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시인이된도둑’
싸락눈이흩날리는추운날이었다.서울변두리의한책방안에서어떤꼬마가책장을넘기고있었다.나이든여주인은무슨일인지정신이팔려자신의책상위에엎드려있었다.둥그렇게등짝만보였다.꼬마를바라보는사람은아무도없었다.
꼬마는책이욕심났다.조용한주변을확인한꼬마는얇은점퍼안으로책을슬쩍밀어넣었다.그순간다른쪽서가에서책장을넘기고있던한남자와눈이마주쳤다.겁에질린아이의눈망울이화등잔보다커졌다.아이는황급히책을내려놓고서둘러책방을빠져나갔다.다리가휘청거렸다.
꼬마는한겨울인데도얇은옷차림이었다.사내는책방문을닫고달아나는아이를따라문밖으로나섰다.아이가훔친책보다는그얇은옷이눈에밟혔다.저만치뛰어가는아이를뒤쫓아가어깨를움켜쥐었다.하얗게얼굴색이변한아이는윗동네에산다고몸을떨며말했다.
사내는그윗동네를잘알고있었다.그곳은더욱바람이거센곳이다.아이가걸치고있는얇은옷조차인정사정두지않을것이다.사내는그찬바람때문에그만마음까지시려졌다.사내는“앞으로네가보고싶은책은다사주겠다”고덜컥약속을하고말았다.제입성또한기름기없기는마찬가지인사내로서는참무책임한약속이었다.
사내는집으로돌아와궁리를거듭하다가S전자회장님앞으로편지를썼다.보름쯤지났을까.담당여직원으로부터답장이왔다.“회사로서는이같은개인적인일에일일이배려를할수는없다”라고서두를꺼낸후,“그러나제가개인적으로책값을보내주도록노력하겠다”는내용이었다.
S전자의여직원또한가난하기는마찬가지였다.고민고민하다가이여직원은오래전에헤어진첫애인에게사연을풀어놓았다.왜냐하면그첫애인이책방을하고있었기때문이다.먼곳에살고있는첫애인은15년만에새로연결된옛여인에게밝게웃으며“그렇게해주마”고대답해주었다.
그렇게해서꼬마가읽고싶은책들은몇사람의손을거쳐본인에게전해졌다.공간적으로는꽤멀리돌아온책들이었다.사실은’첫애인’책방주인과그꼬마는아주가까이몇집건너살고있었다.아무도모를뿐이었다.
이꼬마는훗날시인이됐다.이름이박철(朴哲)이다.박시인이최근여섯번째시집‘험준한사랑’(창비)을펴냈다.그리고그는두번째도둑사건을고해하고있다.
박철시인의부인은미학사라는출판사에다녔다.한때잘나가던그출판사는불황을견디지못하고문을닫았다.문닫던날그곳에서디자이너로일하던부인은남편을위해용달차를불러원고용지를‘횡령’했다.남편이평생을쓰고도남을분량이었다.이횡령사건은출판사의실제주인이었던박의상시인도,그리고사장이었던배문성시인도감쪽같이모르는일이었다고한다.부인은무모하고용감했다.
박철시인은“원래그런여자였다”고쓰면서,부인은광화문에사무실이있고,자신은김포에살고있다고말했다.지하철-버스-마을버스를두번갈아타고아내는논길이있는집으로돌아온다고한다.남편은노을진논둑에앉아있다가아내를마중한다고한다.지금그원고용지는퇴색되어가고있다.언제나그렇듯이각단지지못한시인에게지금도세상은,“한생애를사랑으로보내기에는”그저험준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