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운명같은것,어쩔수없는것….

운명같은것,어쩔수없는것,저어딘가에이미적혀있는것,그것을아랍어로마크툽이라고합니다.그들이삶의끈을잠깐씩놓아버리는듯한표정을짓는것도번다한생활의고통을견디는방책입니다.슬쩍마크툽에기대보는것입니다.엄혹한남성우위의역사에피눈물을흘렸던여성들은동양이든서양이든아랍세계든자신을위로해온방식은비슷합니다.그건마크툽인게야,라고한마디흘리면서운명탓으로돌리는겁니다.

프랑스의여성소설가파이자게네가쓴내일은키프키프(문학동네)를권해드립니다.서유럽대륙에서태어난아프리카북부출신들과그후손들이살아가는파리변두리의삶을하이틴소녀의시각으로풀어냈습니다.당연히성장소설이라고할수있지요.그러나그안에는고단한일상을영위하는외방인들의한풀이같은것이군데군데녹아있습니다.웬일인지낯설지가않습니다.

주인공에게다정했던유세프오빤감옥에서탈출하지못했고,게이비아줌마는남편몰래바람을피웁니다.그것도시동생이랑요.그런데그시동생이또뭐하는사람이냐면,신부입니다.정말최악입니다.(126쪽)그러나그최악속에서도마치푼수끼가있는사람들처럼툭하면실실웃어댑니다.웃을때가아닌데도웃습니다.마치남들몫까지대신행복해지려고기를쓰는것같습니다.

지난번월드컵때프랑스의지네딘지단이월드컵결승전에서이탈리아선수의가슴을머리로박았던사건이화제가됐는데요,지단이세계적인축구스타가되지않았다면아마이소설의오빠들처럼대도시근교를어슬렁거리며살아가고있을지모릅니다.지단의부모들도북아프리카원주민출신인베르베르족입니다.

최근에스티븐킹단편집스켈레톤크루가새로나왔던데요,킹의작품을좋아하시는분에겐놓칠수없는수작들이들어있습니다.안개라는작품은어떠세요.벼랑?비탈?어쩌면그아래로끝없이하얀안개가깔린깎아지른절벽이기다리고있을지도모를일이다.하얀안개의절벽(188쪽)같은섬뜩한구절들이폭염을잊게해주기때문만은아닙니다.폭풍우가물러가고난후온세상이처음보는괴물들로뒤덮여버렸다는,그래서어디에도인간생명을구원할수있는탈출구는보이지않는다는말세적상황설정속에우리를되돌아보게하는울림이있습니다.

탄화플루오르탈취제스프레이수백만개의공격에오존층이녹아내리는실존주의적호러도있고,잭스나이더감독의새벽의저주같은,한밤중창밖을어슬렁거리는좀비영화도있겠지만,그주인공들은우리에게희망이무엇인지일깨워줍니다.뭐든지하겠어요.다시태양을볼수있다면목숨이라도걸거예요.다시태양을볼수있다면.그말을듣는순간전율이온몸을훑고지나갔다.(219쪽)

내일은키프키프에서작가가말하는것처럼모욕받은자들의흐느낌과저주받은자들의아우성을뚫고나갈수있어야우리는비로소마크툽이란말을주고받으며웃을수있는지도모릅니다.희망이란정말그런것인지도모릅니다.

혹시자전거를처음배우던날을기억하세요?오빠한테서끝까지붙잡고있겠다는굳은약속을받아낸다음자전거에올라탔는데,문득저만치서오빠의목소리가들려옵니다.손놨어!정말아득한데서들려오는목소리지요.(243쪽)이때오빠의손놨어나는널배신했어가아니라,사실은힘내!라는뜻이랍니다.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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