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내리고있었다.소설가최윤은접은우산을들고주차장에서나와로비에서있었다.빗물이뚝뚝뚝.“아침부터마실가네요.”(웃음)그때가오전10시를조금넘긴시간이었다.로비에있는네스카페에서커피향이코끝을간질였다.인근에‘마실’이라는다방엘가자고던진농담에최윤이화답을해오면서작은웃음이터졌다.
“책장정이이쁘게잘됐습니다.”“그렇죠?”이날최윤은6년만에소설집‘첫만남’(문학과지성사)을냈다.1988년단편‘저기소리없이한점꽃잎이지고’로작가의이름을알리기시작해서1990년대에동인문학상과이상문학상을받았고,지금까지장편과작품집을10권째내고있다.불문학교수(서강대)로서펴낸비평서와번역서는빼고다.
이번책은자신이작가의말에도썼듯‘간이역’같은작품들이다.“그동안두번의이별이있었지요.오래전돌아가신어머니를마음에두었다가이제의식속에서도작별한것,그리고제가겪은언어적변화지요.”
‘두번의이별’이란말에잠깐긴장했었으나이내신경끈을놓았다.‘첫만남’에는모두8편의작품이실렸고,그작품들이쓰여진1999년에서작년까지최윤에게일어난개인사를조금알고있었기때문이다.
작품속주인공들은한결같이여성성을강하게풍기는인물이다.사회운동의선두적표상,혹은호기심·생명·파동같은힘으로“미래의전망속에여성의포지션을강하게느끼게하는”인물들이다.애견을죽이고가출한이복언니에게아주길고긴실험적편지를쓰는나(‘그집앞’),업무를도와주는남자사원과사소한신체접촉이있을때마다5초동안강한전류를느끼는그녀(‘느낌’),남편의혼외정사와아내의시한부인생이얽힌줄도모르고호숫가로여행을떠난약사부부(‘밀랍호숫가로의여행’),어머니가돌아가시자마자가정부와새삶을꾸리려는아버지(‘굿바이’),집살생각도없으면서부동산중개업자와아파트를순례하는여인(2마력자동차의고독’)……
“상식적으로알고있는대립적삶의양상들,가령희열과고통같은것,그만나지않을것같은범주의것들을만나게했지요.결국은하나일것들입니다.다양한아이덴티티가새로태어나는순간을포착하고싶었고요.”
얼음녹차를몇모금넘기고,책에나오는문장두곳을소리내읽었다.‘가을들판이이토록아름답게다가오는것은내가외롭기때문이다.’(59쪽)‘창밖에서는유황이타는듯매캐하고도독하게목을쏘아오는냄새가난다.’(189쪽)
그리고물었다.“어떤문장이좋은문장입니까?”“영혼을뒤흔드는문장,숨이턱막히는문장요.(웃음)좋은문장의외적형식은모르겠고,다만잡음들사이에서드러나지않았던내삶을새로설명해주는문장에나는숨이막혀요.”
최윤은새벽5시면일어나고,‘종합예술’이라고부르는아들영준군(초등2년)을방배동프랑스학교에바래다준다.그리고누구에게든“약속있어요”라고둘러대며혼자만의시간으로마련한‘비밀의날’(일주일에이틀)을지키고있다.그리고“허구적서사에필요이상으로매달리지않고말의본질을향해직방으로달려가는글을쓰겠다”는최윤은“인간이도달할수있는최상의아름다움”을향해끝없이자신을애태울것만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