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과 보트렐의 만남

이청준과보트렐이만났습니다.보트렐은세계스페인문학계에서매주중요한

인물입니다.그가돈키호테400주년기념행사에참석하러서울에왔습니다.
여러행사들중에서가장중요한행사가제11회세르반테스국제학술회의입니다.

이번서울회의가동양에서열리는첫회의일만큼우리쪽에는기회가드물었지만

스페인문학을전공하는학자들을포함해서,그쪽일을잘아시는분들은

"세르반테스학회"야말로스페인문학,나아가중남미문학에서핵심적인역할을

하고있는단체라는점을확인해주고있습니다.

그회의를포함해서전체적인스페인어문학을통솔하고있는세계스페인어문학회회장

이라는직함은우리문학의세계화를생각하는측면에서볼때

결코가볍게대접할수없는세계문화계의중요인사가되는셈입니다.

그런데,그가마침이청준의불어판소설’이어도’를읽었고,그것도

대단히감동을받았다고한것입니다.

이얘기를한국문학번역원의진형준원장과나누다가,진원장이그렇다면

이청준선생을한번만나보지않겠느냐고보트렐에게제안했고,두사람의만남이

이루어진것입니다.

서울대호암교수회관에서지난11월19일낮12,점심식사를곁들인자리였습니다.

그때우리나라의대표적인작가인이청준과,세계문학의흐름을주도하고해석하는

일에서큰몫을해내고있는보트렐교수의대담을거의빼놓지않고정리한글이

다음입니다.일반분들에게는별로소용이닿지않을수도있지만,관심있는분에게는

좋은참고자료가될수도있겠다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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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청준(李淸俊·65)과‘세계스페인어문학회’회장장프랑수아보트렐(Botrel·62)이11월19일만났다.프랑스렌느2대학총장을지냈으며,현재스페인어문학계에세계적거두인보트렐은‘동키호테400주년’을맞아제11차세계세르반테스학술회의에참석하러서울에왔다.보트렐은한국에오기전불어판이청준소설‘이어도’를감명깊게읽었다고말했다.먼저보트렐이말했다.
-(보)‘이어도’에서죽은기자의부인이이어도타령을하는데,“이어도라이어도라”는대목을한국말로알수는없었으나충분히느낄수는있었다.
-(이)라디오에서이어도민요를듣고쓴소설이다.
-(보)이어도를모르는데도작품의핵심을이해할수있었다.
-(이)결국섬사람들의삶과운명을얘기한것이다.가사내용을따라율조와곡조는물론이고작품형태가오다시피했다.
-(보)그대목을읽으면서민요에서모든게시작됐을것이라생각했다.
-(이)천재적인독자몇명만있으면작가는.
-(보)과찬이다.독자도두번째창조자이긴하지만위계질서가있다.소설가가뭔가를주었기에독자도뭔가를할수있었다.
-(이)당신은스페인태생인가?
-(보)아니다.프랑스브르타뉴출신이다.두바다를낀해안지대다.이소설도섬의부재,주인공의부재를보면서섬사람특유의호소력을느낄수있었다.
-(이)나도그렇고내동료들도그렇고현대소설을베끼기시작한것이돈키호테다.베끼는첫대상이었다.세계적인소설문학의이해방식이거기서출발한다.사실돈키호테를안읽었다해도‘그이후작가’들이줄곧돈키호테를베꼈기때문에‘그이후작가’를읽으면돈키호테를베끼는것과같다.
-(보)‘이어도’란작품은절대적인것에대한갈망,부재에대한갈망을그린작품이다.놀라운형이상학적상상력을봤다.어떤현대작가에게도찾을수없는것이기에감동적이었다.인류가다가갈수없는그무엇이있었다.그맥락에서본다면돈키호테와비슷하다.죽음이완성된것이아니라,죽음뒤에도수많은질문들이남아있다는태도다.프랑스독자로서당신의번역된작품을읽으면서속상한점이있었다.원어를모르니글의흐름,한국적의미,소리의배치를느낄수없었다.그러나세계문학의추세는보편성에있다.‘이어도’를읽으면서나는내고향브르타뉴지방사람들의삶을엿볼수있었다.특히부재에대한갈망이그렇다.참을수없는부재는모든곳에있다.브르타뉴도이어도처럼없음을참지못한다.이어도에나오는천남석기자처럼사라지고실종된다는상황이그렇다.브르타뉴에서는실종자를위해왁스로시신을만드는풍습이있다.왁스모형으로임종을지키다장례를치른다.죽은사람의실질적몸이없다는것이너무도견디기힘들기때문이다.‘이어도’에서도아무것도없다는것이너무견딜수없었다.그렇기에고통을받는것이다.
-(이)부재의갈망으로읽어주시니‘이어도’에한겹의의미를덧붙인것이라고생각된다.천남석이다시떠밀려오는것은고통의감내가죽음으로해결되지않고다시돌아온다는의미다.제주도라는삶의마당을견딜수없으니구원의대상으로섬을만들고,그마음속에있는것을찾으러갔는데,시신이다시밀려온것이다.찾으러간것이허상이고,구원이라생각했던것이다시삶으로돌아온셈이다.부재에대한꿈이라도지녀야현실을견디는것이다.우리나라에는씻김굿이있다.죽은망자를위해죽음을되풀이하는것은망자를못보내는원통함을씻기위해죽음을한번더치르는것이다.그렇게죽음을견딘다.그후에현상의삶,일상의삶으로되돌아오는것이다.우리도떠난사람의시신을못찾으면제웅이라는것을만든다.
(이청준은작품‘이어도’에나오는이어도타령을두가지로실연해보였다.첫번째는여자들이하는타령으로,그리고두번째는연극으로상연됐을때노래로.)
-(보)번역판을읽었지만몇부분글이시적이었다.천기자가과거어린시절을회상하는부분은너무아름다워서두번이나읽었다.내가두번이나읽는경우는거의없다.
-(이)자기가신명나서쓰는부분은남도편하게읽는다.자기속에서우러나서쓴부분은그렇다.제주도를배경으로신명을내면서느꼈던것은부재와결핍의운명때문이었다.
-(보)사람이라는섬도그렇지않은가.사람이라는섬에도부재와결핍이있으니.
-(이)문학이란바로그부재를채우려는노력이고시도다.
-(보)내가책을읽으면서느꼈던것이작가의의도와일치하니자랑스럽다.
-(이)장르의벽을허무는것이대화다.활자문학이사이버공간때문에위기를느끼고있는것에대해보트렐선생은그것을어떻게생각하는지궁금하다.우리는소설이그림과대화를한다.문학의영역을확장하려는시도다.
-(보)나는사이버문학의추세를수용하지않을것이다.책을손에잡고있는것을좋아한다.스크린으로책읽는것은생각도않는다.나는낙후된사람으로살아갈것이다.언어의벽은통역과번역으로어느정도해소될것이다.그러나창작자의세계는인쇄,음악,그림과같은분야별로분리된공간에서사는것이아니다.오직대학에서만그것을분리하고있다.독자들은,남자여자분리안하고수용하고있는데,오직대학만그렇게하고있다.
-(이)그게인생이고세계다.결국은나누지않고수용하는것이다.나는미술하는친구,판소리하는친구,영화하는친구가많다.작품을그쪽으로옮겨서작업하는경우도많다.
(이청준은보트렐에게농담을했다.“머리가벗겨지면호인,하얘지면젊잖다고하는데,두가지를한꺼번에는못하게돼있다.그런데보트렐씨는두가지를한꺼번에다했다.”“내가지혜로운사람이어서그렇다.하하”“좋아하는사람에게는연필로사인해서책을주고좋아하지않는사람에게는볼펜으로한다.볼펜은변한다.”)
-(보)속상한작가가비평가가된다고하는데,죽은작가,과거작가의작품에자기생각을강요하는비평가가많다.
-(이)비평가에는세종류가있다.작가의의도도못읽는비평가,의도를정확히읽는비평가,의도를넘어서재구성을하고재창작을하는비평가다.세번째가대단히고맙다.다른곳에가서작품을설명할때그비평을소개한다.그런경우나는그를선생이라고부른다.‘이어도’를두고유토피아를부재라고했을때훨씬더개념이확장됐다.
-(보)절대용납할수없는비평가는강요하는비평가다.그런비평가가대학에많다.
-(이)정치적이기때문이다.어떤분야가자기를닫고,자기안에쌓아올리려고한다면,문학은문을열고자기안의것을덜어내려고한다.그래서낙관적인것이다.강요하는것은틀을만드는데그것은비문학적인것이다.그것이집단화할때도그마혹은이데올로기로타락한다.문학은풀어주고넓게해주고열어주려고하는것이다.
-(보)사실창작자는지배세력에대해투쟁하려는상황에있다.창작자는주류사회에끼어들지않고다수의견을따르지않는비주류다.갈등상황은끝이없다.이러한긴장관계가필요하다.
(보트렐이이번에는불어로‘이어도’에서천기자가어렸을때엄마를회상하는대목을읽었다.이청준에게그음감을느껴보라고한것이다.)
-(이)섬이꿈꾸기좋다.삶을가두어놓기때문이다.
-(보)불행한장소가섬이다.
-(이)그렇다.‘당신들의천국’이대표적이다.
-(보)나는2년반동안프랑스남쪽섬에살았다.섬사람을보면그들은섬을떠나려몸부림치거나거꾸로아주폐쇄적이다.
-(이)그렇지.무의식적으로다른섬을꿈꾸기도한다.
(이청준은점심반주로소주를시켰고보트렐에게두번째잔을권했다.괜찮겠느냐고물었다.)
-(보)나는술이문화인나라에서왔다.상관없다.문화라는것은술을안마시면옆에있는사람이너아프니?라고물을정도다.
-(이)나도저녁에술을마신다.내가술을안먹으면아내가불안해한다.
-(보)포도주를마시면영감을얻는다.보들레르의‘인위적인천국’까지는아닐지라도.
-(이)이소주를한잔더하면오늘오후는천국갈것이다.
-(보)애써보겠다.
-(이)내소설‘서편제’에는예술을위해눈을바치는얘기가나온다.그런데프랑스의한문학교수인무샤가영웅은신에게바친다는말을해주었다.문학은밤산길을헤매고있는데,서로연결하고알게해주는위안을준다.
-(보)글을쓰는작가는낚시꾼이다.글을던지고엮어지길바란다.독자가많으면보상이큰것이다.독자가많아지는것,다양해지는것이세계로뻗어가는길이다.작은바다가대양이되는것이다.나도번역을해보지만,내가번역작가가되는순간,내가참글을잘쓴다는생각도든다.
-(이)창작은되돌아갈수있지만,번역은되돌아갈수없다.원작이라는벽이턱가로막고있다.
-(보)사실윤리적이지않은번역가도많다.원작의속성을바꿔버린다.출판사도문제다.대중성없고난해한부분은빼고텍스트특성을바꿔버린다.강요해서는안된다.
-(이)판권문제가있어서한번잘못된번역은바꾸기도쉽지않다.
-(보)작가는자기작품의소유주가아니다.
-(이)지난30~40년을작가로보내고보니작품이자꾸살쪄간다는것을알수있었다.의미를획득하고살아남으면서작가와상관없이다시쓰여지는것이다.
-(보)텍스트를나중에바꿔쓸수있다고보는가?불변인가,변동가능인가?
-(이)변할수있다고생각한다.앞엣것을다지우면안되지만.한국어는흐름이급해서30년전독자와대화를하려면요즘어법으로문장을조금다듬는다.바꾸는것이정직하지못한게아닌가하는생각도있다.그러나그전에바꾸는곳에표시를해준다면독자는작가가달리생각하는궤적을추적할수도있다.그경우엔바꾸는것이가능하다고본다.물론주제까지바꾸는것은안된다.그러나저러나지난것을바꾸고있기보다는새것을쓰는게낫겠다.
-(보)표시남기고수정하는작업은문학의유전학을공부하는문학도에게는큰자료가될것이다.
(둘은또술한잔을마셨다.)
-(보)브레타뷰우리집에오면42도짜리사과술을대접하겠다.
-(이)우리에게도‘화주’가있다.
-(보)나를서울로초청한한국문학번역원같은문학기구의역할을작가입장에서는어떻게생각하는가?
-(이)역할이야커질것이다.작업이초기단계다.좋은작품을많이번역하는게중요하다.통로를마련하는것이다.지속적인사업으로서연결성을갖고해외독자가체계적으로읽을수있는프로그램을만들었으면한다.
-(보)작가로서독일어,영어로된자신의번역작품을읽어보고싶지않는가?
-(이)책이나오기전에는엄두를낼수없고,다만책이나온후에는이렇게번역되는구나,더효과적인부분은이런부분이구나,하는곳을부분적으로들여다본다.
-(보)그것은내가말하고있는텍스트의상대성원리와도맞는다.
-(이)이청준의나쁜소설이나쁜번역으로나가면그독자는다시는이청준을안읽을것이다.다른모든문학영역이마찬가지다.그러므로좋은부분부터엮어지는번역체계가있어야할것이다.덧붙여서통화(대화)의의외성이라는것도그때생길수있다.제주도의밭매는장면은같은것은우리에게는상투적이라고할만큼일상화돼있는데,보트렐은특이한정서로읽으니,외국독자와의대화가참중요하다는생각이다.그때야비로소내눈으로나를읽게되는단계가오는것이고.
-(보)서양사람이한국소설을읽으면이름이외는전부이국적이겠다고생각할지모른다.그러나‘이어도’는이국적이라기보다시간을초월하는뭔가를잡은느낌이었다.
-(이)우리는서구문학을어지간히알지만,서구는우리를잘모른다.농담으로말한다면,서구는우리보다숙제꺼리가더많을것이다.
-(보)정말그렇다.한국문학이악트쉬드를통해소개되지만.
-(이)이제시작이다.
-(보)그렇다.유럽은아시아가존재하고있다는것을발견하고있는게아닌가한다.
/김광일기자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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