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 첫눈 아침을 위하여!

첫눈에빠지면,벌써봄이요….

첫눈이온날아침입니다.사람들이알고있는것과,사람들이잊은것과,사람들이기다리고있는것들을모두한품으로안아들이고있는것만같습니다.지금계신곳의창밖으로풍경을바라보는것도좋고,따뜻한옷차림으로들녘을나서는것도좋겠습니다.그런날에어울리는책한권을권해드립니다.

《시가있는풍경》

이기와여행산문집/가교출판/336쪽/9000원

당신은시를풍경에빠뜨려보셨습니까.이책에는그런소리가납니다.

앞장서거라.저자인이기와시인은시에게그렇게부탁합니다.그리고그시를따라길을떠납니다.시가먼저풍경에빠집니다.퐁당.그리고나서이기와시인이빠집니다.동심원의맑은파문이겹겹이흩어집니다.그파문을따라서또다시발길을옮깁니다.

내일이면헤어질사람과/와서보시오,//내일이면잊혀질사람과/함께보시오,//왼산이통째로살아서/가쁜숨몰아쉬는모습을//다못타는이여자의/슬픔을…(나태주내장산단풍)

이렇게시하나를앞세우고이기와시인은내장산으로갑니다.그리고단풍보다더곱게물든가슴을토해놓습니다.미칠것이다.아마도환장할것이다.헤어질사람과같이내장산으로단풍을보러오면….한때붉디붉게서로를물들여놓고는,그사랑이영원할거라고속삭여놓고는이렇게냉랭한가을바람이되어헤어질거냐고은근히미련을동원해훼방작전을펼친다.(30쪽)

풍경과시와삶이한데어울려

이책을읽다보면풍경과시와우리네삶이한군데어울려있으면서독자의눈에쏙들어옵니다.언뜻서로아무상관도없이동떨어져있는것처럼보이지만,이기와시인의손길을거치면서깊은내면의연결고리를드러내는것입니다.

가도가도붉은황톳길/숨막히는더위뿐이더라//낯선친구만나면/우리들문둥이끼리반갑다//천안삼거리를지나도/수세미같은해는서산을넘는데//가도가도황톳길/숨막히는더위속으로쩔름거리며가는길…(한하운전라도길)

이기와시인은이번엔한하운을따라서소록도에갑니다.그리고소록도의교회에가서일요예배를드립니다.전도사의설교가끝나고찬송이시작될때성가대연주자의손을발견하고맙니다.피아노를치는연주자의양손을말입니다.생솔가지분질러나간자리같이함몰되어들어간주먹손을본것입니다.열개가아닌,열개에서몇개모자란손가락으로바다가듣도록,삽살개가듣도록,물새가듣도록,유자나무와동백꽃까지모두듣도록힘차게건반을치는주먹손을보았다고적고있습니다.

이순간삶은더할나위없이숙연해지는것입니다.그주먹손을보면서이기와시인은삶을사랑하게됩니다.톨스토이가말했듯이삶이가장고통스러운순간에도우리가삶을사랑하는이유는,그것이바로신을사랑하는일이기때문입니다.

이기와시인의발길은멈추지않습니다.강화도황청포구의갯바람,폭설속에누워있는마곡사,울며헤매다쓰러진서울홍은동산1번지,감성의촉수를뒤흔드는경상남도우포늪…그렇게이기와시인은우리국토의열여섯장소로발걸음을옮겼고,독자들의가슴을서늘하게쓰다듬는산문을남겨놓습니다.

가장밑바닥에잠긴인생을살아온이기와시인은그누구의삶보다훨씬고통스러운삶을살아왔습니다.이기와시인이사연많은,우리나라의여러곳을둘러보는것은자신의내면을들여다보는일과같습니다.이기와시인은배한봉시인의우포늪왁새라는시집을읽으면서우포늪을둘러본후에흡사고아처럼살아온자신의삶을이야기합니다.

내어머니는나에게늪이었다.내가길을잃어미아보호소에맡겨져있어도나를찾아가지않았고(끝내내발로어머니를찾아갔다),가발공장,거울공장,가방공장,봉제공장을어린나이에쳇바퀴돌아도그만일하고학교에가라는말을하지않았다.해가바뀔때마다원하지도않은새아버지를명절선물인양안겨줬고,그에딸려온의붓자식들과한솥밥,한이불을쓰면서잘지내보라고명하곤했다.(322쪽)

그러나이기와시인은삶의과거가앙금과미움으로자신을파멸시키도록놔두지않습니다.그것들을한줌의재로만들어버립니다.그리하여내유년의뒤뜰에도서서히어머니에대한동정과연민의꽃이송이송이피어나기시작한다(336쪽)고말합니다.

서점에가보면여행을통한산문집이한두권이아닐것입니다.그중에이기와시인의여행산문집은특별하게돋보입니다.초겨울여행에이시집과동행하실것을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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