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 영화‘러브액추얼리’가한없이가볍고즐거운모드라면,영화‘대정전의밤에’는그것보다는조금무겁고칙칙한분위기입니다.뭐해피엔딩은비슷하지만요.크리스마스이브가낀이번주말에는소설‘대정전의밤에’(문학수첩)를권해드립니다.다큐멘터리와TV드라마제작이전문인미나모토다카시(源孝志)의작품입니다.

  • 크리스마스이브,도쿄에대규모정전이일어난다는설정이소설적인장치입니다.그이전에이소설은여러쌍의상처받은남녀들을시치미뚝떼듯담담하게그려놓습니다.10년전에헤어진애인과오후4시만되면어김없이전화를주고받는재즈바‘FOOLISHHEART’의키큰주인남자가있습니다.마흔여덟살입니다.그리고길건너에‘WISH’라는수제양초가게를하는스물다섯먹은처녀가은근히그남자를사모합니다.

  • 인기절정의톱모델에다나이가아직스물한살밖에되지않은한여자는크리스마스에유방암수술을받아야합니다.그런가하면유명전자메이커의직원인료타로씨는영업본부총괄조정실에서일하는스물여덟미스즈와사귀는불륜관계입니다.료타로는23일은미스즈와보내고,24일밤은아내와보냅니다.(49쪽)

  • 오래전에헤어졌던여자의뒷모습을지하철에서우연히발견하고역승강장까지따라가말을걸었는데,그래서2,3분형식적인인사나나눌까하고그의어깨를두드렸는데,그여자가울고있었다면어떻게하시겠습니까.(60쪽)빅터영의고전명곡‘MyFoolishHeart’,혹은빌에반스의‘WaltzforDebby’를틀어놓고읽기에딱인소설입니다.조용하면서도화려한,따뜻한욕조에서막빠져나온듯나른한기분에빠지게하는‘24일용’소설입니다.

  • 40년전에타계한미국작가카슨매컬러스장편‘고딕소녀’(열림원)도이번주강추입니다.지금부터60년전에출간된소설이지만열두살소녀가겪는성장과고통을잔잔한리듬위에현대적감각으로실어놓았습니다.‘아무도없고,아무일도일어나지않은것같은일상’도괴로움이지만,‘미지의삶을향해뻗어나가고픈동경’도괴롭기는마찬가지입니다.오빠의결혼식을‘느닷없이다가온사건’으로인식하는소녀의선연한격동이,그리고그녀가사용하는생기발랄한언어와감성들이독자들의마음줄을섬세하게흔들어줍니다.‘그일은프랭키가열두살이던해,푸르고미쳤던그여름에일어났다.’가소설의첫문장입니다.이소설역시1952,1982,1997년세번이나영화혹은TV드라마로만들어졌습니다.

  • 매컬러스의매력은리듬감에있습니다.정경과계절이노래의후렴구처럼반복되는가운데유쾌하게전신을파고드는울림들이압권입니다.

  • ‘창백한등꽃이온동네에피더니꽃잎들은조용하게산산이부서졌다.4월의꽃들과신록의나무들에는프랭키를슬프게만드는무엇인가가있었다.왜슬픈가는알수없었지만이특별한슬픔때문에프랭키는동네를떠나야한다는것을깨달았다.…떠나기위해짐을꾸렸지만어디로가야할지알수없었다.’(48쪽)

    프랭키는마침내자신이누구인지알고,어디로가려하는지깨닫게됩니다.그녀는오빠와신부를사랑했고그래서자신은결혼식멤버였다는걸알게되는것입니다.번역을맡은엄용희교수의우리말문장도기품이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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