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소리가들리지않는슬픔
불치병으로죽어가는어린아이가천사같은모습을끝까지잃지않을때온우주는긴장합니다.삶이무엇인지를알기도전에죽음의문턱을넘어야만하는운명앞에신(神)마저도죄책감을느낄것이기때문이지요.
‘마두레르를위한세상’
로베르토피우미니지음/다림/이현경옮김/8000원/164쪽
이책은죽음의문제를정면으로다룬동화입니다.아니죽음의문제라기보다는삶의영원성을파고들어간작품이라고할수있을것입니다.
이책에는세명의중요한주인공이등장합니다.첫째마두레르라는열한살소년입니다.이소년은햇빛을보지못하는희귀병에걸려있습니다.바깥공기를마시지도못합니다.늘실내에갇혀살아야하는마두레르는반투명천이나거즈로여러번걸러낸공기를마셔야합니다.채광창을통해서부드럽게만들어진조명을해야만하는것은물론이고요.
그러나마두레르는이세상에서누구보다꿈이많은소년입니다.작고하얀얼굴은맑고사랑스럽습니다.마두레르는자기자신보다타인을먼저배려하는아이입니다.상상력이풍부하고,관찰력이뛰어난것은말할것도없습니다.
둘째주인공은그에게그림을그려주는화가사쿠마트입니다.풍경화를주로그리는사쿠마트에게붓은마치자신의영혼을담은손같은존재이고,그의붓놀림에는혼신의힘이실려있습니다.
세번째주인공은소년마두레르를이세상누구보다사랑하는아버지가누안성주(城主)입니다.가누안성주는아들에게이세상에둘도없는생일선물을하고싶습니다.그래서천하에서제일가는화가사쿠마트를성으로초대해서,아들의방에세상을모두표현할수있는벽화를그려달라고부탁합니다.
이책의핵심줄거리는마두레르와사쿠마트가함께벽화를그려가는대목들입니다.숨바꼭질을하면서서로친해진천하제일화가사쿠마트와성주의아들마두레르는어느새다정한친구처럼체스를둡니다.체스는마두레르가사쿠마트보다한수위입니다.그리고그들은대화를통해천천히벽화내용을상의하게됩니다.
“네주위에뭐가있었으면좋겠니?네가보고싶은게뭐지?”
“아주많아요.제가가지고있는책들이백권은될거예요.거의다컬러그림책들이에요.그런그림들은모두아름답고마음에들었어요.아저씨,그런것들이모두떠올라요.”
이책에는깜짝놀랄반전이숨어있지않습니다.이야기는격렬하지않게,그러나너무밋밋하지않게흘러갑니다.문장이화려하다거나비유법이현란하지도않습니다.깨끗하게닦인것같은어휘들이조용히미소짓고있을뿐입니다.
작가는‘스트랄리스코’라는상상속의식물을만들어냅니다.일종의빛이나는식물,그러니까식물반딧불이라고할수있습니다.마두레르는방벽에그려진초원에이스트랄리스코를심고싶어합니다.사쿠마트는멀리떨어진고향마을말라티아에사람을보내서스트랄리스코를구해오도록합니다.그리고마두레르가잠든사이깜깜한방안에백여개의갸름한이삭들을심어서금빛으로빛나도록해줍니다.
그러는사이에도마두레르의몸은점차기운을잃어갑니다.잠을자다가갑자기비명을지르기도하고,온몸이땀에흠뻑젖은채침대에서몸부림을치기도합니다.사흘동안이나의식을잃었던마두레르에게의사들은최후의선고를내립니다.일년을넘기기힘들겠다는것입니다.오래전부터불안하게이세상에머물던그아이의육신이점점사그라지고있는것입니다.
아버지가누안성주는미칠듯이괴로워합니다.아버지이상으로마두레르를사랑하게된화가사쿠마트는말발굽이상처투성이가될때까지말을몰아산을몇바퀴씩돌면서아픈가슴을진정시킵니다.
그러나작가자신은결코비탄에잠기지않습니다.울고불고난리법석을피우지도않습니다.기적이일어나는일도없습니다.그저평화롭게마지막순간을준비합니다.삶과죽음을조용히음미할때먼저떠난자들은살아있는사람의가슴에영원히남는다는것을작가는말하고싶은것같습니다.그렇게,울음소리가들리지않는깊은슬픔으로영혼을닦아주는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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