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16) “그 넘 땜에 등시리지 않으려면…”
BY mhfx ON 11. 20, 2005
"그놈때문에등시리지않으려면….."
‘수면위에빛들이미끄러진다/사랑의피부에미끄러지는사랑의말들처럼/’
시인채호기가쓴시입니다.수련꽃무더기사이로,어떤애절한심정이,저렇듯반짝이며미끄러지기만할까?,라고채시인은묻고있습니다.
사랑의언어란,그렇듯정작사랑의몸에닿지도못하고허공에흩어집니다.
오현종씨의첫장편‘너는마녀야’(민음사)를읽다보면너나할것없이사랑에애태우는사람들이그허공에떠있다는것을알게될것입니다.
주인공K는삼십을갓넘은여성소설가입니다.삼년째사귀는애인L이있습니다.둘사이의연애는평범합니다.가운데금을그어놓고양쪽으로번갈아뜀뛰기를하듯합니다.보고싶고지겹고,만나고헤어지고,공상에빠져있다가퍼뜩현실로넘어오곤합니다.
둘은네번째만남에서여관에갑니다.둘은섹스를위해만나는것같기도하고,무료해서만나는것같기도합니다.
K의집안어른들은"소설때문에시집도안간다"고구박을하고있지만,정작K는문예지로부터늘청탁을받는처지도아닙니다.
둘사이의관계를진전시키기위해L이적극적으로나서고있는것도아닙니다.그는현재유학을떠날계획을세워놓고있습니다.
L은K에게결혼후에도얼마든지만날수있으니우선조건좋은남자랑결혼
을하라고부추깁니다.(도대체애인맞습니까?)
싸움이라도벌어지면L은K에게“내앞에영영나타나지마!”라고퍼붓습니다.그렇지만,술에취한척먼저전화를거는쪽은그입니다.번번이헤어지자고말하는건L이면서자신이실연당한사람처럼행세합니다.능력도줏대도없으면서,혼자서상대를배려하는척은다하고싶어합니다.
1956년영화‘전쟁과평화’를기억하십니까.지금은모두고인이된오드리햅번과헨리폰다가나오지요.러시아장교인헨리폰다가프랑스군에붙잡혀포로가됐을때곁에있는부랑아가이렇게말합니다.“우리에게닥친불행이란그물에갇힌물과같아.끌어당길때는부풀어오르는것같지만,막상배위로올려놓고보면아무것도없어.”
행복보다불행을더닮은현대의사랑도비슷합니다.당길때는뭔가있는것같지만,품안에들어올때는허망하고,허공같기만하고,나타나지말라고소리도치고싶은,그런것들인모양입니다.
요시다슈이치(吉田修一)가쓴장편‘7월24일거리’(재인)는어떠세요.실수라도상관없으니이사랑을선택하겠다,그렇게생각해본적없으십니까.
이소설은“실수하지않기위해웅크리고있기보다는,실수를저지르고우는한이있어도사랑을한번해보려한다”는여성주인공H의이야기입니다.수채화처럼투명한도시의풍경위로펼쳐지는사랑의기적을말하고있습니다.‘일상의호흡과도같은자연스러운흐름’,그리고‘남녀의연애심리에대한탁월한묘사’,‘소설적인카타르시스를느끼게하는반전’으로높은평을받은소설입니다.
복잡한줄거리를짧게말하면,주인공H는자신이짝사랑했던남성이여고때선배에게접근하자다른사람의입장을배려하는일일랑그만두고이번기회에그남성을제가사랑하기로결심한다는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