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을 기다린 친구

오래동안연락이없던친구에게온메모가전화에남겨있었다.
"나야,오랜만에해서이전화가명옥이전화가맞는지도모르겠다."

약간은떨리는목소리의녹음을듣는순간합격했구나하는생각이들었다.
수첩을찾아바로전화를했다.
예상대로드디어사법고시시험에합격했단다.

친구는20년전현대그룹에입사했을때만난28명의여자동기생중하나이다.
출신학교는달랐지만마음이맞아서계속연락을하며지냈던터다.

건설에배치되었던친구는일한지1년만에그만두었다.
여직원들의텃세가워낙심했던탓이었다.
어느날인가는여직원들에게집단으로린치를당할뻔하기도했는데그것이그만둔직접적인원인이되었다.
나이많은여직원들에게언니라고부르지않고’∼씨라고이름을불렀다는것이죄목이었다.

친구는현대를그만두고나서당시여당이었던민정당의공채시험에합격해서들어갔다.
당시민정당사가인사동에있을때여서가끔점심시간을같이하였었다.
나는사무실이계동이라아주가까운거리였다.

친구는성품이단순하고깨끗하며사회와국가를위한고민을많이하였다.
민정당여성부에서인정을받으며몇년간일했는데그것이부끄럽다고하였다.
그러더니어느날그런정치적부담이없는전문적인일을해보겠다고하며그만두었다.

그리고는바로사법시험준비를하였다.
그러나어머니가아프신바람에병간호를오래하게되었고시험공부는중단할수밖에없었다.
그리고몇년후어머니가돌아가신후에다시시작을하였다.

친구를생각할때마다늘가슴한편이무거웠다.
아주가끔씩만날때마다결심이바뀌지않는것을보고,
"그래,언젠가는네꿈이이루어질날이있겠지.열심히해라."라는것이내가해줄수있는말이었다.

오늘이있기까지9년간을혼자매달려온것이었다.
부모님이돌아가시고남겨준집에서함께살아왔던결혼한여동생이그렇게펑펑울었다고한다.
그동안그렇게오랜시간애쓰는언니를지켜보던것이힘들었었단다.

2년의연수원생활을마치고무엇을할지는차차두고생각하겠다는친구.
오랫동안꿈꾸고생각해온일들을차근차근해나가리라믿는다.
그리고이사회에무엇인가기여를할것이라기대한다.

이제잠좀푹자라는나의말에친구는연수원대비공부를다시시작했단다.
그리고계속떨어지면트럭운전이라도할까해서따놓으려고시도했다가중단했던운전1종면허시험에도재도전해야한단다.
그래서구정이지난2월에야만나기로했다.

친구와전화를통화를끝내고난뒤정말아주정말오래묵은숙제를한기분이들었다.
친구가신림동고시원에틀어박혀하루서너시간자며책과씨름하는동안나는학교를두번이나다니고있고직장을두번바꿨으며일한다고세계곳곳을돌아다녔고결혼을하였다.

이제친구가일상의작은행복들을누릴수있기를소망한다.
(2002.2월)

Gooddeedsarenotsubstituteforthegoodnews.
선행으로복음을대신할수는없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