷰
기사의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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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아차산봉우리에얹힌불덩이같은단풍들은
호시탐탐산기슭으로하산할기회를
엿보고있었다.20일오전소설가박완서(朴婉緖·73)
씨는구리시아천동에오렌지빛으로
외벽을칠한스페인풍자택에서개울건너
산허리를덮은밤나무숲을바라보다말문을
열었다.
“제가족이나저자신이나그만하면행복했습니다.
상처도많이받고그랬지만솔직히
말해요즘죽고싶다고생각했습니다.자다죽었으면
좋겠다고맨날소원하지요.”
‘아주오래된농담’이후4년만에이번주금요일에
내는전작장편‘그남자네집’(현대문학)출간을
코앞에두고가진인터뷰였다.
-이소설은아파트에살던20년연하의후배가서울
돈암동개인주택으로이사했다는대목으로시작합니다.
그곳에놀러갔다가성북경찰서,신선목욕탕,안감내
(安甘川),천주교당같은,50년세월을살아낸것들
때문에처녓적연인이었던‘그남자’의집을
떠올리게된다는얘기입니다.주인공은본인이십니까?
“맞습니다.제가그곳(충신동)에살았습니다.
(자전적요소가)많이있어요.그런데더세련되게
물어주실수없나요?”
-시대는1950년대로넘어가‘암울하고극빈하고
흉흉한전시를견디게한것은내핍도원한도이념도
아니고사치였다.시(詩)였다’는대목에나옵니다.
첫사랑남자와함께시도읽고,마당의꽃도완상하고,
또‘서로부둥켜안고싶을만큼아슬아슬했다’는
추억들이서려있습니다.그러면연애소설이겠네요?
“소설가라면누구나잘쓴연애소설이꿈이에요.
이것을현대의연애풍속으로는잘안되니내가
체험한것을쓴것이지요.”
-등장인물들이모두실존인물이라는말씀인가요?
“그래요.그러나끝까지잘읽어봐주세요.내가
거쳐온시대,가령집이나집의변화같은이야기도
많이나오지요.내가살아낸시대를리얼하게
그리려고많이애썼습니다.”
-첫사랑과헤어진주인공은미군부대군속으로
일하던은행원과결혼하고,주인공자신도
미군부대에서일하던대학생으로나옵니다.1950년대
우리민초들의삶에서미군이나미군부대는
무엇이었습니까?
“친미파·반미파로얽혀있는우리시대도복잡하고
미묘하지만그때는미군욕을하면서미군을
기다리고,치사하지만기대서살았습니다.월급을
제대로받을수있으면서손쉽게취직을할수있는
곳이었지요.그때외화획득이가능했던곳이었습니다.
기지촌경기라는게굉장했거든요.”
-암울했던전후의피폐상황을남성들도움없이
여성들이헤쳐나가는모습이잔망스럽고디테일합니다.
다른전후소설의거대담론이나이념투쟁보다더
실제적이고울림도큰것같습니다.소설에나오는
박수근그림을보듯이요.
“마지막에소설을다시손질하면서주력한게
그때의사회상부분입니다.가령동대문시장을
세밀하게묘사하고엄마들의삶을그대로그리려
했던것들입니다.나는사회소설이라고생각했습니다.
연애얘기는당의(糖衣)입니다.소설에서처럼실제
우리집도조그만집이었지만하숙쳤습니다.
장사도하고요.박수근그림처럼그때여인들은
골목골목항상뭘이고다녔습니다.툭하면젊은
여성들이몸파는데빠지기도쉬웠고요.
이만큼우리가살기까지는여성인력한테빚진게
많습니다.”
-이념보다는삶이앞섰던사람들의얘기라는뜻이세요?
“가령‘그남자’의아버지는좌익인큰아들을따라
월북하고,어머니는국군에간막내아들인
‘그남자’를기다리다서울에남게됩니다.그때의
노부부는손주들과아들들을거들고보살펴주다가
남북으로갈라진것이지무슨이념때문에그런것이
아닙니다.지금까지이국토를지켜낸것은그러한
모정과부정(父情)이아닐까합니다.”
-만약소설속주인공이은행원인실제남편말고
애인이었던‘그남자’와결혼했다면전혀다른
행복을맛볼수있었을까요?
“모르죠,안살아봤으니까.”
-미군부대가다른곳으로이동하자주인공은
‘춘희’라는여동생뻘되는여성에게직장을넘겨
줍니다만,‘춘희’는나중에양공주로전락합니다.
춘희와미군과의관계는마치우리민중들을가슴
아프게상징한다고해석해도좋습니까?
“우리는지금과달리육체적으로늦게성장한듯
성적으로미숙했어요.지금하곤아주다르지요.
주인공은‘춘희’를통해성정체성을생각하기도
했지요.당시엔우리주변에춘희같은인물이얼마나
많았는데요.그상징성은독자들이마음대로읽으시게
놔둘수밖에없을것같습니다.”
-전후피폐상황을이겨내고생계를유지했던것은
결국몸뻬입은여성들의억척스러움이었습니다.
이작품은페미니즘소설입니까?
“좋은소설은자신이의식했든안했든페미니즘
소설이어야한다고생각해요.어떤똑똑한여성들이
페미니스트냐고물었을때아니라고펄펄뛰는모습을
보면야속한생각이들어요.그러면어때서요.
페미니즘이좀좋아요?여자가국회에몇명진출해야
한다는말이아니에요.그냥사람이라이거에요.”
-유난히더웠던지난여름을이소설을쓰는데온통
바쳤으면서도소설을쓰는동안‘연애편지를쓰는
것처럼애틋하고행복했다’고하셨는데왜그랬습니까?
“연애하던시절을되살리는것은행복한일이었어요.
그런연애담을아무렇지도않게말할수있을정도로
늙었다는것도좋은것이고,쓰는사이연애감정을
되살리는것도좋은것이고요.자기에게그런감정이
없었다면써지겠어요?”
-그렇담지금도그런연애감정의상대가있다는
뜻이네요?
“아니그런건아니고요.”
-책머리에이번책출간을‘현대문학50주년에맞추고
싶었다’면서1950년대에문학은‘내마음의연꽃이었
다’고쓰셨던데무슨뜻입니까?
“당시현대문학사는효재동에,우리집은충신동에
있었어요.조그만동네가붙어있었는데,집밖으로
외출할때면으레그앞을지났습니다.조선기와집
유리문앞에현대문학사간판이붙어있었지요.연꽃은
진흙탕속에있어서다가가꺾을수가없잖아요.
그러나있다는것이희망이지요.문학을좋아하는
사람들의특권과도같은것이기도해요.현대문학은
간판만보고도나에게축복이었습니다.데뷰할때(1970)
‘현대문학같은데에1년에한두번단편을쓸수
있는작가가됐으면좋겠다’는게내소감이었을
정도입니다.”
-오랜만에쓰는장편이신데선생님의글과책을
좋아하는독자들에게전하고싶은말씀이있는지요?
“이번소설은제가특히공들여썼습니다.문장을
맛을느끼며느릿느릿읽어주시길바랍니다.”
-일흔이넘어서이토록섬세하고왕성한글쓰기가
가능한비결은무엇입니까?
“열정인가노욕인가구별할수없는경지였습니다.
그러나이런인터뷰가부담스러워책이나오는때쯤
뉴질랜드에가있으려고교묘하게시간표를짰는데
그만출판사에서서둘러냈군요.(웃음)”
-가령2004년현재상황을재료로소설을쓰신다면
무슨얘기를하게될것같습니까?
“지금젊은이를주인공으로는못쓰겠어요.
그들에게중요한소통수단들이저에게거부감을
줍니다.또제가좋아하는고전을딸과는공유하지만
손자와는공유를못합니다.”
-지금행복하세요?첫째작가로서,둘째시민의
한사람으로,세째사회의원로로서…..
“첫째는‘예’.둘째는‘걱정이많이됩니다.’
세째는‘더살면무슨꼴을보나하는생각을할
때가많아요.제가원로소리들을만큼늙었는데,
돌아보니힘들때도많았지만우리는고비를잘
넘겼습니다.뒷걸음칠때도있지만조금씩나아지는
게아닌가합니다.그렇게까지비관은안합니다.’
/구리=김광일기자k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