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1)
때론그런책이있습니다.첫페이지부터목젖이보이도록웃기는책,그런데차츰독자의심장을쥐었다놓는,그런뭉클함으로자세를고쳐앉게만드는책말입니다.아네테괴틀리허(AnetteGoettlicher)라는독일작가가쓴‘파울,도대체네가뭔데?’(북스토리)라는책을권해드립니다.퇴근무렵편집국책상에서한두장넘기다가,어이책좀봐라,하고집으로챙겨갔다가,저녁식탁에서책에코박고있다고꾸중들어가며계속읽다가,침대–>화장실–>거실소파–>서재로돌아와독파하게되는책입니다.
잡지사프리랜서로일하는여주인공마리잔트만은스물여덟살입니다.독일문학을전공하고있고석사과정을밟고있지요.마리는서른여섯살남자와첫데이트를하던야외맥주집에서아주달콤하고긴키스를하는데까지발전합니다.남자이름이책제목에나오는파울입니다.국제적인봉사단체에서일하고있습니다.
마리는이번엔정말남자를제대로낚기위해‘내’가먼저애정표현을하지않으려고애씁니다.그러나마리는파울에게서전화가오지않자,초조하게그를둘러싼상상의나래를펼쳐보는것으로소설은시작합니다.일기형식이지요.
마리는컴퓨터를켜고구글검색창에다‘그는왜전화를안하는걸까?’라고칩니다.앗,그랬더니이게웬일입니까?검색결과가뜬것입니다.세상에!이런검색문구를두드린게‘내’가처음은아니었던것입니다.마리는빨간색골루아즈담배를피고,박하사탕을1㎏씩사다놓고먹고,시세이도크림을듬뿍,그것도다리한짝당10유로(13000원)씩해당할만큼듬뿍발라버리고,휴대폰을꺼버리고,여자친구를아직만들지못했을것만같은남자에게전화를걸어만나자고하고,수영장,미술관을들렀다가인라인스케이트를타고,저녁엔소파에편히기대앉아녹화해놓은‘섹스&시티’의마지막에피소드를지켜봅니다.
잡커리어과보이헌팅에서시소를하듯위태위태하지만,자기인생의꿈과현실을적절하게융화시킬줄아는이십대후반도심지여성의모습과그녀의내면흐름이손에잡힐듯그려집니다.혹시앨리피어슨의소설‘여자만세’를읽어보셨습니다.너무도비슷한소설이면서무지재미있다는점에서닮았습니다.피어슨의소설에서는직장과가정을다꾸려야하는한아이엄마의,몸뚱이가세개여도모자랄만큼바쁜일상을,너무도인간적으로,그리고너무도현대적으로포착하고있어매우큰공감을주고있습니다.
‘파울,도대체네가뭔데?’는톡톡튀는분위기와,날카롭게꺾어지는문장의연결미에서에단호크장편‘웬즈데이’와도비슷한입맛을주는소설입니다.영화배우이면서동시에남다른필치의얘기솜씨로독자를많이거느리고있는호크는조금은우울한색조를풀어놓는필법을구사하고있습니다만,만약‘파울,도대체네가뭔데?’가독서체질에맞았던분이라면,‘웬즈데이’도함께권해드립니다.
마침내첫섹스에성공한우리들의마리는콧바람을일으키며집으로갑니다.그녀는위장까지파고드는파울의달콤한목소리,초록색눈동자속에박힌황금빛홍채를원하고있습니다.
‘나는방금내인생최고의섹스를30분이나했고,완전한오르가슴을느낄수있었다.그러고나서파울은곧바로일어나욕실로달려가지않았고오히려집게손가락으로내힙선과가슴선을따라곡선을그리며나를애무했다.내알프스꿈에서와같이언제나그는완벽했다.’(95쪽)
그러나파울은좀처럼먼저전화를걸어오는법이없습니다.마리는다시조금씩지쳐갑니다.주인공은왼쪽어깨위에서말을거는천사와,오른쪽어깨위에서말을거는악마사이에서가볍게번민합니다.파울을기다려야할것인가차버려야할것인가.새해들어파울을잊기로결심하지만,그의살인미소와다정한목소리가또다시연락을취해오자그냥무릎에힘이빠지고맙니다.주인공마리는우리가그렇게좋아하는브리짓존스를닮았고,또한오갈데없이‘섹스&시티’의캐리를닮았습니다.
어설픈주말외출,지지부진한영화보다당신을열배쯤행복하게만들어줄책입니다.만약그렇지않다면,당신이책읽기에들인시간만큼제가손들고서있겠습니다.역자인김정민의번역솜씨에뿅가고싶은분들,그것도화끈하게,마리의표현대로‘남자의쇄골에이마를묻은상태에서무릎의힘이빠져나가는것을느끼고싶은분들께’이책을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