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 소설을 재밌게 읽는 법

소설가서정인의작품은’달궁’과’용병대장’을떠올릴수있을텐데요

일반적으로알려져있는그의인상은,어렵다,현학적이다,실험적이다,

등등인데요.저는이것이모두평론가들의도그마혹은관습에서비롯된장애라고생각합니다.

서정인의작품은누구소설보다쉽고,재밌고,친근합니다.

그렇다면서정인을어떻게읽으면그의작품이쉽고재밌고친근해지는지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음율을타야합니다.리듬이라도해도좋습니다.타이거우즈에물어보세요.골프에서제일중요한게뭐냐고요.주식시장의대부인아무개아무개한테물어보세요.주식투자에서제일중요한게뭐냐고요.그들의한결같은답변은리듬입니다.리듬을잘타면,모든게순조롭고쉽지만,리듬을놓치면굉장히까다로워보입니다.서정인의작품에서제일중요한것이리듬입니다.그의작품을처음몇장은조용히소리내서읽어보십시오.그러면서정인이채택하고있는문장의내재율같은것,혹은판소리를차용한듯한,혹은우리몸에집단무의식처럼대물림하고있는어떤울렁거림같은것이희미하게느껴질것입니다.만약그런느낌이없다면,당신은한국인이아닐지도모른다고의심해도좋을만큼그러한리듬은반드시발견될것입니다.어떤작가에게인들그러한리듬이없겠습니까만,제가생각하기엔,서정인의작품에서그러한리듬감이제일강렬하다는것이고,서정인의작품은,어쩌면주제,소재,문체같은것보다도그리듬이가장중요한요소가아닐까생각된다는것입니다.그리듬을발견하게되고,그리듬에당신의몸을한번싣기만하면,그다음부터는서정인의작품이너무도꿀떡처럼달디달게재밌을것이고,책을쉽사리손에놓을수가없을것입니다.

둘째.서정인에관해서평론가들이미리말해놓은것들을가급적무시하기바랍니다.그분들의말이틀렸다는것이아닙니다.그분들은그분들대로채택한방식이있을뿐입니다.복잡한문학이론을펼치기에서정인의작품이안성맞춤일뿐입니다.저는일반인으로서,그리고문학동호인으로서서정인을읽는방식은문학전문가들의방식과는같을필요도없으며,심지어전혀달라야한다고생각하는쪽입니다.강단에서그들이주고받는얘기들은그들을위한것이고,문학의최첨단을조금밀어올리는노력일뿐입니다.우리는문학을가지고,문학의진로를책임질일은없지않습니까.문학을즐기고,문학에기대서내삶을향유하고,그리고문학때문에내인생이조금바뀌면되지않겠습니까.

다음은서정인의최근작’모구실’을읽고나서북섹션에실었던리뷰기사입니다.내키시면일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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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소설‘모구실’현대문학418쪽9000원

최인호식으로말해서,이상한일이다,참으로이상한일이다.가슴에와닿는문장만있는줄알았는데,알고보니혀에감기는문장도있었다.등단42년을맞는서정인의열네번째책‘모구실’은독자가읽어갈수록입안에든혀가자꾸꿈틀거리고,소설문장을소리내서말하고싶은욕망이간지럼을탔다.라디오연속극으로낭송해도좋을만큼너무나이야기스럽고재미가넘쳤다.
굳이연작형식을띠면서도‘모구실’‘진료소’‘수련원’같은3글자소제목을따라열네토막으로나뉜이작품은각토막이또울타리를친한가지씩의이야기틀을갖추고있었다.이토막들이지난3년동안현대문학,동서문학,문학과사회,21세기문학,창비같은문예지에단편들처럼발표됐던것이고,이번에저자가다시손질해서장편으로묶은것이다.
등장인물은딱세명이다.쉰을넘긴천수건은대학교수다.어느날그는산간벽촌에있는마을모구실을찾아간다.딸이그곳보건소의소장으로있기때문이다.딸은아비와소식을끊고잠적하다시피들어와있다.그마을에는폐교가하나있는데그곳을지키고있는남자가두번째중요인물인서존만이다.우연히만나게된천수건과서존만은술잔을기울이고,이마을의허름한점방집아들인조성달이끼어든다.그들은어느새‘초면이구면이고구면이초면이되는’술친구가된다.
세남자는진료소,수련원,섬진강,동사무소같은곳으로아주느릿느릿장소를옮겨가며술판을벌인다.그들은흡사아라비안나이트의셰헤라자데처럼이세상살이와얽혀있는온갖이야기를안주삼으며,그곳에동서고금의신화와고대역사를꿰뚫는다채로운이야기를다시얹어놓는다.
이번소설을‘달궁’시리즈의세장편(1987·1988·1990)들과,저번장편‘용병대장’(2000)을아우르는서정인의대표작이라고불러보는이유는,서정인의작품을경험한독자든아니든상관없이,그의전모(全貌)를맛볼수있는요소들이녹아있기때문이다.우선이번책에는요즘의세태비평이전편을흐른다.저자는비유나비평이아니면말하지않는다.노드럽프라이가“비평의본령은현재도그렇고앞으로도그럴것이지만,바로해석이다”라고말했듯이서정인은박상륭같은내재율과,움베르토에코같은종횡무진을풀어놓으면서“정의(定義)가들어갈수없을만큼작은틈바구니에”(G.K.체스터턴)독특한비평을아로새긴다.그는도덕사회,정의사회,공평사회를부르짖는당대의깃발들을희롱하면서“없는세상을위해지금있는세상을버리랴,나는안버린다”(160쪽)는다짐을반복한다.
누구의아들놈은몇년이넘도록찾아오지도않는다는얘기,누구의모친은개가를했다는얘기,누구는여자고등학교에명사특강을해달라는초청을받았다는얘기,문닫은음식점에들어가밥상차려내는얘기들이두서없이흐른다.심지어나이차이에따른호칭문제,있는사람들별장얘기,벌초얘기도끼어든다.‘인간’의의사소통은애시당초언어나문법과는관계없고,다만정황(情況)이있을뿐이라는큰전제에기대서‘인물’들은횡설수설한다.
인류역사와삼라만상에대한천의무봉이요일필휘지같지만급기야연륜이지친듯말이헛샌다.서정인은바로그지점,말이헛새는곳에말맛의리듬을살리고,산문진경의미학을독자와공유한다.
그리듬을따라독자들이귀와혀를풀어놓으면,서정인은신화시절부터비롯된역사·철학·문학의흥미진진한에피소드를언어의바다위로해학이라는쪽배에실어띄운다.그래야독(毒)을품은말들이공격성을포기하고,비평또한퇴로를열면서흔들거린다.그때“세상에는둘다맞기도하고,둘다틀리기도한것이많다”(117쪽)는,고급한상대주의요,혼돈스러운질서인작가의생각들이자리를잡는것이다.
문장의기운은퍼졌지만붓끝이마르지는않는다.서정인은그때가말흩뜨리기를그만둘때라는것을알고있다.사십년웃돈경험에얻은문학적악력인셈이다.술기운이뱃속으로퍼졌지만아직취하지는않은때처럼(55쪽).
/김광일기자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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