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인디안이함께한첫번째추수감사절
매년11월마지막목요일은미국의추수감사절날이다.한국의추석에비유될많큼큰명절이다,몇천만의미국인이
부모형제를찾아북미대륙을횡단해야하는대이동을하는명절이다.한국의수능고사일이면날씨가갑자기추워지듯,
추수감사절날이가까이오면택사스의기후는보통구름이끼고기온이급강하한다.
어제,수요일밤,밤새강풍이불어공사중인창고에서삐거덕소리를내며밤새시끄럽게들렸다.창밖뒷뜰에서있는
은행나무는바람을이기지못해쓰러질것처럼왼쪽으로몸이기울어저뿌리채뽑힐듯몸을가누지못한다.
영국에서종교분리주의집단인청교도들은종교박해를피해서화란으로건너가자유로운종교생활을영유하다
청교도들과화란인들사이에문화적인차이의충돌이있자이들은영국에서주식을거래하는회사와협상을벌여
미국으로가는경비를충당하기로타협이되여메이플라워호를타고타고대서양을건너게되였다.102명의메이풀라워
승객중에청교도는1/3에불과했고나머지인원은경비를제공한회사의이익을보호하기위해고용된사람들이었다.
메이풀라워호는대서양을횡단해미동북연안플리머스에겨울인1620년12월11일날닺을내렸다.청교들과이주민들의
첫해는지옥같은한해였다.첫해에102명중46명이사망하는힘든첫해는원주민인인디안들의도움이없었다면불가능한일이었다.
1621년,농사의결과는풍년이었다.추수를끝낸생존자들은자신들을신대륙에서첫해에살아남게도와준91명의인디안들과함께잔치를벌이기로했다.사가들은인디안들의도움이없었다면이주한영국인들은생존할수없었다고의견의일치를보는것은인디안들의도움이이주자들의생존에결정적인역활을했기때문이다.
청교도들은첫해수확한호박과옥수수,사냥한들새로음식을장만하고91명의인디안들을초대했다.이주민과원주민
이함께앉아음식을먹는테이불에서양대륙의식탁문화가충돌했다.원주민인인디안들의식탁문화는남녀의구별이없이함께식탁에앉아식사를했지만,영국인들의식탁매너는남자가식사를끝내야여자들은남자들이남긴음식을먹는식탁매너는미국인들이80년대한국가정집에초대받아식사를한후,한국여자들은남자들과함께식사를하지못하고남자들이음식을먹은다음에남긴음식을먹는다고흑평을했든미국인들은자기들의조상들이불과사백년전에어떤식탁매너를가지고있었는지도모르고한국의식탁문화를비하했었다.
구대륙에서가지고온밀가루가동이난첫번쩨추수감사절은삶은호박과,옥수수가루를튀겨내고사냥한들새고기가전부였다.이를본인디안들은가족들을집에보내사냥한들짐승고기와그들의음식을가지고와이주민들과함께3일간잔치를벌였다.
토사구팽
청교도와함께이주한영국인들은,원주민인인디안들의도움으로신대륙에서첫해를살아남을수있었으나이들이매년
신대륙에적응하는능력이생기면서인디안들을야만인으로취급하며그들을멸시하면서이주민과원주민사이에
갈등이생기기시작하며상대를죽여야되는전쟁이빈번하게발생하기시작했다.토끼사냥이끝나면개를잡아먹는다는말처럼,이주민들은자신들을도와준인디안들과공존을택하는대신,그들의땅을총과칼로뺏고죽이며정복해원주민을보호구역으로몰아넣고광대한서부를유럽인들은허울좋은조약을맺어가며인디안들의영토를정북했다.
인디안제부족과미연방정부사이에는총270여개의조약이맺어졌다.미연방정부가약속한조약을지킨총조약수는현재까지"0"개의조약이다.
한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