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20) “기생이 술상에 엎어질 때”

"신음을토할만큼귀기서리게아름다운비운들…"

뼈가자라기도전에뼈가시린것을먼저알아버린소녀가있습니다.초가을,실밥이풀려나가는소매끝을감추며책가방을챙기던철로주변이고향입니다.철로위에서춤추기좋아하던끝순이라는이름을가진그녀는나중에커서미스민이라는기생이됩니다.

얼마전출간된이현수씨의장편신기생뎐(문학동네),그리고그보다며칠앞서나온송은일씨의장편한꽃살문에관한전설(랜덤하우스중앙),두권을설레는마음으로권해드립니다.올해한국문단은이두권의소설만으로이미풍성해진느낌이라고할정도로기가막히게좋은,아니정말로혼을빼놓는작품들입니다.

지극히순정한데다가대단히이기적이라면애인의조건으로는최악인셈입니다.대상과객관적거리를유지하는게아니라대상과밀착되거나,아예대상에푹빠져쓴소설이바로그런애인을닮았습니다.펼쳐든게죄입니다.다른중요한일들을뒤로미루게하고대여섯시간씩사람을붙들어버리는소설말입니다.

신기생뎐은기생과기방에관한이야기입니다.룸살롱호스티스가한복을입고있다고해서기생이되는건아닙니다.요정(料亭)이라도해서다기방인것도아닙니다.기생은춤,노래,그리고교태와순정,기둥서방을갖추고있어야어쩐지기생같은느낌이듭니다.지금도기생이있어?하고묻지만않으신다면,이소설은진짜기생들의절절한풍속과사연들을보여드립니다.무엇보다청산가리처럼찬란하고치명적인문장들이독자에게죽일듯이달려듭니다.

빌리와일더감독의명작고전이된하오의연정(LoveintheAfternoon)을보면게리쿠퍼와오드리헵번이사설탐정인아빠몰래오후마다파리의리츠호텔(이호텔은다이애나공주가애인과마지막저녁을먹었던호텔입니다)14호실에서데이트를즐깁니다.그것을알게된아빠가엎드려자는딸에게한마디하죠.엎드려잠자는여인의86%는비밀사랑을하고있단다.

기생들도사랑에빠지면엎드려잡니다.사내에게정을품으면아직손님이있는술상에서사내이름을부르며엎어집니다.금기중의금기를깨는것이지요.

불륜이아니면사랑도아니다.이것은미워도다시한번같은60년대식입니다.지금은치정과근친이아니면사랑도아니라고해야그나마일부독자들이돌아봅니다.그들이근천스러워서가아니라래디컬리러브홀릭하기때문입니다.

한꽃살문에관한전설은모녀삼대모두가근친사랑을하다가비운의결말을맞게되는이야기입니다.주인공은양귀비꽃살문을전공하는목공예가이율희이란여성입니다.율희는모두두명의남자와사랑을하는데그둘다근친의관계로얽혀있습니다.

사실신화든인간사든근친의유혹보다처참한비운을예고하는것도없습니다.그때피어난사랑은신음을토할정도로귀기서리게아름답습니다.소설을다읽고나서죽어도좋을만큼요.

기생도,금융애널리스트도,저널리스트도,작가도다서비스업(業)입니다.고객이있어야먹고사니까요.그들은여성성을먹고삽니다.아니남성적폭력성을키워서그것을고발하고먹고삽니다.이현수와송은일의이번장편소설은기생과여성목공예가를주인공으로내세웠지만그들이거울로비추는남성성이있습니다.그것까지읽으면더재미있습니다.놓치지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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