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남자(29) “시대의 우울을 넘어서”

하얀이력서를앞에놓고

대지가얼어붙었습니다.삶의조건과시간의흐름조차냉동고에들어있는것만같습니다.춥다는호들갑이입에매달린고드름이됐네요.신문들추기가두려울만큼세상은치사해졌는데요,하얀이력서를앞에놓고아직도정체성의혼란을겪는분들이많으시겠지요.올해도또이렇게넘어가는구나,하며소태같은담배를질겅거리는분도있겠고요.

하긴욕망을붙들고있는것조차힘들어지는때가있습니다.이탈리아의젊은기수인주세페쿨리키아(GiuseppeCulicchia)의장편빗나간내인생(TuttiGiuPerTerra·낭기열라)을권해드립니다.

주인공발테르는고등학교졸업후하는일없이빈둥거립니다.피아트자동차회사의노동자였던아버지도무능합니다.아들을대학에보내지도않았으면서,아들이출세하기를바랍니다.한국식농담으로불도안때주고,냉골타령입니다.발테르는양심적병역거부자로자신을속이고외국인이주자와부랑자상담센터에대체복무를지원합니다.이기관의약자는CANE인데,라는뜻입니다.발테르는답신을기다리는동안대학에청강생으로나갑니다.그러나그곳도그가발붙일영토는없습니다.부자친구들에게그는겉도는사람일뿐입니다.

작가는소설속에이런음악을쿵쿵거리게합니다.섹스피스톨즈(SexPistols)의프로블렘스(Problems),혹은데드케네디즈(DeadKennedys)의할러데이즈인캄보디아(HolidaysinCambodia)같은노래들입니다.발테르에게친구가있지만마약에빠져있고,애인은섹스에만관심이있습니다.

전도된가치여,헤쳐모이라

요즘도미국본토에서만한해에40만부씩팔린다는제롬데이비드샐린저(J.D.Salinger)의명저호밀밭의파수꾼(TheCatcherintheRye)이떠오르지않으십니까?다섯과목중네과목이나낙제점수를받은주인공홀든코필드는12월의사흘반동안을뉴욕의언더그라운드를배회하지요.그가볼때거짓투성이에오염된세상은절망적입니다.홀든의입에서는이런말밖에나올말이없습니다.인생이경기(競技)라고?빌어먹을,경기긴하지.우수한놈들이줄지어서있는쪽에나도붙어있기만한다면.

얼마전프랑스전역을화염과최루가스로뒤덮이게했던폭동기사가기억나십니까.그사건들도이시대적암울과무관하지않습니다.파리에있었을때,교외의빈촌으로내몰린그들의삶을그려서상을여러개받았던90년대영화라앤(LaHaine)을심사했던기억이납니다.증오라는뜻이지요.

빗나간내인생의주인공발테르는이런저런아르바이트를전전하다가마침내서점에일을얻습니다.생존에필요한몇푼을월급으로받습니다.그리고자신이새장에갇히고말았다는것을깨닫습니다.작가는말합니다.삶이라는궁핍한암흑,그구덩이속에서목마른자누구인가?그는그구덩이에서도망치는방법을찾으려고평생을허비했다(5쪽),고요.

(But)!혹시압니까.처음에는아르테포베라(가난한예술·1960년대이탈리아에서시작된전위미술)라고불렸던것들이지금은세련·교양·재산이됐듯이이세상모든치사한것들이전도(顚倒)된가치로헤쳐모여를할지요.삶이우리를속이더라도희망을버릴필욘없겠죠.그러려면일단입에달린고드름부터풀려야겠네요.어,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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