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18) “니덜은 퇴폐와 불운이 없어”
BY mhfx ON 11. 21, 2005
서울에서남쪽으로2시간쯤차를몰아시인고은을찾아갔을때,후배들에게말했습니다.“니덜은불운과퇴폐가없어.”파리에살고있는알바니아출신소설가이스마엘카다레를찾아갔을때,이렇게말했습니다.“예술을위한인류최대발명품은지옥(地獄)입니다.”
헉,이게뭔말입니까.시인이나소설가들의폼生폼死같은암호나말장난이아니라면그건분명뭔가를찐하게전달하려는메시지가있을것입니다.예술적인생을한곳에몰입할때그극한까지가야한다는충고같은것말입니다.그래서불운·퇴폐·지옥,이세가지를다른말로바꾸면‘갈데까지가보는것’이아닐까생각합니다.길을떠났다면벼랑끝을봐야뛰어내리든돌아오든하지요.
라이센스패션잡지의기자로일하는김경씨의에세이집‘뷰티풀몬스터’(생각의나무)를읽으면서그런말들을떠올리게됐습니다.서울에서가장‘퇴폐’스럽고,가장‘불운’할것만같은이젊은여인이‘지옥’순례기를씁니다.이책은1년전에나왔는데요,“밤마다술집을전전하며사다리타기를하고폭음을한암컷괴물”(5쪽)의참회록+묵시록같은글쓰기가압권입니다.
1미터50에서1미터80정도의눈높이를가지고이도시를바라볼때와,아스팔트에난짝드러누워바라볼때는전혀딴판으로세상이보입니다.사랑을버리고,빈방에돌아와홀로누울때“완벽한자기방어와주변관계의단절이최고의생존술이며교양이라는것”(16쪽)을깨닫게해줍니다.그래서도시는폐허처럼쓸쓸합니다.
이미여러전문가들이이런저런방식으로소개한이책을다시한번추켜드는이유는요,‘아예침대위로떠나는2박3일관능여행’같은버석버석한유혹이있기때문입니다.‘그게여의치않다면간단한식료품만싸들고외딴산장이나펜션에숨어들어도좋겠다’고부추기기때문입니다.그러면서‘충분히배우고익혔지만이성이나교양만으로제몸을지배할수없는야성을간직하고있는남자들이나는좋다’고말하고있기때문입니다.
정글의타잔이초콜릿맛에타락하고시들어갈때아직도싱싱하게원시적호흡을유지하고있는‘암컷괴물’의묘사가너무근사하지않습니까.잘숙성될수록거친맛이나는풀향기같은포도주를마시는기분입니다.그래서언뜻어울리지않을것같은이영임의소설‘레드와인’(틈북스)을함께권해드립니다.손안에꽉끼면서103쪽밖에안되는이책은,김경이대도시지표위의삶을이야기하고있을때땅밑지하철기관사의삶을이야기하고있습니다.
지하철투신자살사고를겪은기관사의아내가남편의가슴에화인처럼찍힌상처를조심조심다독여봅니다.끝내그남편은눈이펑펑내리는선로위를걷다가마주오던열차에뛰어들어자신의생을마감합니다.지하철자살방지를위해선정된곡은일흔여섯가지나된다는데,제발그런남편과는함부로붉은포도주를마실일이아닙니다.
근데요,삶이란폼입니다.폼이좋아야멋지거든요.매트위기계체조든,바둑이든,스턴트든,요가든폼이좋아야착지(着地)가좋습니다.불운,퇴폐,지옥이괜한헛폼이아닙니다.
방금선배한분이‘남자친구없이뜨거워지는방법’이라는광고카피를북찢어책상위에놓고갑니다.늦가을등산파커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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