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조선데스크’라는칼럼에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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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이다.퇴근후리모콘으로TV화면밭을뛰어다니다다큐채널에뚝멈췄다.네레이터의말한마디때문이다.“하바드대학우등생들에게물었습니다.‘여러분의소원은무엇인가?’가볍게던진질문이었지만우리가얻은대답들은의외였습니다.”
비단우등생이라서가아니었다.그들의대답은눈을번쩍뜨게하기에충분한것이었다.바로이어TV카메라는‘소원’을묻는질문에1초의망설임도없이대답하는대여섯명남녀학생들의입을클로즈업했다.
“글잘쓰는거요.”“글을좀잘썼으면좋겠어요.”“굿라이팅요.”
지구촌의남북갈등을최초로해결할수있는경제이론을정립하는인물이된다든가,아니면백악관주인가운데가장존경받는이름으로남아보고싶다든가,아니면물리학및수학계에서가장첨단인분야의난제를가장먼저해결하는천재가되고싶다든가.그것도아니라면,3시간만자도안졸리기,‘소프트웨어황제’에‘게임도사’되기,졸업전고액스카우트되기,여름방학때얼짱프렌드와단둘이떠나기.
다큐PD의예상은모두빗나갔을것이다.정말의외로우등생들의한결같은대답은‘글을잘쓰는것’이었다.자신이어떤상상력과어떤아이디어를갖고있느냐에못지않게,아니그보다더중요한것은,그생각을어떻게잘표현할수있느냐,라는점을세계에서가장우수한대학의가장우수한학생들이절절하게고백하고있는것이다.
그들의대답은최근뜨겁게불어닥친한국의논술고사진통에도고스란히겹쳐진다.우리도이제는에세이쓰기가한교양인의종합적인능력을판단하는중심잣대가되는과정에들어와있다고보고싶다.진부하게그것을선진국형입시시스템에동참하게됐다는식으로말하지는않겠다.이미조선시대500년동안우리선조도중앙최고엘리트는시문(詩文)으로뽑았다.
논술이얼마나중요한능력인지는대입(大入)을준비할때가아니라,거꾸로대학을졸업무렵에더실감나게깨닫을지모른다.아니면어렵사리들어간회사에서상사가집어던진기획안을땅바닥에서주워들때,“일단은말이되게써야지말이되게!”라는꾸지람을등뒤에들으며상사방을나올때,잘못쓴레터한장때문에1000만불계약을놓쳤을때,논술이얼마나중요한지절감할수도있다.
유명학원가에불고있는논술특수(特需)현상을씁쓸하게지적할생각도없다.어차피한국은코흘리개젓가락사용법에서심지어줄넘기하기까지몽땅학원에서배워야하는‘학원공화국’이돼가고있다.동네집값과품위도학원이결정하는마당이다.
덧붙여논술고사의내용을잘몰라이런저런설명회에몰려다니는‘애타는부모마음’또한안타깝기그지없다.사다리는하나고,그밑에모여든인간의머리는구름과자처럼많으니찍어누르고라도올라가야한다.“조그마한자극에도급격하게방향을꺾는송사리떼같다”는비난조차귀에들리지않는다.다급한마음들은그저우왕좌왕이다.
잊지말일은논술은학원에서배우는테크닉과요령으로한순간에따내는입학자격증이아니라는점이다.얼마뒤“너희는‘논술세대’였다”는시니컬한이름이붙건말건논술은평생을함께하는전인격적능력이고교양이다.오래전부터하바드우등생들은그걸알아차린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