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28) 시치미 뗀 남편의 애첩처럼
BY mhfx ON 12. 15, 2005
네아빠,잘썩고있을까?
이세상모든접착제를없애고싶을때가있습니다.끈적끈적달라붙는것은싫습니다.보송보송하게모래알갱이처럼살것입니다.나를건드리지마라,나도너를침범하지않겠다,는선언입니다.양아치조폭이아니더라도서로의영업구역은존중돼야합니다.
“내년가을까지원고청탁이밀려있을만큼”인기절정인신예작가김애란(25)씨의소설집‘달려라,아비’(창비)를읽는이유입니다.“우리는지금,이곳으로부터벗어나기위해지금,이곳에있는것”(236쪽)이라는당찬노래입니다.숙명적실존의세계에서들리는비명입니다.
이책에는모두9편의단편이실려있는데요,그중몇편만살펴보겠습니다.먼저책제목으로뽑힌‘달려라,아비’란작품입니다.주인공인‘나’는택시운전사인홀어머니의딸입니다.아버지는내가뱃속에있을때집을나가서돌아오지않습니다.나는아버지가분홍색야광반바지를입고지구한켠을오늘도뛰고있을것이라고상상합니다.처녀시절어머니가아버지의셋방을찾아왔을때아버지는어머니와몸을섞고싶어했고,어머니는아버지에게피임약을사올것을허락조건으로내걸었습니다.아버지는그때부터약국을향해뛰기시작했는데요,십수년이흐른어느날소식이끊긴채미국에살고있던아버지의부고장이날아옵니다.어머니는그날술이취한채새벽에돌아옵니다.그리고중얼거립니다.“잘썩고있을까?”
누가뭐라하건소설은문체입니다.문체가있어야소설이직립하고,문체가있어야소설에
진행이생깁니다.주제와구성이통시대적이라면,문체는무엇보다당시대적입니다.셰익스피어와아서밀러가같은주제,같은구성을가질수는있지만,같은문체를쓴다는것은상상조차할수없습니다.‘햇빛은헤어진애인이보내온예의바른편지처럼여전히저쪽방바닥위에놓여있었다.예의바름,그것은태어나내가세상에대해느낀최초의불쾌(不快)였다.’(9쪽)
기원을알수없는전설처럼
가장빼어난수작은둘째수록작품인‘나는편의점에간다’입니다.“약속과우연과재난이이삿짐처럼사라진2003년서울.빈손을물끄러미쳐다보고있는우리에게,편의점은기원을알수없는전설처럼그렇게왔다.시치미를떼고앉은남편의애첩처럼.”(32쪽)
대학가근처의주택단지에있는편의점들을하루에도몇번씩오가며생필품을사게되는여자주인공의이야기입니다.세븐일레븐,엘지25시,큐마트,패밀리마트,미니스톱,바이더웨이.편의점주인이알은체를하거나,콘돔을사는데주민등록증을보여달라거나하는집에는발을끊습니다.편의점주인들이“나는너에대해아는게하나도없다”고말해주길‘나’는원합니다.그러나따지고보면주인공의정보는그들이들고있는바코드검색기에찍혀나가고있을것이고,그들은주인공이사가는물,요쿠르트,햇반,쓰레기봉투,젓가락,생리대,콘돔갑을통해모든것을파악하고있을수도있습니다.
마지막에실린작품‘노크하지않는집’또한얼굴없는삶,“방문뒤로얼른숨어버리는삶들”을그리고있습니다.겨우두세평의공간으로나뉘어5개의방에살고있는다섯명의처녀들이등장합니다.
살아간다는것이갈수록미안하고무섭습니다.파편화된단자로서무섭습니다.무섭다고비명을지른것같아서이웃들에게미안합니다.공포의전염을일으킨주범이라고자책하시는분들께이소설책을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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