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으면서도막다른벽에둘러싸인…
10년도더된것같은데요,최진희의‘사랑의미로’란유행가가있었습니다.기억나시죠?가사를보면“끝도시작도없이아득한”것이사랑의미로라고토로하고있습니다.그러나끝도시작도없다는것은,사실은우리가세습한온갖신화(神話)들의본질과도관계돼있습니다.
이번주에러시아작가빅토르펠레빈의장편소설‘공포의헬멧’(문학동네)을권해드리는이유도여기에있습니다.이작품은현대적인시각으로다시쓰는세계신화총서중하나입니다.
그리스로마신화에등장하는미노타우로스의미궁을현대의사이버스페이스로옮겨와새롭게변주해낸소설입니다.미노타우로스는‘미노스의소’라는뜻인데반은사람이고반은황소인괴물입니다.미노스왕은미노타우로스를가두기위해다이달로스에게라비린토스,즉미궁을짓게하지요.물론이소설이신화의미궁을이야기하려는건아닙니다.
이소설은처음부터끝까지채팅형식을취하고있습니다.침대와컴퓨터만놓여있는동일한구조의방에서채팅을하고있는현대의등장인물들은자신들이미궁안에있는것인지미궁밖에있는것인지조차헷갈리는상황에갇혀있게된다는것입니다.책제목처럼무시무시한헬멧을쓴가상현실일수도있다는암시입니다.뫼비우스띠를닮은이공간은무한확장이가능해보이지만사실은탈출이불가능한,열려있으면서도막다른벽에둘러싸인기이한미궁을상징하는것입니다.
인간의감정이란,사랑도그렇고우정도그렇고형제애도그렇습니다.꼬이고꼬여서어디가입구고어디가출구인지를알수없을때가어디한두번입니까.최근상영중인니시카와미와감독의일본영화‘유레루’를보면우리가어디까지자신의감정을숨길수있는것인지,또한그것은얼마나정당한것인지를진지하게묻고있습니다.형,형의애인,그리고남동생,이렇게셋이깊은계곡으로놀러가는데,형과애인이15미터상공의흔들다리에서티격태격하다가애인이떨어져죽습니다.이광경을목격한동생은사실은전날밤형의애인과섹스를했을정도로형의것을빼앗아왔습니다.감독은한여자의죽음을놓고형제가법정에서보이는가식적형제애와배신과질투를통해인간의내부에숨겨져있는미로를다시한번신선하게드러냅니다.
2006년나오키상을수상한히가시노게이고의장편소설‘용의자X의헌신’(현대문학)도인간과사랑과그것들의은폐가얼마나복잡하게꼬일수있는미로인지를보여줍니다.자살을하려던뛰어난수학자와한여자가우연히만나는게소설의시작입니다.수학자는한남자로부터괴롭힘을받고있는모녀를위해완전범죄에가까운살인사건을교사해줍니다.그리고모녀가저지른살인을은폐해주기위해자신은또다른살인을저지릅니다.치밀한사고력을발휘한그의은폐작업은성공하는듯했습니다.그러나그의옛친구이자물리학자인라이벌이나타나그의수수께끼를풀어나갑니다.그는수학자의행동을치밀하게재구성해내고,진실을경찰과모녀에게알려줍니다.여자는수학자의헌신과희생을감당하지못하고자수합니다.
자살을하려던사람이오히려타인을위해살인을할수있다는추리물을통해우리는안에서밖에서우리를옴죽못하게얽어매는미로하나를발견하게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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