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위서-동이전

삼국지위서-동이전
三國志卷三十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第三十
東夷:夫餘·高句麗·東沃沮·相婁·濊·韓·倭.

前言

書稱[東漸于海,西被于流沙].其九服之制,可得而言也.然荒域之外,重譯而至,非足跡車軌所及,
未有知其國俗殊方者也.自<虞><周>,西戎有白環之獻,東夷有<肅愼>之貢,皆曠世而至,其遐遠也
如此.及<漢>氏遣<張騫>使<西域>,窮<河>源,經歷諸國,遂置都護以總領之,然後<西域>之事具存,
故史官得詳載焉.<魏>興,<西域>雖不能盡至,其大國<龜玆>·<于>·<康居>·<烏孫>·<疎勒>·<
月氏>·<善>·<車師>之屬,無歲不奉朝貢,略如<漢>氏故事.而<公孫淵>仍父祖三世有<遼東>,天
子爲其絶域,委以海外之事,遂隔斷東夷,不得通於諸夏.<景初>中,大興師旅,誅<淵>,又潛軍浮
海,收<樂浪>·<帶方>之郡,而後海表謐然,東夷屈服.其後<高句麗>背叛,又遣偏師致討,窮追極
遠,踰<烏丸>·<骨都>,過<沃沮>,踐<肅愼>之庭,東臨大海.長老說有異面之人,近日之所出,遂周
觀諸國,采其法俗,小大區別,各有名號,可得詳紀.雖夷狄之邦,而俎豆之象存.中國失禮,求之四
夷,猶信.故撰次其國,列其同異,以接前史之所未備焉.

‘서경’에서말하길’동쪽은바다에이르고,서쪽으로는유사에접한다.’라고하니,이는그구복
의제도를얻음을말한다.그리하여,거칠은지역의바깥에도,중요한역사들이이르렀으나,발
자취와수레바뀌가미치지않으면,그나라의풍속과타국을알수없다.’우’에서’주’에이르
기까지서융은백환을받침이있었고,동이는’숙신’의조공이있었다.그러나,여러대에이르
르는것이니,멀고먼것이이와같은것이다.’한’에이르러’장막’을서역으로파견하여,’황
하’의근원에다다르고,여러나라를지나니,이르러도호를둠으로써,이를다스렸다.그러한이
후로서역의일이보존하게되고,고로사관들이자세한이야기를얻을수있었다.’위’가일어
나자,’서역’이비록능히전부이르르지못했으나,그큰나라인’구자’,’우치’,’강거’,’오
손’,’소륵’,’월씨’,’선선’,’거사’가속하니,세세토록조공을받치지않음이없으니,’한’의
옛일과같은다스림이었다.’공손연’이아버지,할아버지부터삼대를’요동’에있으니,천자가
그지역과단절하고,해외의일을내버려두었다.이에’동이’와단절하고,여러나라들은통함
을얻지못하엿다.’경초’중에군사를크게내어’연’을베고,군사를죽이니,’낙랑’과’대방’
의고을을거두어들이니,후에바다가고요해지고,동이가굴복하였다.후에’고구려’가모반
을하자,또군사를파견하여치고,멀리까지쫓아가니,’오환’과’골도’를넘어,’옥저’를지
나,’숙신’의땅까지밟으니,동쪽으로큰바다에임하였다.늙은노인이말하길,다른얼굴을
가진사람이해가떠오르는곳가까이있다하여,두루여러나라를보아그법과풍속을얻으
니,크고작은구별이있고각각이름이있어가히얻어자세히기록하는것이다.비록오랑캐의
나라이지만,조두모양의그릇이있다.중국에서예를잃어버리면,사이에서구한다하는것은
역시믿을만한것이다.고로,그나라의일을기록하여,같음과다름을열거하여과거의역사가
아직갖추지못한것을보충하려고하는것이다.

夫餘

<夫餘>在<長城>之北,去<玄>千里,南與<高句麗>,東與<相婁>,西與<鮮卑>接,北有<弱水>,方可
二千里.戶八萬,其民土著,有宮室·倉庫·牢獄.多山陵·廣澤,於東夷之域最平敞.土地宜五穀,
不生五果.其人序大,性彊勇謹厚,不寇.國有君王,皆以六畜名官,有馬加·牛加·加·狗加·
大使·大使者·使者.邑落有豪民,名下戶皆爲奴僕.諸加別主四出,道大者主數千家,小者數百家.
食飮皆用俎豆,會同拜爵洗爵,揖讓升降.以殷正月祭天,國中大會,連日飮食歌舞,名曰迎鼓,於是
時斷刑獄,解囚徒.在國衣尙白,白衣大袂,袍·袴,履革.出國則尙繒繡錦,大人加狐狸·
白·黑貂之,以金銀飾帽.譯人傳辭,皆,手據地竊語.

‘부여’는’장성’의북쪽에있다.’현토’에서천리를간다.남으로’고구려’가있고,동쪽으로
‘읍루’가잇으며,서쪽으로’선비’가있다.북쪽으로’약수’가있으며,가히이천리이고호수는
팔만호이다.그백성은토착생활을하고,궁실과,창고,감옥이있으며,산과능선이많으며,연
못이넓으니,동이의지역중에가장평평하다.흙은오곡에마땅하고,오과는나지않는다.그
사람은과격하고,크다.성격은강하고용감하며,삼갈줄알고,후덕하니도둑질하지않는다.
나라에군옹이있고,모두여섯가축의이름으로관직을명하니,’마가’,’우가’,’저가’,’구
가’,’대사’,’대사자’,’사자’가있다.읍락에는호민이있는데,신분이천한사람들을모두
노비로하였다.여러’가’의주인은각각사방을다스리는데,도가큰자의주인은수가천집이고
작은자는백집이다.음식을먹음에는모두조두를사용하고,여럿이모이는때에는서로절하고
잔을씻어술을마시며,서로읍하고사양하면서출입한다.’은’의정월에하늘에제사를지내는
데나라의큰모임이다.연일음식과가무를하는데,이를’영고’라한다.이때에는형벌과가둠
이없고,죄인들을풀어준다.나라에서옷에흰색을숭상하여,백색옷에소개가넓고,도포와
바지가있다.신발은가죽으로한다.나라에서나갈때는비단옷을입기를숭상한다.성인은여
우,원숭이,흑색담비가죽으로옷을해입으며,금은으로모자를장식한다.통역하는사람이말
을전할때는모두꿇어손을땅에대고,조용히말을한다.

用刑嚴急,殺人者死,沒其家人爲奴婢.竊盜一責十二.男女淫,婦人,皆殺之.尤憎,已殺,尸
之國南山上,至腐爛.女家欲得,輸牛馬乃與之.兄死妻嫂,與<匈奴>同俗.其國善養牲,出名馬·赤
玉·貂·美珠.珠大者如酸棗.以弓矢刀矛爲兵,家家自有鎧仗.國之耆老自說古之亡人.作城柵皆
員,有似牢獄.行道晝夜無老幼皆歌,通日聲不絶.有軍事亦祭天,殺牛觀蹄以占吉凶,蹄解者爲凶,
合者爲吉.有敵,諸加自戰,下戶俱擔糧飮食之.其死,夏月皆用.殺人殉葬,多者百數.厚葬,有
槨無棺.{《魏略》曰:其俗停喪五月,以久爲榮.其祭亡者,有生有熟.喪主不欲速而他人彊之,常諍
引以此爲節.其居喪,男女皆純白,婦人着布面衣,去環,大體與中國相彷彿也.}
형벌을사용함에엄하고급하여,살인한자는죽이고,그가족은노비로삼는다.도둑질한자는
열두배로갑으며,남녀가음탕하거나,부인이투기를하면,이를모두죽인다.특히투기를미워
하여,이미죽은시체를나라의남쪽산위에두고썩힌다.여자집에서이를얻을려면,소나말
로갚은후옮긴다.형이죽으면,형수를처로삼는데,’흉노’와풍습이같다.나라에서좋은소
(제사용)을기르고,이름있는말,붉은옥과담비와아름다운구슬이나온다.구슬이큰것은대
추만하다.활과화살칼과창으로써병기를하고,집집마다모두갑옷과무기가있다.나라의
늙은노인이말하길,옛날망명인들이성을지을때성책을둥글게하니,감옥과같았다.밤낮
길을가며노인과아이없이모두노래를부르니,종일소리가끊이질않았다.군사를일으킬때
도하늘에제사를지내니소를잡아그굽을보아길흉을점쳤다.굽이풀어져있으면흉하고합
쳐져있으면길하였다.적의침입이있으면,모든’가’들이스스로전쟁을하는데,아래백성들
은양식과음료를짊어지고이를먹였다.그가죽으면,여름에는얼음을사용하고,사람을죽여,
순장을하는데,많으면,백명이나되었다.장사는후하게치루고,곽은있으나,관은없다.’위
략’에그풍속에장사는오개월이나되는데,오랠수록성한것이다.망자에게제사를지내는데,
산채로하는것도있고,익히는것도있다.상주는빨리하고자하지않지만,다른사람이강제
로잡아당겨다투면서이를한다.상에거할때,남녀는모두하얀옷을입고,부인은베옷을
입고,목거리와패물을때어놓으니,대체적으로중국과비슷함이있다.

<夫餘>本屬<玄>.<漢>末,<公孫度>雄張海東,威服外夷,<夫餘王><尉仇台>更屬<遼東>.時<句麗
>·<鮮卑>彊,<度>以<夫餘>在二虜之間,妻以宗女.<尉仇台>死,<簡位居>立.無適子,有子<麻余
>.<位居>死,諸加共立<麻余>.牛加兄子名<位居>,爲大使,輕財善施,國人附之,歲歲遣使詣京都
貢獻.<正始>中,<幽州>刺史<丘儉>討<句麗>,遣<玄>太守<王>詣<夫餘>,<位居>遣大加郊迎,
供軍糧.季父牛加有二心,<位居>殺季父父子,籍沒財物,遣使簿斂送官.舊<夫餘>俗,水旱不調,五
穀不熟,輒歸咎於王,或言當易,或言當殺.

‘부여’는본래’현토’에속하였는데,’한’말에’공손도’가바다동쪽에서크게일어서자,바깥
오랑캐를위엄으로복속시켰다.부여왕’위구태’는다시’요동’에속하였다.’구려’와’선비’가
강성하자,’공손도’가’부여’가두오랑캐사이에있자,종실의여자를처로삼게했다.’위구태
가죽자,’간위거’가섰다.적자가없고,첩의아들인’마여’가있어,’위거’가죽자여러’가
‘들이함께’마거’를세웠다.’우가’의형의아들이있는데,그이름도’위거’이니,대사로하였
다.재물을가벼이여기고,선을배푸니,나라사람들이따랐다.세세토록사신을파견하여서울
에이르러공물을바쳤다.’정초’중에’유주’자사’관구검’이’구려’를벌하고,’현토’태수’왕
기’를부여에보냈는데,’위거’가대가를보내어성밖에서맞이하여,군량을보태었다.계부인
우가가두마음이있자,’위거’가계부의아비와아들을죽이고,재물을빼앗아기록하고,염송
관으로보내었다.옛’부여’의풍속에가뭄이들고,날이고르지못하여,오곡이익지않으면,
갑자기그왕을책망하는데,’혹바뀜이마땅하고,죽이는것이마땅한것이다.’라고말한다.

<麻余>死,其子<依慮>年六歲,立以爲王.<漢>時,<夫餘>王葬用玉匣,常豫以付<玄郡>,王死則
迎取以葬.<公孫淵>伏誅,<玄>庫猶有玉匣一具.今<夫餘>庫有玉璧·珪·瓚數代之物,傳世以爲
寶,耆老言先代之所賜也.{《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其印文言[<濊王>之印],
國有故城名<濊城>,蓋本<濊貊>之地,而<夫餘>王其中,自謂[亡人],抑有(似)[以]也.{《魏略》曰:
舊志又言,昔北方有<高離>之國者,其王者侍婢有身,王欲殺之,婢云:[有氣如?子來下,我故有身.]
後生子,王捐之於中,以喙噓之,徙至馬閑,馬以氣噓之,不死.王疑以爲天子也,乃令其母收畜
之,名曰<東明>常令牧馬.<東明>善射,王恐奪其國也,欲殺之.<東明>走,南至<施掩水>,以弓擊
水,魚鼈浮爲橋,<東明>得度,魚鼈乃解散,追兵不得渡.<東明>因都王<夫餘>之地.}

‘마여’가죽었는데,그아들’의려’가여섯살로왕위에올랐다.’한’때에부여왕은옥갑으로
장사를지내는데,항상’현토군’에놓아두었다가,왕이죽으면곧가져다가장사하였다.’공손
연’을쳤을때’현토’의곳간에옥갑하나가있었다.이제’부여’의곳간에는옥벽과규와제기
들이있으니,세세토록전하는보물로,늙은노인이말하길선대에하사받은것이라한다.[위
략에말하길그나라는몹시부유하니선대부터왔다.아직깨어지지않았다.]그동장의글자에
‘예왕의도장’이라하니나라의옛성에’예성’이있다.대개근본은’예맥’의땅이다.’부여’가
그가운데에서왕노릇을하고,스스로’망인’이라하니,있을수있는것이다.위략에서말하길
예날북방에’고리’국이있었다.그왕의시녀가태기가있어,왕이이를죽이고자하자시녀가
말하길계란같은기운이있어내려와내가임신을하게되었다하였다.후에아들을낳으니왕이
돼지우리에버렸으나,돼지들이입기운으로덥히고,마굿간으로옮기자말들도이와같아,죽지
않았다.왕이괴이하게여기고,하늘의아들로간주하여그어미에게거두어기르게하였다.이
름을’동명’이라하고말을기르게명하였다.’동명’은궁술에능하자,왕이나라를빼앗길까봐
두려워하여이를죽이고자하였다.’동명’이달아나남쪽의’시엄수’에이르러,활로물을치
자,물고기와자라가떠올라다리를만들었다.’동명’이건너자물고기와자라들이이네흩어지
자,쫓던병사들은건널수가없었다.’동명’은이로인하여,’부여’의땅에서왕노릇하고있다.

高句麗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南與<朝鮮>·<濊貊>,東與<沃沮>,北與<夫餘>接.都於<丸都>之下,方
可二千里,戶三萬.多大山深谷,無原澤.隨山谷以爲居,食澗水.無良田,雖力佃作,不足以實口
腹.其俗節食,好治宮室,於所居之左右立大屋,祭鬼神,又祀靈星·社稷.其人性凶急,喜寇.其
國有王,其官有相加·對盧·沛者·古雛加·主簿·優台丞·使者·衣先人,尊卑各有等級.東夷舊
語以爲<夫餘>別種,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本有五族,有<涓奴部>·<絶奴部>·
<順奴部>·<灌奴部>·<桂婁部>.本<涓奴部>爲王,稍微弱,今<桂婁部>代之.

‘고구려’는’요동’의동쪽천리에있다.남쪽은’조선”예맥’이있고,동쪽은’옥저’가있으며,
북쪽은’부여’에접한다.도성은’환도’로,사방이천리이며호수는삼만이다.큰산과깊은계
곡이많으며,벌판과호수가없다.산과골짜기를따라거주하며,계곡물을마신다.좋은밭이
없어,비록힘써서밭을경작하지만,열매가충분하지않아,배가고프다.풍속에음식을절약하
고,집을관리하는것을즐겨그거하는곳에큰집을좌우에세우고,귀신에제사지낸다.또한
신령스런별과토지신에게도제사지낸다.그사람들의성품이흉악하고급하여,도둑질함을즐
긴다.그나라에왕이있고관직이있어’상가’,’대로’,’패자’,’고추가’,’주부’,’우태승’,
‘사자’,’조의’,’선인’이라하니,높고천함의등급이각각있다.동이의오랜말로써’부여’의
다른종류로언어가여러가지이나,’부여’와같은것이많다.그러나,그성질과기운과의복은
다름이있다.본래는다섯부족으로’연노부’,’절노부’,’순노부’,’관노부’,’계루부’가있다.
본래’연노부’에서왕을했는데,점점약해저,이제는’계루부’에서대를잇는다.

<漢>時賜鼓吹技人,常從<玄郡>受朝服衣,<高句麗>令主其名籍.後稍驕恣,不復詣郡,于東界築
小城,置朝服衣其中,歲時來取之,今<胡>猶名此城爲<溝>.<溝>者,<句麗>名城也.其置
官,有對盧則不置沛者,有沛者則不置對盧.王之宗族,其大加皆稱古雛加.<涓奴部>本國主,今雖不
爲王,適統大人,得稱古雛加,亦得立宗廟,祠靈星·社稷.<絶奴部>世與王婚,加古雛之號.諸大加
亦自置使者·衣先人,名皆達於王,如卿大夫之家臣,會同坐起,不得與王家使者·衣先人同列.

한나라때에북치고피리부는재주를가진사람을하사하였는데,항상’현토군’에서조복과의책
을받아갔다.’고구려’를영주로서그이름을기록하였다.후에점점교만해지고방자해지더니.
군에복종하지않고,또한동쪽경계에작을성을쌓았다.조복과의책을그가운데두면,해마
다이를가질러왔다.이제’호’들조차도그성의이름을’책구루’라한다.’구루’라는것은
‘구려’의성의이름이다.이곳에관을두고’대로’을두면,’패자’를두지않고,’패자’를두면.
‘대로’를두지않았다.왕의종족으로’대가’는모두’고추가’로칭하는데,’연노부’가본래나
라의주인으로이제는비록왕이아니라하더라도,혈통을잇는대인으로’고추가’가칭한다.역
시종묘를세우고,영성과사직에제사를지낼수가있다.’절노부’는세세토록왕과혼인을하
는여,’고추’라는이름을얻었다.여러대가들은역시스스로’사자’,’조의’,’선인’을두어그
이름을모두왕에게알리는데,’대부’벼슬하는집의신하들은모임에앉거가일어서는데있어,
왕가의’사자’,’조의’,’선인’과같은반열을얻지는못한다.

其國中大家不佃作,坐食者萬餘口,下戶遠擔米糧魚鹽供給之.其民喜歌舞,國中邑落,暮夜男女
聚,相就歌戱.無大倉庫,家家自有小倉,名之爲京.其人淸自喜善藏釀.拜申一脚,與<夫餘>
異,行步皆走.以十月祭天,國中大會,名曰東盟.其公會,衣服皆錦繡金銀以自飾.大加主簿頭著
,如而無餘,其小加著折風,形如弁.

그나라의대가들은밭을갈지않는데,앉아서밥먹는자가만여호나이른다.아랫사람들이멀
리서부터쌀과양식과물고기와소금을짊어지고와서공손히보태준다.그백성들은노래와춤
추는것을좋아하여,나라의읍락에서는밤이되면남녀가무리지어모여들어,서로따르며노래
하고춤춘다.큰창고는없으나집집마다스스로작은창고가있어,이름하여’부경’이라한다.
사람들은탐욕이없지만,좋은술을감춰두는것을좋아한다.꿇어엎드려절할때다리하나를
뻗는데,’부여’와이것이다르다.길을갈때는모두달린다.시월에하늘에제사를지내는것이
나라의큰모임으로’동명’이라고한다.공적인모임때의,의복은모두비단이고금과은으로스
스로를꾸민다.’대가’나’주부’는머리에두건을하는데,수건같이생기고,뒤가없다.’소가’
는절풍을하는데,형태가고깔과같다.

其國東有大穴,名隧穴,十月國中大會,迎隧神還于國東上祭之,置木隧于神坐.無牢獄,有罪諸加評
議,便殺之,沒入妻子爲奴婢.其俗作婚姻,言語已定,女家作小屋於大屋後,名壻屋,壻暮至女家戶
外,自名拜,乞得就女宿,如是者再三,女父母乃聽使就小屋中宿,傍頓錢帛,至生子已長大,乃將
婦歸家.其俗淫.男女已嫁娶,便稍作送終之衣.厚葬,金銀財幣,盡於送死,積石爲封,列種松柏.
其馬皆小,便登山.國人有氣力,習戰鬪,<沃沮>·<東濊>皆屬焉.又有<小水貊>.<句麗>作國,依大
水而居,<西安平縣>北有小水,南流入海,<句麗>別種依小水作國,因名之爲<小水貊>,出好弓,所謂
<貊>弓是也.

그나라의동쪽에큰굴이하나있는데,’수혈’이라한다.시월나라의큰모임에서수혈신을
맞이하여나라동쪽에서하늘에제사를지내는데,나무로수혈신의자리를만들어둔다.감옥이
없고,죄가있으면,여러’가’들이모여의논하여,이를죽인후처자는노비로삼는다.그혼인
하는풍속은말로써이미정해지면,여자의큰집뒤에작은집을짓는데,이를’서옥’이라한
다.사위될사람이저녁무렵에여자의집대문밖에이르러,스스로의신분을밝힌후꿇어엎
드려절한후에여자와하룻밤자기를청하는데,보통두세번한다.여자의부모님이받아들여
작은집에서잠잘수있게하면,돈과비단을내놓는다.아들은낳아장성하게되면,이에마땅
히부인과집으로돌아온다.그풍속은음란하다.남녀가결혼만하면,조금씩죽어서입을옷
을만든다.장사는후하게하는데,금은비단을죽은자에게보낸다.(함께묻는다.??)돌을쌓아
봉분을하고,소나무와잣나무를심는다.말들은모두작아,산을오르기에편하다.나라사람들
은기력이있고,전투를익힌다.’옥저’,’동예’가모두속하였다.또한’소수맥’도속하였다.
‘구려’가나라를일으킬때큰물을의지하여일어났는데,’서안평현’북쪽에소수가잇어남쪽으
로흘러바다로들어간다.’구려’의별종으로소수를의지해나라를일으키니,인하여’소수맥’
이라고이름한다.좋은활이나오니,소위’맥궁’이라한다.

<王莽>初發<高句麗>兵以伐<胡>,不欲行,彊迫遣之,皆亡出塞爲寇盜.<遼西>大尹<田譚>遣擊之,爲
所殺.州郡縣歸咎于<句麗侯><>,<嚴尤>奏言:[<貊>人犯法,罪不起于<>,且宜安慰,今猥被之
大罪,恐其遂反.]<莽>不聽,詔<尤>擊之.<尤>誘期<句麗侯><>至而斬之,傳送其首詣<長安>.<莽
>大悅,布告天下,更名<高句麗>爲<下句麗>.當此時爲侯國,<漢><光武帝>八年,<高句麗王>遣使朝
貢,始見稱王.

‘왕망’초에’고구려’병사를일으켜’호’를치려고하는데,가고자하질않았다.강제로다그쳐
이에파견하였는데,모두변방에서달아나버려도둑이되었다.요서대윤’전담’을보내어이를
공격하게하였는데,거기에서살해당하였다.주군현에서’구려후추’에게허물을돌리자,’엄
우’가진언하길’맥인이법을범한것이니,죄는’추’에게있지않습니다.오히려위로함이마땅
합니다.이제큰죄를뒤집에쒸우면,반란을일으킬까두렵습니다.’하였으나,’망’이듣지않
고,’우’에게공격하라명하니,’우’가’구려후추’를꾀어,만나길약속하자,’추’가이르자이
를베고,그머리를’장안’으로보내었다.’망’이크게기뻐하며,천하에포고하길’고구려’의
이름을’하구려’로바꾸어명하게하였다.마땅히이때부터후국이되었다.’한”광무제’팔년
‘고구려왕’이사신을파견하여조공하자,왕이라칭하기시작했다.

至<>·<安>之間,<句麗王><宮>數寇<遼東>,更屬<玄>.<遼東>太守<蔡風>·<玄>太守<姚光>以
<宮>爲二郡害,興師伐之.<宮>詐降請和,二郡不進.<宮>密遣軍攻<玄>,焚燒<候城>,入<遼隧>,
殺吏民.後<宮>復犯<遼東>,<蔡風>輕將吏士追討之,軍敗沒.

‘상제’와’안제’의사이에이르러,’구려왕궁’이수차례’요동’을침범하자다시’현토’가속하
게하였다.요동태수’제풍과현토태수’요광’이’궁’이두고을에해가된다하여,군사를일
으켜이를쳤다.’궁’이거짓항복하며화친하길청하자,두군이나아가질않았다.’궁’이비밀
히군사를보내어’현토’를공격하여,’후성’을불사르고,’요수’에들어와관리와백성을죽였
다.후에’궁’이다시’요동’을침범하자,’제풍’이제빨리군사를내어이를토벌하려했지만,
군사가패하고말았다.

<宮>死,子<伯固>立.<順>·<桓>之間,復犯<遼東>,寇<新安>·<居鄕>,又攻<西安平>,于道上殺<
帶方>令,略得<樂浪>太守妻子.<靈帝><建寧>二年,<玄>太守<耿臨>討之,斬首虜數百級,<伯固>
降,屬<遼東>.(嘉)<[熹]平>中,<伯固>乞屬<玄>.<公孫度>之雄海東也,<伯固>遣大加<優居>·主
簿<然人>等助<度>擊<富山>賊,破之.

‘궁’이죽고아들’백고’가섰다.’순제’와’환제’사이에다시’요동’을침범하여’신안’,’겨
향’을약탈하고,또한’서안평’을공격하였다.길위에서’대방’태수를살해하고,’낙랑’태수의
처자를얻어,사로잡았다.’영제건안’이년’현토’태수’경임’이고구려를침공하여포로수백
의머리를베자’백고’가항복하여,’요동’에속하였다.’가평’중에’백고’가’현토’에속하길
빌었다.’공손도’의웅지가바다동쪽에이르자,’백고’가대가’우거’와주박’연인’등을파견하
여,’공손도’를도와’부산’의적을공격하는데도움을주어,이를깨뜨렸다.

<伯固>死,有二子,長子<拔奇>,小子<伊夷模>.<拔奇>不肖,國人便共立<伊夷模>爲王.自<伯固>
時,數寇<遼東>,又受亡<胡>五百餘家.<建安>中,<公孫康>出軍擊之,破其國,焚燒邑落.<拔奇>怨
爲兄而不得立,與<涓奴>加各將下戶三萬餘口詣<康>降,還住<沸流水>.降<胡>亦叛<伊夷模>,<伊夷
模>更作新國,今日所在是也.<拔奇>遂往<遼東>,有子留<句麗國>,今古雛加<位居>是也.其後復
擊<玄>,<玄>與<遼東>合擊,大破之.

‘백고’가죽었는데,두아들이있어,장자는’발기’이고,작은아들은’이이모’이다.’발기’가불
초하여나라사람들이함께,’이이모’를왕위에세웠다.’백고’때에수차례’요동’을침략하고,
또한망한’호’의오백여가를받아들였다.’건안’중에’공손강’이군사를내어,공격하여,그나
라를(고구려)깨뜨리고,고을을불살랐다.’발기’가형으로써,왕이되지못함을원망하여,’연
노부’의’가’와백성삼만여호를데리고,’공손강’에항복하고,’비류수’로돌아와살았다.항복
한’호’역시’이이모’를배반하였다.’이이모’가다시새로운나라를세웠는데,금일의있는것
이이것이다.’발기’는’요동’으로가고,아들을’구려국’에남겼는데,지금의고추가인’교위
거’가이것이다.후에다시’현토’를공격하자,’현토’가’요동’과함께공격하여크게깨뜨렸
다.

<伊夷模>無子,淫<灌奴部>,生子名<位宮>.<伊夷模>死,立以爲王,今<句麗王><宮>是也.其曾祖名
<宮>,生能開目視,其國人惡之,及長大,果凶虐,數寇,國見殘破.今王生墮地,亦能開目視人,
<句麗>呼相似爲位,似其祖,故名之爲<位宮>.<位宮>有力勇,便鞍馬,善獵射.<景初>二年,太尉<
司馬宣王>率衆討<公孫淵>,<宮>遣主簿大加將數千人助軍.<正始>三年,<宮>寇<西安平>,其五年,
爲<幽州>刺史<丘儉>所破.語在《儉傳》.

‘이이모’는아들이없어,’관노부’와음란하여아들을낳으니,’위궁’이다.’이이모’가죽고왕
위에섰다.지금의’구려왕궁’이이것이다.그증조의이름도’궁’인데,태어나서능히눈을뜨
고보았다.그나라사람들이이를싫어하였다.장성하자,흉악하고사나워져,수차례도둑질과
노략질을하여,나라를헤롭게하고,깨지게하였다.지금의왕도타지에서태어나역시능히눈
을뜨고사람을보니,’구려’사람들이그증조와닮았다하여,서로부르기를,’위궁’이라하였
다.’위궁’은힘과용기가있고,말을잘타며,궁술에능하였다.’경초’이년태사’사마선왕’이
군사를이끌고,’공손연’을치자,’궁’이주박과대가인장수와병사수천인을파견하여도왔
다.’정시’삼년’궁’이’서안평’을침략하고,오년’유주자사관구검’에게깨졌다.’검전’에있
어전한다.

沃沮(東沃沮)

<東沃沮>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濱大海而居.其地形東北狹,西南長,可千里,北與<相婁>·<
夫餘>,南與<濊貊>接.戶五千,無大君王,世世邑落,各有長帥.其言語與<句麗>大同,時時小異.<
漢>初,<燕>亡人<衛滿>王<朝鮮>,時<沃沮>皆屬焉.<漢><武帝><元封>二年,伐<朝鮮>,殺<滿>孫<右
渠>,分其地爲四郡,以<沃沮城>爲<玄郡>.後爲夷貊所侵,徙郡<句麗>西北,今所謂<玄>故府是
也.<沃沮>還屬<樂浪>.

‘동옥저’는’고구려’의’개마대산’의동쪽에있다.큰바다에임하여거한다.그땅의형태는동
쪽과북쪽은좁고서쪽과남쪽은길다.가히천리이다.북쪽으로’읍루’와’부여’에접하고,남
쪽으로’예맥’에접한다.호수는오천이다.큰군장은없고,세세토록읍락각각에’장사’가있
다.그언어는’구려’와크게같으나,조금은다르다.’한나라’초에’연’의망명인’위만’이’조
선’에서왕노릇할때’옥저’가속하게되었다.’한무제원봉’이년’조선’을치고,’위만’의손
자’우거’을죽인후그땅을나누어사군을두었는데,’옥저성’은’현토군’이되었다.후에
‘이’와’맥’이침입하여,마을을’구려’서북으로옮겼는데,지금’현토’에있는옛마을이이것
이다.’옥저’는다시’낙랑’에속하게되었다.

<漢>以土地廣遠,在<單單大領>之東,分置東部都尉,治<不耐城>,別主領東七縣,時<沃沮>亦皆爲
縣.<漢>(光)<[建]武>六年,省邊郡,都尉由此罷.其後皆以其縣中渠帥爲縣侯,<不耐>·<華麗>·<
沃沮>諸縣皆爲侯國.夷狄更相攻伐,唯<不耐濊侯>至今猶置功曹·主簿諸曹,皆濊民作之.<沃沮>諸
邑落渠帥,皆自稱三老,則故縣國之制也.國小,迫于大國之間,遂臣屬<句麗>.<句麗>復置其中大人
爲使者,使相主領,又使大加統責其租稅,貊布·魚·鹽·海中食物,千里擔負致之,又送其美女以爲
婢妾,遇之如奴僕.

‘한’의땅이넓고멀어,’단단대령’의동쪽을나누어,’동부도위’를두고,’불내성’에서다스렸
다.주령동쪽을나누어칠현을두었는데,이때’옥저’역시모두현이되었다.’한건무’육년
변방의군을살피고’도위’를없엤다.그후로현에있는거사들을모두현후로삼았는데,’불
내’,’화려’,’옥저’의여러현들은모두후국이되었다.오랑캐들이서로공격하고쳤는데,오
히려,’불내’와’예후’는’공조’와’주박제조’를두었다.이는모두’예’의백성들이만든것이
다.’옥저’의여러읍락의거수들은모두스스로삼로라칭하는데,즉옛날현국의제도인것이
다.나라가작고,큰나라사이에있어궁핍하여신하로써’구려’에속하게되었다.’구려’는다
시대인들을사자로삼았는데,사는주인인것이다.또한대가들이조세를받도록하였는데,맥
포와물고기,소금과바다음식이다.천리를메어짊어지고가서받쳤다.또한미녀들을보내와
첩으로삼았는데이는노비와같은것이다.

其土地肥美,背山向海,宜五穀,善田種.人性質直彊勇,少牛馬,便持矛步戰.食飮居處,衣服禮
節,有似<句麗>.{《魏略》曰:其嫁娶之法,女年十歲,已相設許.壻家迎之,長養以爲婦.至成人,
更還女家.女家責錢,錢畢,乃復還壻.}[一]其葬作大木槨,長十餘丈,開一頭作戶.新死者皆假埋
之,才使覆形,皮肉盡,乃取骨置槨中.擧家皆共一槨,刻木如生形,隨死者爲數.又有瓦,置米其
中,編縣之於槨戶邊.

그땅은기름지고,산을등지고바다를향해있다.오곡에마땅하며,밭농사가좋다.사람들의
성질은곧고,강하며,용감하다.소와말이작고,창병과보병에능숙하다.음식과거처의복과
예절은’구려’와같음이있다.’위략’에서말하길,그시집가고장가드는법에여자는십세가되
면,이미허락을한다.사위되는집에서이를맞이하여,클때까지길러부인으로삼는다.성인이
되면,다시여자집으로돌아오는데,여자집에서돈을요구한다.돈이다떨어지면,이내다시사
위집으로돌아온다.장사지낼때는큰나무로곽을만드는데,길이가십여장이나되고,그윗부분
이출입구를하나낸다.세로죽은자는모두가매장을하는데,겨우형태만덮은후피부와살이
썩으면이내뼈를취하여곽안에둔다.집안모두가하나의곽에공동으로들어가는데,나무를
살아있는형상처럼깍는다.죽은자의수와같다.또한기와모양의솥이있는데,그가운데에쌀
을넣고,곽의출입구한쪽에메어둔다.

<丘儉>討<句麗>,<句麗王><宮>奔<沃沮>,遂進師擊之.<沃沮>邑落皆破之,斬獲首虜三千餘級,<
宮>奔<北沃沮>.<北沃沮>一名<置溝婁>,去<南沃沮>八百餘里,其俗南北皆同,與<相婁>接.<相婁>
喜乘船寇,<北沃沮>畏之,夏月在山巖深穴中爲守備,冬月凍,船道不通,乃下居村落.<王>
別遣追討宮,盡其東界.問其耆老[海東復有人不],耆老言國人嘗乘船捕魚,遭風見吹數十日,東得一
島,上有人,言語不相曉,其俗常以七月取童女沈海.又言有一國亦在海中,純女無男.又說得一布
衣,從海中浮出,其身如中(國)人衣,其兩袖長三丈.又得一破船,隨波出在海岸邊,有一人項中復有
面,生得之,與語不相通,不食而死.其域皆在<沃沮>東大海中.

‘관구검’이’구려’를칠때,’구려왕궁’이’옥저’로달아났는데,진격하여이에이르러부딧쳤
다.’옥저’의읍락이모두깨지고,포로와삼천여급의머리를베었다.’궁’이’북옥저’로달아났
는데,’북옥저’는일명’치구루’이다.’남옥저’에서팔백여리를간다.그풍속은남북이모두같
다.’읍루’에접해있다.’읍루’는배들타고노략질함을즐기는데’북옥저’는이를두려워하
여여름에는산속바위깊은동굴속에서있으면서수비하고겨울에춥게되어뱃길이통하지않
으면이에내려와촌락에거한다.’왕기’에게부대를나누어궁을토벌하려고파견하였는데,그
나라동쪽의경계에이르러늙은노인에게물었다.’바다동쪽에도사람이있는가?’늙은노인이
말하길나라사람이일찍이배를타고고기를잡는데,풍랑을만나수십일에이르러동쪽에서하
나의섬을얻었다.올라가보니사람이있는데,언어가서로통하지않았다.그풍속에항시칠
월에어린여자를바다에받치는것이있다.또말하길한나라가있는데,역시바다가운데에있
다.모두여자이고남자가없다.또말하길바다에서떠다니는옷하나를얻었는데,모양은중
국인의옷과같고,그양소매의길이는삼장이나된다.또부서진배를하나얻었는데,파도가
밀려와해안에닿았다.한사람이있었는데,목에얼굴이또있었다.살아있었는데,말이통하
지안고,음식을먹지않아죽었다.이지역은모두’옥저’동쪽의큰바다가운데에있는것이
다.

相婁

<相婁>在<夫餘>東千餘里,濱大海,南與<北沃沮>接,未知其北所極.其土地多山險.其人形似<夫餘
>,言語不與<夫餘>·<句麗>同.有五穀·牛·馬·麻布.人多勇力,無大君長,邑落各有大人.處山
林之間,常穴居,大家深九梯,以多爲好.土氣寒,劇於<夫餘>.其俗好養,食其肉,衣其皮.冬以
膏塗身,厚數分,以禦風寒.夏則裸袒,以尺布隱其前後,以蔽形體.

‘읍루’는’부여’동쪽천여리에있으며큰바다에닿는다.남쪽은’북옥저’에닿고,그북쪽의
끝은알지못한다.그땅은산이험하고많으며,그사람들의형태는’부여’와유사하다.언어는
‘부여’와는다르고’구려’와같다.오곡이있으며,소말마포가있다.사람들은용력이많고,
대군장은없다.읍락각각에대인이있다.산림사이에거처하면서항상동굴에서산다.큰집은
사다리아홉개정도의깊이고깊을수록좋은것이다.땅기운이차가운데,’부여’보다심하다.
그풍속에돼지기르기를좋아하여그고기를먹고,가죽으로옷을해입고,겨울에돼지비계를
몸에여러번두껍게칠하여추운바람을막는다.여름에는곧벌거벋고,한척되는천으로앞뒤
를가리는것으로형체를가린다.

其人不,作在中央,人圍其表居.其弓長四尺,力如弩,矢用,長尺八寸,靑石爲鏃,古之<肅
愼氏>之國也.善射,射人皆入(因)[目].矢施毒,人中皆死.出赤玉·好貂,今所謂<相婁>貂是也.
自<漢>已來,臣屬<夫餘>,<夫餘>責其租賦重,以<黃初>中叛之.<夫餘>數伐之,其人衆雖少,所在山
險,國人畏其弓矢,卒不能服也.其國便乘船寇盜,國患之.東夷飮食類皆用俎豆,唯<相婁>不,
法俗最無綱紀也.

사람들이깨끗하질못하여중앙에화장실을만들고사람들은그둘레에서거한다.활의길이는
사척이고힘이쇠뇌만큼든다.화살은싸리나무를사용하고,길이가한척팔촌이다.푸른돌로화
살촉을만들니,옛날부터’숙신씨’의나라라한다.궁술에능하여사람을쏘면모두눈을맞치
고,화살에독을발라사람에맞으면모두죽는다.적옥과좋은담비가죽이나오니,이제읍루초
가바로이것이다.스스로’한’의말기에’부여’의신하였다가,’부여’가조세와조역을중하게
하니,’황초’중에모반하엿다.’부여’가수차례정벌하였으나,사람들의무리가비록적으나,
산이험하고,이웃나라사람들이그활과화살을두려워하여병사로써능히복속시키지못하였
다.그나라는배를타고노략질을잘하는데,이웃나라들의근심거리였다.동이들은음식류에
모두조두를사용하는데오직’읍루’는아니었다.법과풍속이가장기강이없다.

<濊>南與<辰韓>,北與<高句麗>·<沃沮>接,東窮大海,今<朝鮮>之東皆其地也.戶二萬.昔<箕子>旣
適<朝鮮>,作八條之敎以敎之,無門戶之閉而民不爲盜.其後四十餘世,<朝鮮侯>(淮)<[準]>僭號稱
王.<陳勝>等起,天下叛<秦>,<燕>·<齊>·<趙>民避地<朝鮮>數萬口.<燕>人<衛滿>,結夷服,復
來王之.<漢><武帝>伐滅<朝鮮>,分其地爲四郡.自是之後,<胡>·<漢>稍別.無大君長,自漢已來,
其官有侯邑君·三老,統主下戶.其耆老舊自謂與<句麗>同種.其人性愿慤,少嗜欲,有廉恥,不請
(句麗)[].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衣服有異.男女衣皆著曲領,男子繫銀花廣數寸以爲飾.自<
單單大山領>以西屬<樂浪>,自領以東七縣,都尉主之,皆以濊爲民.後省都尉,封其渠帥爲侯,今<不
耐濊>皆其種也.

‘예’의남쪽은’진한’이고,북쪽은’고구려’와’옥저’이다.동쪽으로큰바다가있고,’조선’의
동쪽은모두그땅이다.호수는이만이다.옛날’기자’가’조선’에이르러팔조의가르침으로가
르치자문을닫지않고백성들은도둑질하지않았다.그사십여세후에’조선후준’이참람되게
왕이라칭하였다.’진승’등이일어나니,천하가’진’을배신하였다.’연’,’제’,’조’나라사람들
이난을피하여조선땅으로들어오니,수만이나되었다.’연’인’위만’이있어상투틀고이족옷
을입어돌아와왕노릇하였다.’한무제’가조선을벌하여멸하니,나누어그땅에사군을두었
다.이로부터,’호’와’한’이점점나뉘게되었다.대군장이없고,스스로한때부터의관직에,
‘후’,’읍군’,’삼노’가있어하호의주인으로다스렸다.그늙은노인들은옛날부터스스로’구
려’와같은종류라고한다.사람들의성질은삼갈줄알고,성실하다.즐기고,탐욕함이적고,
겸손하고,부끄러워할줄알아,’구려’에구걸함을청하지않았다.언어와법과풍속은크게
‘구려’와같고의복만은다름이있다.남녀의옷은모두분명하게옷깃이굽었고,남자들은넓이
가수촌이나되는은으로만든허리띠를매는것으로장식을한다.스스로’단단대산령’서쪽은
‘낙랑’에속하였다.령의동쪽에칠현을두었는데도위가주인이었다.모두예의백성이다.후에
도위를없에고,그거수들을후에봉하니,이제’불내,예’는모두그종류인것이다.

<漢>末更屬<句麗>.其俗重山川,山川各有部分,不得妄相涉入.同姓不婚.多忌諱,疾病死亡輒捐棄
舊宅,更作新居.有麻布,蠶桑作.曉候星宿,豫知年歲豊約.不以珠玉爲寶.常用十月節祭天,晝
夜飮酒歌舞,名之爲舞天,又祭虎以爲神.其邑落相侵犯,輒相罰責生口牛馬,名之爲責禍.殺人者償
死.少寇盜.作矛長三丈,或數人共持之,能步戰.樂浪檀弓出其地.其海出班魚皮,土地饒文豹,又
出果下馬,<漢><桓>時獻之.{臣<松之>按:果下馬高三尺,乘之可于果樹下行,故謂之果下.見《博物
志》·《魏都賦》.}

‘한’의말에는다시’구려’에속하게되었다.그풍속에산과천을중하게여기어산천으로각각
부를나누어서,서로들어와허망함을바라지못하게하였다.같은성씨끼리는혼인하지못하니,
꺼리는것들이많았다.질병으로사람이죽으면,빨리버리고,옛집도버린다.새로집을짓는
다.마포가있으며,양잠을하고,면을짓는다.별자리를보아서그래의풍년들것임을미리알
고,구슬과옥을보배로여기지않았다.항상시월에하늘에제사를지내는데,밤낮없이술마시
고노래하고츰을추니,이름하여,’무천’이라하였다.또한호랑이를신으로모셔제사지낸다.
읍락끼리서로침범을하면,서로꾸짓어소나말로갚는데,이를명하여,’책화’라한다.사람
을죽이면,죽음으로보상하고,도둑이적다.창은길이가삼장이나되고,혹여러사람이함께
창을들기도한다.보병전에능하다.’낙랑’과’단궁’이이땅에서나오고,바다에서는반어피가
나오며,얼룩표범이있고또한과하마가나온다.’한환제’때에이것들을받쳤다.신하’송지’가
말하길과하마는높이가삼척이고타면가히과실수를아래로해서간다.고로과하라고하는것
이다.’박물지’,’위도부’에서보았다.

<正始>六年,<樂浪>太守<劉茂>·<帶方>太守<弓遵>以<領東濊>屬<句麗>,興師伐之,<不耐侯>等擧邑
降.其八年,詣闕朝貢,詔更拜<不耐濊王>.居處雜在民間,四時詣郡朝謁.二郡有軍征賦調,供給役
使,遇之如民.

‘정시’육년’낙랑태수유무”대방태수궁준’이’동예’가’구려’에속하게되자,군사를일으켜
이를쳤다.’불내후’들이읍을들고항복하였다.팔년대궐에이르러조공을받치니,다시’불
내’를’예왕’이라벼슬을내린다고고하였다.그는민간들틈에섞여살면서사시로군에나와
조알했다.두군은군사의일이나세금을바치는일,부역시키는일등을모두일반백성과똑
같이대우했다.

韓(馬韓)

<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爲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
曰<弁韓>.<辰韓>者,古之<辰國>也.<馬韓>在西.其民土著,種植,知蠶桑,作綿布.各有長帥,大
者自名爲臣智,其次爲邑借,散在山海間,無城郭.

‘한’은’대방’의남쪽에있다.동쪽과서쪽으로바다를한계로한다.남쪽은’왜’와접해있으
며,사방사천리이다.세가지종류가있으니,하나는’마한’이고,둘은’진한’이고,셋은’번한’
이다.’진한’은옛날’진국’이다.’마한’은서쪽에있는데,백성들은토착을하며씨를뿌리며
양잠을알고,갈포를짓는다.각각장사가있는데큰자는스스로를’신지’라하고,그다음은
‘읍차’라한다.산과바다사이에흩어져있는데,성곽은없다.

有<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國>·<臣沽國>·<伯濟國>
·<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
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
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
國>·<酸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
國>·<臣蘇塗國>·<莫盧國>·<古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
·<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凡五十餘國.大
國萬餘家,小國數千家,總十餘萬戶.<辰王>治<月支國>.臣智或加優呼臣雲遣支報安邪支臣離
兒不例拘邪秦支廉之號.其官有魏率善·邑君·歸義侯·中郞將·都尉·伯長.

<원양국>·<모수국>·<상외국>·<소석색국>·<대석색국>·<우휴모탁국>·<신분고국>·<백제국>·
<속로불사국>·<일화국>·<고탄자국>·<고리국>·<노람국>·<월지국>·<자리모로국>·<소위건국>
·<고원국>·<막로국>·<비리국>·<점리비국>·<신흔국>·<지침국>·<구로국>·<비미국>·<감해
비리국>·<고포국>·<치리국국>·<염로국>·<아림국>·<사로국>·<내비리국>·<감해국>·<만로국
>·<벽비리국>·<구사오단국>·<일리국>·<불미국>·<지반국>·<구소국>·<첩로국>·<모로비리국
>·<신소도국>·<막로국>·<고랍국>·<임소반국>·<신운신국>·<여래비리국>·<초산도비리국>·<
일난국>·<구해국>·<불운국>·<불사분사국>·<원지국>·<건마국>·<초리국>,등무릇오십여나
라가있다.큰나라는만여가정도이고,작은나라는수천가정도이다.총10여만호정도이다.
‘진왕’은’월지국’을다스린다.’신지’혹은’가우’를,’신운견지’라부르는데,안정됨을지키
고,정도에벗어남을멀리하고,신하를받들어주는것과,아이에게베푸는것이사됨이없어비
교할수없다.’진지’는겸손한호칭이다.그관직은위나라를따라서,’읍군’,’귀의후’,’중랑
장’,’도위’,’백장’이다.

<侯準>旣僭號稱王,爲<燕>亡人<衛滿>所攻奪,{《魏略》曰:昔<箕子>之後<朝鮮侯>,見<周>衰,<燕>
自尊爲王,欲東略地,<朝鮮侯>亦自稱爲王,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其大夫<禮>諫之,乃止.使
<禮>西說<燕>,<燕>止之,不攻.後子孫稍驕虐,<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
番汗>爲界,<朝鮮>遂弱.及<秦>幷天下,使<蒙恬>築<長城>,到<遼東>.時<朝鮮王><否>立,畏<秦>
襲之,略服屬<秦>,不肯朝會.<否>死,其子<準>立.二十餘年而<陳>·<項>起,天下亂,<燕>·<齊
>·<趙>民愁苦,稍稍亡往<準>,<準>乃置之於西方.及<漢>以<盧>爲<燕王>,<朝鮮>與<燕>界於<浿
水>.及<>反,入<匈奴>,<燕>人<衛滿>亡命,爲<胡>服,東度<浿水>,詣<準>降,說<準>求居西界,
(故)[收]中國亡命爲<朝鮮>藩屛.<準>信寵之,拜爲博士,賜以圭,封之百里,令守西邊.<滿>誘亡
黨,衆稍多,乃詐遣人告<準>,言<漢>兵十道至,求入宿衛,遂還攻<準>.<準>與<滿>戰,不敵也.}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魏略》曰:其子及親留在國者,因冒姓<韓氏>.<準>
王海中,不與<朝鮮>相往來.}其後絶滅,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후준’이참람되게왕이라칭하고,’연’나라망명인’위만’이공격하여빼앗았다.[‘위략’에서
말하길,옛날’기자’의후손인’조선후’가’주나라’가약해짐을보고,’연’이스스로를왕으로
높이고,동쪽의땅을다스리려고하자,’조선후’도역시스스로왕이라칭하고,병사와함께
‘연’을공격하여’주’의왕실을높이고자하였다.대부’예’가이를간하여,멈추게되고,’예’
를서쪽으로보내어’연’에게말하니’연’도이를그치고,공격하지않았다.후에자손들이점점
교만해지자,’연’이장수’진개’를파견하여그땅의서방을공격하여,땅이천여리를취하였다.
‘만번한’에이르러경계를삼자,’조선’이약해지게되었다.’진’이천하를아우르자’몽염’을시
켜’장성’을쌓아,’요동’에이르게하였다.이때에’조선왕비’가섰다.’진’이엄습할까를두
려워하여복속하여’진’에속하였지만,알현하지는않았다.’비’가죽고그아들’준’이섰다.
이십여년후에’진’,’항’이일어나천하가어지럽자,’연’,’제’,’조’나라백성들이시름하였
다.점점’준’에게가서망명을하니,’준’이이들을서쪽에두었다.’한’이’노관’을’연왕’으
로삼자,’조선’이’연’과의경계를’패수’로삼았다.’관’이모반하여,’흉노’로들어가고,
‘연’나라사람’위만’이망명하여,’호’의옷을입고,동쪽으로’패수’를건너,이에이르러,
‘준’에게항복하였다.’준’에게서쪽경계에살기를구하고,중국망명인으로’조선’을지키는병
풍이되고자하니,’준’이믿고은혜를베풀어,’박사’의벼슬을주고,규를하사하고,백리의
땅을봉하여서쪽변방을지키는우두머리로하였다.’만’이망한무리들을꾀여,무리가점점
많아지니,이에’준’에게사람을파견하여거짓으로고하길,’한’의병사가열길로쳐들어온다.
방비하기위해들어가니,돌아서서’준’을공격하였다.’준’이’만’과전쟁을하는데,대적하질
못하였다.]그좌우궁인들과도망하여바다로들어가,’한’의땅에거하였다.스스로’한왕’이라
하였다.[위략에말하길그아들이나라에있어,성을’한씨’라하였다.’준’이바다가운데있은
후로’조선’과서로왕래하지않았다.]그후로끊어져멸망하니,지금’한’인이오히려그를제
사지내는자가있다.

<漢>時屬<樂浪郡>,四時朝謁.{《魏略》曰:初,<右渠>未破時,<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至<王莽><地皇>時,<廉斯>爲<辰
韓>右渠帥,聞<樂浪>土地美,人民饒樂,亡欲來降.出其邑落,見田中驅雀男子一人,其語非<韓>人.
問之,男子曰:[我等<漢>人,名<戶來>,我等輩千五百人伐材木,爲<韓>所擊得,皆斷髮爲奴,積三年
矣.]<>曰:[我當降<漢><樂浪>,汝欲去不?]<戶來>曰:[可.](辰)<>因將<戶來>(來)出詣<含資縣
>,縣言郡,郡卽以<>爲譯,從<芩中>乘大船入<辰韓>,逆取<戶來>.降伴輩尙得千人,其五百人已
死.<>時曉謂<辰韓>:[汝還五百人.若不者,<樂浪>當遣萬兵乘船來擊汝.]<辰韓>曰:[五百人已
死,我當出贖直耳.]乃出<辰韓>萬五千人,<弁韓>布萬五千匹,<>收取直還.郡表<>功義,賜冠
·田宅,子孫數世,至<安帝><延光>四年時,故受復除.}

‘한’나라때에’낙랑군’에속하게되고,사시조알하였다.[위략에,처음’우거’가깨어지지않
았을때’조선’의재상’역계경’이간하였지만,’우거’가쓰지않았다.동쪽의’진국’은이때에
백성들이따라나온자가이천여호나되었고,역시’조선’과서로왕래하지않았다.’왕망지황’때
에이르러,’염사착’이’진한’의우수거가되었다.’낙랑’이땅이좋고,백성들이부유하다는말
을듣고,도망쳐와서항복하였다.그읍락에서나와,밭가운데에서참새를쫓고있는한남자
를보았는데,말이’한’인이아니었다.이에물으니,남자가말하길,’우리는’漢’인이다.이름
은’호래’이다.우리의무리는천오백명으로나무를베려다,’韓’인에게붙잡여서모두머리를
깍이고,종이되었다.삼년이나되었다.”염사착’이말하길’나는’한의낙랑’에항복할것이
다.당신도같이가겠는가?’하니’호래’가말하길’좋다’했다.’염사착’이’호래’와’함자현’에
이르러,현에서군을말하니,군에서’착’을통역으로삼고,’금중’으로나아가큰배를타고
‘진한’에들어갔다.역시’호래’와함께이다.항복받은무리천명을얻었으나,그오백명은이미
죽었다.’착’이이때’진한’에게이르기를’너희들은오백명을돌려보내라.만일그렇지않으
면,’낙랑’이마땅히병사만으로배를타고와서너희를공격할것이다.’하니’진한’이말하길
‘오백인은이미죽었다.나는마땅히재물로써값겠다.’하고,’진한’에서만오천명과’변한’에서
포만오천필이나오니,’착’이거두어곧바로돌아갔다.군에서’착’에게공로를표시하고,관책
과밭과집을하사하였다.자손이수대에내려오다가,’안제연광’사년때에옛날복재를받았
다.

<桓>·<靈>之末,<韓濊>彊盛,郡縣不能制,民多流入<韓國>.<建安>中,<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
地爲<帶方郡>,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興兵伐<韓濊>,舊民稍出,是後<倭><韓>遂屬<帶方
>.<景初>中,<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諸<韓國>臣智加賜邑
君印綬,其次與邑長.其俗好衣,下戶詣郡朝謁,皆假衣,自服印綬衣千有餘人.部從事<吳林>
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
營>.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환제’,와’영제’말에’한예’가강성해지자,군현들이능히제도하질못하고,백성들이많이
‘한국’으로들어갔다.’건안’중에’공손강’이’둔유현’의남쪽거친땅을나누어’대방군’으로삼
고,’공손모’,’장창’등을보내어유민을모아,병사를일으켜’한예’를쳤다.옛백성들이점점
나오니,이후로’왜’와’한’이’대방’에속하게되었다.’경초’중에’명제’가비밀히’대방태수
유흔’과’낙랑태수선우사’를파견하여,두군의바다를건너서,여러’한국’의신지에게읍군의
인수를하사하고,다음으로읍장에게하사하였다.그풍속에옷과두건을좋아하는데,하호들이
군에조알할때에모두옷과두건을한다.이제하사한옷과두건을한자가천여명이나된다.’부
종사오림’이’낙랑’이’한국’을통일했다고해서’진한’의팔개국을나무어’낙랑’에게주었다.
통역하는데다르고옳음이있어전해지자,신지’첨한’이노하여’대방군기리영’을공격하였다.
이때태수’궁준’과’낙랑태수유무’가함께병사로쳤는데,’준’은전사하고,이군은’한’에
멸망하게되었다.

其俗少綱紀,國邑雖有主帥,邑落雜居,不能善相制御.無拜之禮.居處作草屋土室,形如,其戶
在上,擧家共在中,無長幼男女之別.其葬有槨無棺.不知乘牛馬,牛馬盡於送死.以瓔珠爲財寶,或
以綴衣爲飾,或以縣頸垂耳,不以金銀錦繡爲珍.其人性彊勇,魁頭露,如炅兵,衣布袍,足履革
.其國中有所爲及官家使築城郭,諸年少勇健者,皆鑿脊皮,以大繩貫之,又以丈許木之,通日
呼作力,不以爲痛,旣以勸作,且以爲健.

그풍속은기강이적어,나라의읍에비록주인이있지만,읍락에섞여살고,능히제도하거나
다스림에능하지못하다.꿇어앉아엎드려절하는예의도없다.거처는흙으로만든집에풀로
지붕을올리는데,형태가무덤과같다.그문은위로내고,가족이함께그가운데있다.어른과
아이와남녀의구별이없다.그장사는곽은있으나관이없다.소와말타는것을알지못하여,
소나말은사람이죽었을때보내져쓰인다.구슬목걸이를보내로삼는데,혹은옷에꾀메어씀
으로꾸민고,혹은목에매달기도하고,귀에달기도한다.금은비단은보배로여기지않는다.
그사람들의성질은강하고용감하고,상투를트는데,모양이경병과같다.포로옷을해입고,
신발은가죽신을신는다.그나라에일이있으면,관가에서성곽을쌓토록시키고,용감하고건
강한여러소년들이등가죽을뚫어,큰밧줄에이를묶은후,큰나무에붙들어맨후종일지껄이
며,고함을치며,힘을쓰는데,아파하지않는다.그러는동안에힘쓰는것과건강함을권하는
것이다.

常以五月下種訖,祭鬼神,聚歌舞,飮酒晝夜無休.其舞,數十人俱起相隨,踏地低,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十月農功畢,亦復如之.信鬼神,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名之天君.又諸國各有別
邑,名之爲蘇塗.立大木,縣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不還之,好作賊.其立蘇塗之義,有似
浮屠,而所行善惡有異.其北方近郡諸國差曉禮俗,其遠處直如囚徒奴婢相聚.無他珍寶.禽獸草木略
與中國同.出大栗,大如梨.又出細尾?,其尾皆長五尺餘.其男子時時有文身.又有<州胡>在<馬韓>
之西海中大島上,其人差短小,言語不與<韓>同,皆頭如<鮮卑>,但衣韋,好養牛及.其衣有上無
下,略如裸勢.乘船往來,市買<韓>中.

항상오월씨뿌릴때가되면,귀신에게제사지내고,무리지어노래하고춤을춘다.밤낮없이쉴줄
모르고술을마신다.그춤은수십사람이함께일어나따라가면서땅을밟는데,손과발이서로
응한다.마디마다아뢰는사람이있어,탁무와비슷함이있다.시월농사가끝나면다시이와같
이하는데귀신을믿는것이다.나라에서각각천신에제사지내는주인이하나있는데,이름하여
‘천군’이라고한다.또한여러나라각가가에는특별한읍이하나있는데,이를’소도’라고한
다.큰나무를세우고,방울과북을메달고,귀신을부린다.여럿이서그가운데로도망하면이
에돌아오지못한다.도둑이일어나기에좋다.’소도’의뜻은’부거’와비슷한테선악을행하는
것에는다름이있다.그북방군과가까운나라들은예의풍속이조금있고,먼곳은죄인과같
이노비들과서로섞여산다.다른보배는없고,짐승들과초목들도중국과같다.큰밤이나오
는데크기가배만하고,또꼬리가가는닭이있는데,그꼬리가오척이나된다.남자들은때때
로문신을한다.또한’주호’가있는데,’마한’서쪽바다가운데의큰섬이다.사람들이작고,
언어는’한’과같지않으며,곤두함이’선비’와같다.가죽옷을입고,소나돼지기르기를좋아
하고,옷에는위는있지만아래는없어벌거벗은것과같다.배를타고왕래하며,’한’과교역
을한다.

韓(辰韓)

<辰韓>在<馬韓>之東,其耆老傳世,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地與之.有城
柵.其言語不與<馬韓>同,名國爲邦,弓爲弧,賊爲寇,行酒爲行觴.相呼皆爲徒,有似秦人,非但<
燕>·<齊>之名物也.名<樂浪>人爲阿殘;東方人名我爲阿,謂<樂浪>人本其殘餘人.今有名之爲<秦韓
>者.始有六國,稍分爲十二國.

‘진한’은’마한’의동쪽에있다.늙은노인이세를전하여말하길옛날’秦’의사역을피하여온
망명인이’한국’에왔다.’마한’이그동쪽땅을나누어주었다.성책이있고,언어는’마한’과
같지않았다.’국’을’방’이라하고’궁’을’호’라하고,’적’을’구’라하고,’행주’를’행상’
이라하였다.서로불러무리로하니’秦’나라사람과같음이있으니,단지’연’과’제’의사물
의명칭뿐이아니다.’낙랑’사람을’아잔’이라하고동쪽사람을’아’라고하는데,’낙랑’사람은
본래그남은세력이다.이제그이름을’진한’이라고하니처음에는육국이었는데,점점나누어
져열두나라가되었다.

韓(弁辰)

<弁辰>亦十二國,又有諸小別邑,各有渠帥,大者名臣智,其次有險側,次有樊濊,次有殺奚,次有邑
借.有<已國>·<不斯國>·<弁辰彌離彌凍國>·<弁辰接塗國>·<勤耆國>·<難彌離彌凍國>·<弁辰
古資彌凍國>·<弁辰古淳是國>·<奚國>·<弁辰半路國>·<弁[辰]樂奴國>·<軍彌國(弁軍彌國)>·<
弁辰彌烏邪馬國>·<如湛國>·<弁辰甘路國>·<戶路國>·<州鮮國(馬延國)>·<弁辰狗邪國>·<弁辰走
漕馬國>·<弁辰安邪國(馬延國)>·<弁辰瀆盧國>·<斯盧國>·<優由國>.<弁>·<辰韓>合二十四國,大
國四五千家,小國六七百家,總四五萬戶.

‘변진’역시열두나라이다.역시여러개의작은별읍이있다.각각거사가있으니큰자의이름
은’신지’이고다음은’험측’이라하고,다음은’번예’라하고다음은’살해’,다음은’읍차’라
한다.<이저국>·<불사국>·<변진미리미동국>·<변진접도국>·<근기국>·<난미리미동국>·<변진
고자미동국>·<변진고순시국>·<염해국>·<변진반로국>·<변진악노국>·<군미국(변군미국)>·<변
진미오사마국>·<여담국>·<변진감로국>·<호로국>·<주선국(마연국)>·<변진구사국>·<변진주조
마국>·<변진안사국(마연국)>·<변진독로국>·<사로국>·<우유국>이니’번’,’진한’을합쳐이십
사개국이다.큰나라는사오천가를이루고작은나라는육칠백가를이룬다.총사오만호이다.

其十二國屬<辰王>.<辰王>常用<馬韓>人作之,世世相繼.<辰王>不得自立爲王.{《魏略》曰:明其爲
流移之人,故爲<馬韓>所制.}土地肥美,宜種五穀及稻,曉蠶桑,作布,乘駕牛馬.嫁娶禮俗,男
女有別.以大鳥羽送死,其意欲使死者飛揚.{《魏略》曰:其國作屋,橫累木爲之,有似牢獄也.}國出
鐵,<韓>·<濊>·<倭>皆從取之.諸市買皆用鐵,如中國用錢,又以供給二郡.俗喜歌舞飮酒.有瑟,
其形似筑,彈之亦有音曲.兒生,便以石厭其頭,欲其.今<辰韓>人皆頭.男女近倭,亦文身.便
步戰,兵仗與<馬韓>同.其俗,行者相逢,皆住讓路.

그열두나라는’진왕’에속하는데’진왕’은항상’마한’사람이하여,대대로잇는다.’진왕’은
스스로왕위에오르지못한다.[위략에말하길밝음이이주민에게있어고로마한의제도가되었
다.]땅은좋고,오곡과벼에알맞으며,양잠과겸포를하고,소나말을탄다.결혼하는데예절
이있으며남녀는구별이있다.큰새의깃털로장사지내는데,그뜻은죽은자가날아오르게하
고자하는것이다.[위략에그나라는집을지을때나무를가로로얽어매는데감옥과비슷하
다.]나라에철이나오고,’한’,’예’,’왜’,가모두이를가져다썼다.저자에서돈을사용함이
중국의돈사용과같아,두군에서도넉넉히사용하였다.풍속에노래하고,춤추고,음주함을즐긴
다.거문고가있는데,모양이’축’과비슷하고,연주하면,역시소리와곡률이있다.아이나태
어나면돌로그머리를눌르는데,머리를모나게하려고하는것이다.지금’진한’사람이모두
‘편두’이다.’왜국’과가까워남녀가모두문신을한다.보병전을하고병사의무기는’마한’과
같다.풍속에길가던사람이서로만나면,모두길을비켜준다.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祠祭鬼神有異,施皆在戶
西.其<瀆盧國>與<倭>接界.十二國亦有王,其人形皆大.衣服淸,長髮.亦作廣幅細布.法俗特嚴
峻.

‘변진’은’진한’과섞여산다.역시성곽이있으며,의복과거처는’진한’과같다.언어와법과
풍속은서로유사함이있으나,귀신에제사함은다른데,부엌신을문에서서쪽에두는것이다.
‘독노국’은’왜’와접해있다.열두나라역시왕이있는데사람들이모두크다.의복은정결하고,
머리를길른다.역시폭이넓은가드다란포를짓고,법과풍속은특히엄하다.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依山島爲國邑.舊百餘國,<漢>時有朝見者,今使譯所通三十國.從郡
至<倭>,循海岸水行,歷<韓國>,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始度一海,千餘里至<
對馬國>.其大官曰卑狗,副曰卑奴母離.所居絶島,方可四百餘里,土地山險,多深林,道路如禽鹿
徑.有千餘戶,無良田,食海物自活,乘船南北市.又南渡一海千餘里,名曰<瀚海>,至一大國,官
亦曰卑狗,副曰卑奴母離.方可三百里,多竹木叢林,有三千許家,差有田地,耕田猶不足食,亦南北
市.

‘왜’인은대방의동남쪽큰바다가운데에있고,산과섬을의지하여나라의읍이있다.예로부
터백여개의나라가있어,’한’나라때에는알현하는자가있었다.이제그역관이통하는곳이
삼십나라이다.군에서나아가’왜’에이르는데,물로가서해안을따라돌면’한국’이나오고,
남쪽으로가다동쪽으로가면’구사한국’의북쪽에이르러거리가,칠천여리나된다.처음하나
의바다를건여천여리에’대마도’에이른다.그큰관리를’비구’라하고,부관을’비노모리’라
한다.떨어진섬에거주하는데,거리가사백여리이다.땅은산이험하고깊은숲이많고,도로는
짐승이다니는길과같다.호수는천여호이고좋은밭은없어,바다에서나오는것을먹어스스
로생활하며배를타고남북으로다니며쌀을사들인다.또남으로바다건너천여리에일명’한
해’를건너면큰나라가하나있는데,역시관리를’비구’라하고부관을’비노모리’라한다.사
방삼백리이며,대나무와나무가모여많은산림을이루니,삼천가정도가있으며차이는밭이있
어밭을경작하는데부족함이있어역시남북으로쌀을사들인다.

又渡一海,千餘里至<末盧國>,有四千餘戶,濱山海居,草木茂盛,行不見前人.好捕魚鰒,水無深
淺,皆沈沒取之.東南陸行五百里,到<伊都國>,官曰爾支,副曰泄謨·柄渠.有千餘戶,世有
王,皆統屬<女王國>,郡使往來常所駐.東南至<奴國>百里,官曰馬,副曰卑奴母離,有二萬餘
戶.東行至<不彌國>百里,官曰多模,副曰卑奴母離,有千餘家.南至<投馬國>,水行二十日,官曰彌
彌,副曰彌彌那利,可五萬餘戶.南至<邪馬壹國>,女王之所都,水行十日,陸行一月.官有伊支馬,
次曰彌馬升,次曰彌馬獲支,次曰奴佳,可七萬餘戶.自<女王國>以北,其戶數道里可得略載,其餘
旁國遠絶,不可得詳.

또바다를건너,천여리에’말노국’에이르는데사천여호가있으며,산기슭의바다에거처한다.
초목이너무우거져,길을갈때앞사람을볼수가없을정도이다.물고기와전복을잡기를좋아
하는데물이깊이않고얕아자맥질하여이를잡는다.동남쪽육지를따라오백리에’이도국’이
있는데,관리를’이지’라부르고,부관을’설모고’,’병모고’라부른다.천여호가있으며,세세
토록왕이있는데모두’여왕국’에속해있어,고을에사신이왕래하고,항상머물러있다.동남
으로백리에’노국’이있는데관리를’시마고’부관을’비노모리’리부르는데,호수가이만여호
이다.동쪽으로백리에는’불미국’이있어,관리를’다모’라하고부관을’비노모리’라부르며,
호수는천여가이다.남쪽으로’투마국’이있어물로이십일을간다.관리를’미미’라하고,부관
을’미미나리’라부르는데,가히오만여호이다.남쪽으로’사마대국’이잇어여왕이거하는도읍
으로물로십일을가고육지로는한달이걸린다.관리를’이지마’라하고다음을’미마승’,다음
을’미마획지’,다음을’노가제’라하니가히칠만여호이다.이’여왕국’의북쪽에있는나라의
호수와길를가히얻어기록한것인데그나머지주변의나라는너무멀어끊어져가히자세히
얻을수가없었다.

次有<斯馬國>,次有<已百支國>,次有<伊邪國>,次有<都支國>,次有<彌奴國>,次有<好古都國>,次
有<不呼國>,次有<姐奴國>,次有<對蘇國>,次有<蘇奴國>,次有<呼邑國>,次有<華奴蘇奴國>,次有
<鬼國>,次有<爲吾國>,次有<鬼奴國>,次有<邪馬國>,次有<躬臣國>,次有<邑利國>,次有<支惟國
>,次有<烏奴國>,次有<奴國>,此女王境界所盡.其南有<狗奴國>,男子爲王,其官有狗古智卑狗,
不屬女王.自郡至<女王國>萬二千餘里.

다음에<사마국>,<이백지국>,<이사국>,<도지국>,<미노국>,<호고도국>,<불호국>,<저노국>,
<대소국>,<소노국>,<호읍국>,<화노소노국>,<귀국>,<위오국>,<귀노국>,<사마국>,<궁신국
>,<읍리국>,<지유국>,<오노국>,<노국>,이있는데,이여왕을경계의끝이다.남쪽에’구노
국’이있는데,남자가왕을하고,관리를’구고지비구’라하는데,여왕에속해있지않다.이군
은’여왕국’에서만이천여리나된다.

男子無大小皆面文身.自古以來,其使詣中國,皆自稱大夫.<夏后><少康>之子封於<會稽>,斷髮文
身以避蛟龍之害.今<倭>水人好沈沒捕魚蛤,文身亦以厭大魚水禽,後稍以爲飾.諸國文身各異,或左
或右,或大或小,尊卑有差.計其道里,當在<會稽>·<東冶>之東.其風俗不淫,男子皆露,以木
招頭.其衣橫幅,但結束相連,略無縫.婦人被髮屈,作衣如單被,穿其中央,貫頭衣之.種禾稻·
紵麻,蠶桑·緝績,出細紵·.其地無牛馬虎豹羊鵲.兵用矛·楯·木弓.木弓短下長上,竹箭或
鐵鏃或骨鏃,所有無與<耳>·<朱崖>同.

남자들은애어른없이모두얼굴에문신을하는데,예로내려온것이다.사신이중국에이르러
스스로를대부라칭하였다.’하후소강’의아들을’회계’에봉하였는데,머리를깍고문신을함
으로써교룡의해를피하였다.이제’왜’의사람들이자맥질하여물고기와조개잡기를좋아하니
문신으로큰물고기와바닷짐승이싫어하게하여후에점점꾸미게된것이다.여러나라의문신
은각각다르다.혹은왼쪽에있고,혹은오른쪽에,크고자고,신분의높고낮음의차이가있
다.그길을계산하는데마땅히’회계’와’동치’의동쪽에있다.그풍속은음란하지않고,남자
들은모두상투를틀고무명으로머리를감싼다.그옷은다만가로로하여서로연결하여동여
메는데바느질하지않는다.부인들도머리를올려묶고,통채로옷을지어중앙에구멍을뚫고
머리부터옷을입는다.벼가있고,모시삼양잠이있어길쌈하고,가는모시와비단이있고,그
땅에소와말,호랑이,돼지,양,까치가없다.병기로창과방패,나무활을쓰고,목궁은아래
는짧고위가길다.대나무로화살에쇠나혹은뼈로화살촉을하기도하는데,’담이’와’주애
‘와같이있고없음에있는것이다.

<倭>地溫暖,冬夏食生菜,皆徒跣.有屋室,父母兄弟臥息異處,以朱丹塗其身體,如中國用粉也.食
飮用豆,手食.其死,有棺無槨,封土作.始死停喪十餘日,當時不食肉,喪主哭泣,他人就歌舞
飮酒.已葬,擧家詣水中浴,以如練沐.其行來渡海詣中國,使一人,不梳頭,不去蝨,衣服垢
汚,不食肉,不近婦人,如喪人,名之爲持衰.若行者吉善,共顧其生口財物;若有疾病,遭暴害,便
欲殺之,謂其持衰不謹.出眞珠·靑玉.

‘왜’의땅은따뜻하여겨울에도여름음식과반찬이나오며,모두맨발이다.집이있어부모형제
가함께거하지만거처는다르다.붉은색진흙같은것을몸에바르는데,중국의분가루를사용하
는것과같다.음식을하는데는’변두’를사용하고손으로밥을먹는다.사람이죽으면관이있
느나곽은없이흙으로무덤을만든다.처음사람이죽흐며십여일을상을치루는데마땅히이때
고기를먹지않고상주는곡을하는데,다른사람들은노래하고춤추며술을마신다.장사를마
치면,집안이모두물속에들어가목욕을하는데,’연욕’과같다.사신으로바다를건너중국에
갈때는한사람이머리에빗질하지않고,이나서캐도잡지않고,의복은더럽게하고,고기도
먹지않고,부인과가까이하지않으니상을치루는사람과같다.이를’지쇠’라고한다.만일
길을가는자가좋은일이있으면,함께재물을그사람에게주고,만일질병이있거나,나쁜해
를당하면이를죽일려고하는데,’지쇠’가삼가지않았다고그런것이다.진주와푸른옥이나온
다.

其山有丹,其木有··豫樟··投·烏號·楓香,其竹篠·桃支.有薑·橘·椒·荷,
不知以爲滋味.有·黑雉.其俗擧事行來,有所云爲,輒灼骨而卜,以占吉凶,先告所卜,其辭如
令龜法,視火坼占兆.其會同坐起,父子男女無別,人性嗜酒.{《魏略》曰:其俗不知正歲四節,但計
春耕秋收爲年紀.}見大人所敬,但搏手以當拜.其人壽考,或百年,或八九十年.其俗,國大人皆
四五婦,下戶或二三婦.婦人不淫,不妬忌.不盜竊,少諍訟.其犯法,輕者沒其妻子,重者滅其門戶
及宗族尊卑各有差序,足相臣服.收租賦.有邸閣.

산에는단사가있는데,그나무로는남·저·예장·유력·투강·오호·풍향등이있고,대나무로
는가는대와조지가난다.생강과귤,산초나무와양화가있지만,맛을보태는것인줄알지못한
다.원숭이와검은꿩이있다.그풍속에일이있으면이르는곳이있는데,뼈를불살라점을
치는것이다.길흉을점칠때먼저점치는곳에고하는데그법이거북점과같다.불이터지는
것을보아서점을치는것이다.모임에서앉아서하는데,부자와남녀의차이가없다.사람들성
질에술을즐긴다.[위략에그풍속에정확히해와사절기를알지못한다.다만봄에밭갈고가
을에거두는것으로그해의기준으로삼는다]어른에게공경을보이는것은단지손을잡고꿇
어엎드려절하는것이다.사람들의수명은혹은백살이요혹은팔구십살이다.풍속에나라의어
른들은모두사오명의부인이있는데,하호들도혹이삼명의부인이있다.부인은음란하지않
고,투기하지않는다.도둑이없고,송사가적다.법을범하면가벼운자는그처자를죽이고,
무거운자는그집안에서종족까지멸한다.높고낮음에차이가있으니,복종해야한다.세금을
거두고,문설주가있다.

國國有市,交易有無,使<大倭>監之.自<女王國>以北,特置一大率,檢察諸國,諸國畏憚之.常治<
伊都國>,於國中有如刺史.王遣使詣京都·<帶方郡>·諸<韓國>,及郡使<倭國>,皆臨津搜露,傳送
文書賜遺之物詣女王,不得差錯.下戶與大人相逢道路,逡巡入草;傳辭說事,或或,兩手據地,
爲之恭敬.對應聲曰噫,比如然諾.

나라에시장이있어교역이있는데’대왜’가이를관리한다.’여왕국’의북쪽에특별히큰기관
하나를두는데,여러나라를살피는것으로여러나라들이이를두려워하고꺼린다.’이도국’을
다스리는데나라중앙에자사와같은것을항상둔다.왕이경도나’대방군’여러’한국’과’왜
국’의군에사신을보내어여왕에게하사하는물건과문서를보내와전하는데,섞임이없었다.
하호들이길에서대인을만나면뒷것을질쳐풀속에들어간다.전하는말로혹은웅크리고있거나
엎드려있는데양손을땅에댄어공경을나타낸다.대답할때는’아’그러는데이것은그렇다는것
이다.

其國本亦以男子爲王,住七八十年,<倭國>亂,相攻伐歷年,乃共立一女子爲王,名曰<卑彌呼>,事鬼
道,能惑衆,年已長大,無夫壻,有男弟佐治國.自爲王以來,少有見者.以婢千人自侍,唯有男子一
人給飮食,傳辭出入.居處宮室樓觀,城柵嚴設,常有人持兵守衛.

그나라는본래역시남자가왕이었다.칠팔십년후에’왜국’에난이이서서로공격하고벌하며
지내다가함께여자를왕으로세웠다.일명’비미호’로귀신을부리고능히백성을미혹게하여
이미성인인데도남편이없다.남자동생이있어나라를다스림을도왔다.왕으로써왔는데보았
다는사람은적다.여자종수천이시중드는데도오직남자한명이음식을대고,나고들면서말을
전한다.거처하는궁실과누각과성책은엄하게만들었고,항상병사로써지키고있다.

<女王國>東渡海千餘里,復有國,皆<倭>種.又有<侏儒國>在其南,人長三四尺,去女王四千餘里.又
有<裸國>·<黑齒國>復在其東南,船行一年可至.參問<倭>地,絶在海中洲島之上,或絶或連,周旋可
五千餘里.

‘여왕국’에서동쪽으로바다를건너천여리에다시나라가있는데,모두’왜’의종류이다.또한
그남쪽에’주유국’이있는데사람들의키가삼사척으로’여왕국’에서사천여리이다.또한’나
국’과’흑치국’이그나라동남쪽에있는데배로일년을가야이른다.모두’왜’의땅으로바다
가운데에섬으로끊어져있고혹은연해있기도하니사방가히오천리이다.

<景初>二年六月,<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求詣天子朝獻,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其年
十二月,詔書報<倭女王>曰:[制詔<親魏倭王><卑彌呼>:<帶方>太守<劉夏>遣使送汝大夫<難升米>·
次使<都市牛利>奉汝所獻男生口四人,女生口六人,班布二匹二丈,以到.汝所在踰遠,乃遣使貢獻,
是汝之忠孝,我甚哀汝.今以汝爲<親魏倭王>,假金印紫綬,裝封付<帶方>太守假授汝.其綏撫種人,
勉爲孝順.汝來使<難升米>·<牛利>涉遠,道路勤勞,今以<難升米>爲率善中郞將,<牛利>爲率善校
尉,假銀印靑綬,引見勞賜遣還.

‘경초’이년유월’왜여왕’이대부’난승미’등을보내어군에이르러,천자에게조헌하기를구하
자태수’유하’가서울에사신을보냈다.그해십이월조서를내려’왜여왕’에게말하길”친위
왜왕비미호”대방태수유하’가당신이의대부’난승미’와다음사신’도시우리’를보내와남자4
명과여자육명,포두필이장을받치니이에이르렀다.당신이있는곳이먼데도,사신을보내어
공물을받치니당신의충효가이와같아,내가슬프기까지하다.이제당신을’친위왜왕’을삼는
다.그리고금으로만든인과붉은빛인끈을봉해서’대방태수’에게보내는것이니,당신은백
성을잘다스리고힘써효도하고잘순종하도록하라.당신이보낸사신’난승미’와’도시우리
‘는길이먼데수고가많았기로,이제’난승미’를솔선중랑장을삼고,’우리’를솔선교위를삼아
은으로만든인과푸른인끈을주고불러보고위로한다음돌려보내는바이다.

今以絳地交龍錦五匹·{臣<松之>以爲地應爲,<漢><文帝>著衣謂之是也.此字不體,非<魏
朝>之失,則傳寫者誤也.}絳地粟十張·絳五十匹·紺靑五十匹,答汝所獻貢直.又特賜汝紺地
句文錦三匹·細班華五張·白絹五十匹·金八兩·五尺刀二口·銅鏡百枚·眞珠·鉛丹各五十斤,皆
裝封付<難升米>·<牛利>還到錄受.悉可以示汝國中人,使知國家哀汝,故鄭重賜汝好物也.]

그리고강지교룡금오필과[신하’송지’가,땅에비단을상응하게한것은’한문제’가검은옷
입은것과,두터운비단을취한것을말했으니,이것이다.이글귀가없는것은위나라때빠뜨린것이
아니라,이전에,베껴쓰던자들의착오이다],강지추속계십장,청강오십필,감청오십필을주어
당신이받친공물에대해답하는것이다.또특별히너에게감지구문금삼필과새반화계오장,
백견오십필,금팔냥,오척도두자루,동경일백매,진주와공단각오십근씩을모두포장하여
‘난승미’와’우리’에게주어돌려보내는터이니,너희는이를갖다가너희나라사람들에게일
일이보여주어서우리나라가너희를아끼는뜻을알게하도록하라.그래서정중하게이같은좋
은물건을너희에게하사하는바이다]했다.

<正始>元年,太守<弓遵>遣建忠校尉<梯儁>等奉詔書印綬詣<倭國>,拜假<倭王>,幷齎詔賜金·帛·錦
·刀·鏡·采物,<倭王>因使上表答謝恩詔.其四年,<倭王>復遣使大夫<伊聲耆>·<掖邪狗>等八
人,上獻生口·倭錦·絳靑·衣·帛布·丹木··短弓矢.<掖邪狗>等壹拜率善中郞將印綬.其
六年,詔賜<倭><難升米>黃幢,付郡假授.其八年,太守<王>到官.<倭女王><卑彌呼>與<狗奴國>男
王<卑彌弓呼>素不和,遣<倭><載斯>·<烏越>等詣郡說相攻擊狀.

‘정시’원년’태수궁준’이건중교위’제휴’등을보내서조서와인수를가지고왜국에가서’왜
왕’에게절하고,아울러금백과금계,도경,채물등을하사하였다.이에’왜왕’은표문을올려
조서와물건을내린은혜에회답해왔다.사년에’왜왕’은다시사신으로대부’이성기’와’액사
구’등팔인을보내서포로몇명과왜금,강청,겸금,의백,포단,목부,단궁시등을바쳐왔
다.이에’액사구’등에게한결같이솔선중랑장의벼슬을주고인수를주었다.육년에조서를내
려’왜국’의’난두미’에게황기를주고,부군을주었다.팔년에는태수’왕기’가와서보고하기
를,’왜국의여왕비미호’와’구노국’의남왕’비미궁호소’사이에불화해서’왜국’에서는’재
사’,’오월’등을보내서그들의서로공격하는모양을보고했다고한다.

遣塞曹史<張政>等因齎詔書·黃幢,拜假<難升米>爲檄告喩之.<卑彌呼>以死,大作,徑百餘步,
葬者奴婢百餘人.更立男王,國中不服,更相誅殺,當時殺千餘人.復立<卑彌呼>宗女<壹與>,年十
三爲王,國中遂定.<政>等以檄告喩<壹與>,<壹與>遣<倭>大夫率善中郞將<掖邪狗>等二十人送<政>等
還,因詣臺,獻上男女生口三十人,貢白珠五千,孔靑大句珠二枚,異文雜錦二十匹.

이에중국에서는색조연사’장정’등을보내서조서와황기를내려’난승미’에게벼슬을주고화
친하도록타일렀다.’비미호’가죽자크게무덤을만들어직경이백여보나되게한다음여기에
노비백여명을순장했다.뒤를이어다시남왕을세웠으나,온나라사람들이여기에복종하지
않고저희끼리서로죽이고싸워서이때죽은사람만도천여명이나되었다.이리하여그들은
하는수없이’비미호’의일가딸이되는’대여’를세웠다.이때대여의나이는겨우십삼세였
는데비로소나라안의인심이정해졌다.’정’등이’대여’를타이르는글을보냈더니,’대여’는
‘왜국’의대부솔선중랑장’액사구’등삼십명을’정’에게보내와서뵙고포로삼십명과흰구
슬오십덩이,청대구주두장,이문잡금이십필을바쳐왔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