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13) ” 체즙(體汁)을 짜듯 울고 싶을 때”
BY mhfx ON 11. 17, 2005
우리는때로순정의최루탄이그립습니다.눈물샘에매운고추가루를넣고싶습니다.푯대처럼순정한것들말입니다.“썩기전에아름다운기억을간직하려고일부러몸안의물기를말려버리는”나희덕같은시인도있습니다만,그러나때로우리는체즙을짜내듯울고싶습니다.“뻔한내용아냐”,빈정대면서어느새빨려들어가콧물을닦고싶습니다.강풀(31)이그린‘바보’(문학세계사)라는장편극화를소개드립니다.
주인공은27세바보승룡입니다.어렸을때연탄가스사고로뇌손상을입었습니다.그때아빠는숨지고,엄마도나중에불치병으로죽습니다.여동생지인을보살피는승룡은학교앞에서토스트를팔아살아갑니다.동네는서울변두리풍납동입니다.밤하늘의별이무작정쏟아지는아름다운토성이있는곳입니다.
알고있다고다말하는건아닙니다.순정이란내마음보다상대의마음을먼저헤아리는본능입니다.이본능은똑똑한사람보다바보들에게더발달해있습니다.무시당해도웃고,손이찢어져도웃습니다.겨울눈길에신발이벗겨져맨발이부르터도웃습니다.우리가이기심으로구축한공동체에안주하면서응달로몰아내버린반편이들때문에,그런데도그들이우리곁을떠나지않고있기때문에하느님의불화살은아직이세상을내치지못하고있는지도모릅니다.
승룡에게는짝사랑했던초등학교동창생지호가있습니다.의사딸인지호는커서뉴욕의피아니스트가됐습니다.어느날음악적한계에부딪쳐막막한가슴을안고귀국합니다.그녀가풍납동집을찾아가는대목이이극화의시작입니다.승룡은한번도비행기를타본적이없습니다.지호는승룡을기억못합니다.그렇지만바보승룡은지난20년을토성에앉아그녀를기다렸습니다.
더스틴호프만의‘레인맨’이나톰행크스의‘포레스트검프’처럼바보가나오는영화를기억하십니까.숀펜이일곱살지능을가진장애자로나오는‘아이앰샘’은어떻게보셨습니까.물러가라,는외침끝에길바닥에서뒤집어쓴최루탄의독향같은것을말한다고너무나무라진마십시오.그날쫓겨들어간영화관에서는‘레인맨’을상영하고있었습니다.이제우리곁에는가로수만옷을벗은채남았습니다.우리를지금껏살아가게하는것은그때강제로배운눈물의힘인지도모릅니다.
대개는유인물뿌리고장렬하게형사들의품에안긴적없을겁니다.그러나결코‘그자리’를떠난적도없으시겠지요.화려한변신,정계입문의객기도모자랐겠지요.이극화는그저쪽에있었던작은이야기입니다.피아니스트,불치병,동창생,양아치,TV드라마의비누방울같은스토리가나옵니다.작은별,고아남매의갈등,여고생교실,학교앞풍경같은21세기얄개버전도있습니다.
승룡은사랑하는지호를위해,그리고몹쓸유전병에걸린여동생지인을위해,그리고건달친구상수를위해죽어갑니다.청부폭력배가저지른억울한죽음이아니라,바보가자청한숭고한죽음입니다.
때로는따지고싶습니다.당신이원하는눈물은무슨색입니까.모든욕망을섭렵한뒤끝,아니면단순한목마름으로지쳤을때,그래도품에안겨드는,우리를책망하지않는,이바보같은책을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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