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들의성장기여섯편
1939년에나온우리대중가요에‘나는열일곱살이에요’가있습니다.‘가만이가만이오세요.요리조리로.당신만아세요.열일곱살이에요’라는가사가이어집니다.로미오와목숨을걸고사랑을해버린줄리엣도우리나이로치면열일곱입니다.몇년전에는서른두살의남자와열일곱여고생이만나는영화‘버스정류장’도있었습니다.그뒤로여고생과열두살연상의직장인의사랑을그린,강풀의빅히트작‘순정만화’도있었군요.미국에는유서깊은‘세븐틴’이라는패션잡지가유명하지요.
뭐,이루다열거할수가없을정도입니다.고금동서를막론하고열일곱은분명설레고수상쩍은나이입니다.이번에는일본최고의서정적스토리텔러라고할수있는에쿠니가오리의열정과시선으로음미해보시길권해드립니다.성장소설‘언젠가기억에서사라진다해도’(소담출판사)인데요,열일곱살여고생들이경험하는이야기여섯편이실려있습니다.제목부터싱숭생숭하면서도달착지근하게구미를댕기는작품들입니다.
버스에서묘령의여인이다가와동성애적인유혹을하지만아무런감흥을느끼지못하는열일곱기쿠코는자신이혹시불감증은아닐까생각합니다.조직과어울리지못하고혼자서남다른정신세계에함몰되어정신분열까지일으키는친구는기쿠코를슬프게합니다.또유즈라는친구는엄마와즐기는쇼핑보다자신을더기쁘게하는남자친구를발견합니다.비만때문에비탄에잠겨있는다른친구가상처를받고쓰는일기,서른중반에되도록독신으로지내고있는이모의이야기,그리고조숙한육체로남자를혼란에빠뜨리는미요등이나옵니다.
무엇보다우리가에쿠니가오리를읽는이유는,“나는초록고양이가되고싶어.다시태어나면.”(82쪽)같은문장이너무매혹적이기때문입니다.때론잘게파편화된문장들로독자의가슴에거칠게타오르는열망을지펴놓습니다.마술같은리듬을갖고있는작가입니다.
이왕달콤쌉싸름한,초콜릿스타일의제목으로가기로했으니까프랑스여성작가니콜드뷔롱의‘당신,내말듣고있어요?’(푸른길출판사)도함께권해드립니다.하루도바람잘날없는중산층주부의일상을그리고있으면서도눈앞에벌어지고있는일처럼생동감있게이야기를펼쳐보이는소설입니다.프랑스의김수현이라고할수있는드뷔롱은우리주변에서매일일어나고있는자잘한사건들을엮으면서한발자국씩사랑의본질로꿰뚫고들어갑니다.
일곱살꼬마가담임선생님에게쏟아붇는열정,사춘기소녀의스타에대한동경,열일곱살소년의짧지만순수한사랑,일흔일곱살할머니의격정과다정함,유통기간은짧지만순도는높은막내딸의러브어페어,첫결혼의쓰라림속에서새로운사랑을찾은큰딸의용기,38년동안남편에게서‘사랑해’라는말을한번도듣지못했지만여전히뜨거운당신의사랑.
‘유치해’‘진부해’‘클리셰잖아’같은화살이쏟아져도사랑이야기를읽고또읽는이유는인생이란관절에기름을치기위해서입니다.대중적글쓰기로인기를모으고있는드뷔롱은독특하게2인칭시점으로소설을쓰는작가입니다.독자인당신을주인공처럼모시려는수법입니다.한번속아보십시오.발걸음이부드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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