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시집얘기를좀할까합니다.
함민복의’말랑말랑한힘'(문학세계사),
박남준의’다만흘러가는것들을듣는다'(문학동네),
김사인의’밤에쓰는편지'(문학동네)
이렇게세권입니다.
골라놓고보니모두남성시인의작품이네요.함민복의것은신작시집이고,박남준과김사인의작품은예전에나왔던것을개정판으로낸것입니다.
시집에는대개수작이한둘있습니다.명편이라고도하고,절창이라고도하는작품입니다.남들이동의하든안하든저혼자좋은시가있는가하면대체적으로다른사람들도동의하는보석같은작품이있기도합니다.그시를어떻게읽어내느냐는별도로하고요.
우선함민복의시집에서하나만고르라면,저같은사람은’낚시이후’라는작품을꼽겠습니다.
낚시이후
늦게일어나수돗가에나가보니
고무대야에피라미와붕어가떠있다
죽음을머리위에허옇게인
잉어가아가미를움직인다
그늘흔드는
지느러미
두려웠나물밖으로뛰쳐나와
죽음속으로헤엄쳐간잔고기몇마리
부패와호흡이한물속이고
심장들은제자리뜀으로경계를넘는다
—-이시는삶의본능과죽음의그림자가기껏고무대야속에서엉켜있는모습으로그려져있습니다.동물들은이렇게순박하게자연사를합니다.우리에게그것이비참으로비쳐질지몰라도동물들은그것을"받아들"입니다.
다음은박남준의시집에서한편을고르겠습니다.
눈길
그눈길을걸어아주떠나간사람이있었다
눈녹은발자국마다마른풀잎들머리풀고쓰러져
한쪽으로만오직한편으로만젖어가던날이있었다
——눈내린언덕을보면,대개사람발자국이나있는곳부터먼저녹기시작하잖아요.그곳에는눈때문에가려있던마른풀잎이먼저녹은공간을찾아서마른머리를풀고바람을맞이하고있고요.그런데,그때쯤그발자국의주인공이시인의마음을아리게하고있는것입니다.깊은산중에살고있는박남준시인을찾아와이젠도회로돌아가자고설득한사람일수도있고요,반대로박남준시인이그곳에머물러보자고잡아준소매를뿌리치고황황히저혼자어디론가떠나간사람일수도있겠지요.아뭏든서로기쁨으로포옹을나눈채헤어진사이는아니고요,혼자떠나며슬픈등허리를보인사람임에틀림없네요.왜냐고요?한쪽으로만한편으로만젖어가던날이었기때문이지요.무엇이젖었냐고요?모르겠어요.제가알게뭐예요.가슴이젖든,눈시울이젖든,땀찬등허리가젖든,어딘가젖었을테지요.그리고시인도혼자울었을테지요.다신오지말라고요.
다음은김사인의시집에서한편을고르겠습니다.
밤에쓰는편지3
한강아
강가에나아가가만히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이처럼작은목소리에는
대답하지않습니다돌아보지도않습니다
떨리는목소리나값싼눈물몇낱으로
저큰슬픔을부를수는없을것입니다
진즉알고는있었습니다
한강아
부르면서나는무엇을또기대했던것인지요
큰손바닥과다정한목소리를기다렸던것인지요
저통곡의잔등곁에서
나도한줄기강이어야합니다
나도큰슬픔으로누워
머리풀고나란히흘러야합니다
——김사인은순하고무서운사람입니다.이문재가그렇게말했습니다.시인은이시에서역사의흐름과,그과업과,그무게를가늠하다가자신이적극적으로동참하지못하는데서오는,혹은그렇다고믿기때문에발생하는고통을스스로삭이고있습니다.한강은이시에서그렇게커다란슬픔과,커다란과업과,커다란운명을상징하고있다고보아야옳겠습니다.시인은그한강을불러봅니다.한강아,하고말이지요.그런데한강을들은척도하지않습니다.한강은시인에게허위를벗어던지라고꾸중하는것만같습니다.강가에와서용기없이작은목소리나값싼동정심따위를보이지는말고,너도바짓가랑이를걷고한줄기강처럼흘러가라고권하고있습니다.내면에서들려오는목소리인듯합니다.큰슬픔으로누워서머리풀고나란히흘러가자고권하고있습니다.
혹시이번주에우연히책방에들러서새로나온시집을고르시려거든이세권을한번살펴보십시오.
예?책방에가서시집을사면혹시누가안잡아가느냐고요?
혹시모르죠.유통만능주의가모든상상력을제패하고있는이때아직도철딱써니없이책방에서시집이나넘겨보고있는사람들을때려잡을홍두깨를누군가준비하고있는지도요.조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