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14)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BY mhfx ON 11. 18, 2005
"가을이가고있네요."
가을이끝나가고있습니다.10년전요절한미국천재가수에바카시디(Cassidy)의‘황금벌판’을듣기에딱인계절이끝나가고있는것이지요..왠지웃음보다눈물이가까운노래였습니다.
‘오매단풍들것네/장ㅅ광에골불은감닢날러오아/누이는놀란듯이치어다보며/’라고했던김영랑이생각나십니까.‘가을에는/기도하게하소서/낙엽들이지는때를기다려내게주신/겸허한母國語로나를채우소서’라고했던김현승은어떠세요?
서정춘시집‘귀’(시와시학사)를권해드립니다.밝은곳에서조차보이지않는,그러나분명존재하고있는것을노래하는시집입니다.
당신은어깨너머로등허리의한복판이있다는것을어떻게아십니까.볼수도만질수도없잖습니까.서시인은,이를테면,그곳을근질근질가렵게해서,보이지않는것들의분명한존재를일깨워줍니다.
‘하늘은가끔씩신의음성에겐듯하얗게귀를기울이는낮달을두시었다’(‘귀’전문)
서정춘은등단28년만에첫시집을냈을정도로오래오래깎고다듬는시인입니다.그는풋정으로가슴이넘칠까봐겁냅니다.인사동초입에있는한삼합집으로탁주몇병을덜렁덜렁들고와다정하게따라줍니다.얼굴이수수하고손등이겸손합니다.사람이많아도출입문쪽에자리를잡습니다.중앙은자기자리가아니라는듯.
짧은,한줄짜리도너무길다는듯이,수줍게내미는첫시입니다.그러나그안에는우주의운행과,종교적섭리와,운명의굴레로부터자유롭지못한인간사에대한관심과,창백한시인의손길이뜨겁게응축돼있습니다.
‘물뱀한마리가물금치고줄금치고/一行詩한줄처럼나그네길가는것’이우리네삶이라고생각하는서정춘은이고독한가을초입에‘아름다운독선(獨善)’을풀어놓습니다.그는동시에온삼라만상을옴짝달싹못하게화면속으로움켜쥐는신묘한붓을가지고있습니다.
‘무슨영문인지문상객하나없는산밑상갓집저문하늘위로줄기러기거뭇거뭇날아는가고상복도입지않은오무래미할매혼자는조등이낮게걸린사립짝문밖으로턱을빼고서서는씨물거리고는있고,’(‘할매’전문)
무엇보다서정춘시인을권해드리는것은4년전시집‘봄,파르티잔’(시와시학사)때문입니다.그때문단이깜짝놀랐던것을생각하면지금도두근거립니다.
‘꽃그려새울려놓고/지리산골짜기로떠났다는/소식’(‘봄,파르티잔’)
일본의,그좋다는하이쿠를다동원해도이처럼딱맞아떨어지게순금같은언어는없을것입니다.극도로정제된단어몇개가역사와,고통과,시절과,풍경과,그리고끝점을알수없는아련함을오롯하게갈무리하고있잖습니까.일행시한줄짜리인생처럼요.
늦가을여행준비물은서정춘의시집두권이면남부럽지않을것만같습니다.씹고또씹어도단물이줄줄흐릅니다.‘젖은뜨락을슬몃슬몃핥아가는온몸이혓바닥뿐인’달팽이같은삶의무늬가강렬한울림으로곰삭아있기때문이지요.“서풍이불때면날기억하시겠지요”라는카시디의서러운운율에다리를흔들며서정춘을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