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비탈에서세상을바꾸라
꼭그대로남아있을것같았던큰집뒤란의대나무숲,언제나깊은의자에앉아소박한자세로두팔을벌릴것같았던늙은은사님,수십년전에헤어졌으나아직도그골목길을돌아서나올것만같은첫사랑.지금은흔적도없이어디론가자취를감추고말았겠지요.그러나벌써없어졌을것이라고우리가믿고있는것,아마도사라져버렸을것이라고짐작하고있는그것들을우연히찾아갔을때정말깜짝놀랄만큼그모습그대로남아있는경우도있습니다.
아사다지로의소설집‘산다화’(문학동네)를권해드리는것은,삶의막장에서어디로가야할지갈피를잃고있을당신께가슴을덥히는위로를전하고싶어서입니다.이책에는모두8편의단편이실려있습니다만,우선책제목으로뽑힌‘산다화’라는작품을보지요.
수십명직원을거느리고부동산회사를운영하던다카키씨는파산직전에옛날에살던동네를우연히들르게됩니다.그곳에서산다화가울타리를이루고있는동백장이라는대중목욕탕에들어갑니다.재개발에밀려진작에없어진줄알았는데,이게왠일입니까.단골로마주치던주인영감까지그대로카운터에앉아있습니다.아내와신혼시절에들르곤했던곳이지요.가난했지만따뜻했던시절이주마등처럼되살아납니다.
다카키씨는20년이지난지금자살을생각하고있습니다.부동산거품이꺼지면서회사는회생할길이없습니다.돈을꾸어준은행쪽에서는‘어깨들’을보내서하는말이“일단이자라도성실히갚으라”고으름장을놓습니다.그러나다카키씨는동백장의뜨거운물에몸을담그는그순간,옛날에사라져버렸다고믿었던삶의기억,그러니까진실로살아간다는것의기억들을하나씩되살리기시작합니다.
뒷머리를플라스틱해머로퉁치듯끝없는떨림으로감동을발산하는아사다의단편들은삶의비탈에서허물어지는사람들을주인공으로불러옵니다.명퇴당한직장인,이혼당한남자,자살을결심한신용불량자,아내를잃고혼자딸을키우는노인교수같은사람들입니다.이런소설은조용필의CD를걸어놓고읽어야제격입니다.‘꿈’이란노래아세요?‘화려한도시를그리며찾아왔네/그곳은춥고도험한곳/여기저기헤매다초라한문턱에서/♪뜨거운눈물을먹는다/머나먼길을찾아여기에/꿈을찾아여기에괴롭고도험한이길을왔는데’
아사다지로의팬이시라면아마‘장미도둑’(문학동네)이란소설집도선명하게기억하실줄믿습니다.수록작품중에서도‘수국꽃정사’라는작품을오랫동안잊을수없는데요,내용은정리해고를당한카메라맨과퇴락한온천가의스트리퍼가만나는하룻밤을다루고있습니다.여자는주인공손님에게말합니다.“부탁이에요.나하고같이죽어줘요.”처음만난그날밤정사(情死)를결심한두사람이진한페이소스로독자를흠뻑적셔줍니다.늙은스트리퍼는고객들가운데대학생아들을발견하고그의친구들을하나씩무대로불려올립니다.그들에게스트리퍼가특별서비스를해주는타임이기때문입니다.
뭐야~,일본식엽기잖아~,라고고개를돌려버리지못했습니다.너무나처연한삶의현장에그만아연해졌던기억이날뿐입니다.
두작품중어느것이든읽고나서커튼을젖히고창문을한번열어보십시오.당신의세상이달라져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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