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9) 사랑했지만, 이제는 아닌……

라즈블리토(razbliuto).러시아말인데요,‘예전에는사랑했지만이제는사랑하지않는감정’이란뜻입니다.입술로가만히“라즈블리토”,라고읊조려보면조금은쓸쓸하고우울하고,동시에자유비슷한느낌도살아납니다.눈내리는플랫폼,희미한옛사랑의그림자가눈앞에어른거리기도하고,윤곽이흐려진누군가의얼굴이떠올랐다사라진다면더욱효과만점입니다.

우리를인간답게만드는것은행복이아니고우리마음한가운데고여있는슬픔인지도모릅니다.캐나다로키산맥에살고있는윌퍼거슨(Ferguson)의장편소설‘해피니스TM’(초당)은바로그런이야기를하고있습니다.우리언어에서가장중요한단어는“….했더라면”과“어쩌면언젠가는….”이라고독자를설득하고있습니다.과거의잘못에대한반성,그리고보답없는희망,다시말해우리가후회하는것과갈망하는것,이게우리를우리로만든다는겁니다.

주인공에드윈은대학에서영문학을전공한후팬더릭출판사의비소설부에서일하고있습니다.아내는제니이고,직상상사는메이라는여성입니다.아,이책은연애소설은아닙니다.작가나독자들이잘모르는,출판사내부의협잡과농간,그리고베스트셀러라는책상품이탄생하는과정의내막과사기극을너무도리얼하게,그리고너무도통쾌하고유쾌하게풍자하고있는소설입니다.

팬더릭출판사는조금이라도성공할기미를보이는책은곧바로‘시리즈’로변환시킬수있게대비를합니다.가령‘사람이지켜야할윤리지침’이라는책이팔려나가자,다음해‘현대관리자들이지켜야할윤리지침’,그다음해는‘요지경세상에서윤리적으로사는법’을내고,그리고최근에는‘윤리적인사람의일곱가지습관’까지편집을마친상태입니다.

에드윈과직장상사메이는이런풍토를스스로비웃으면서자신들의입사초기에팬더릭출판사가자랑하는자기계발책시리즈‘고통받는영혼을달래주는닭고기수프’가어떻게나왔는지얘기합니다.술꾼에게는술이술을먹이고,부자에게는돈이돈을벌어오듯,“잘나가는”출판사는책이책을쓴다는겁니다.이들은독자들의감동적인편지를모아‘닭고기수프시리즈217호,절망의시름을달래주는닭고기수프’까지냈는데,더이상우려먹을게없자자료실로가서이전에출간된닭고기수프시리즈216편가운데가장감동적인일화를각각두편씩골라서‘절망한영혼을달래주기위해다시데운닭고기수프의두번째그릇’이라는제목으로포장해출간합니다.이책은타임베스트셀러순위에17주나오릅니다.

이소설은투팩스와리라는가공의인물이일종의자기계발백과전서같은‘내가산에서배운것’이라는책을내면서벌어지는문명의종말시나리오를이야기하고있습니다.삽시간에수천만권이팔려나간이책은미국국민의영혼을정제하고모두를행복하게만들어주며,팬더릭출판사에게는‘해피니스’를일종의등록상표(TM)로까지쓸수있게해주지만,그모든것이사기극이라는것으로판명난다는줄거리입니다.

정말재미있는소설입니다.우리의모든생활방식은인간의약점,나쁜습관,불안정,그리고충족되지못한욕구에기초하고있기때문입니다.직접확인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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