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살소녀가제땅을떠나만주로갔다.나라는남의손에빼앗긴지오래,배고픔이라도면하고싶었다.만주에는먼저이주한큰집이살고있었다.땅이너르고비옥하다는소문이었다. 그러나꿈의땅만주는소문과달랐다.풍요로운고장이기는커녕외려영하30℃가넘는강추위가기다리고있을뿐이었다.가래침을타악뱉으면땅에떨어지기도전에얼어버리는땅,추웠고배고팠다.거칠고낯설었다.살길을찾아야했다.두오라버니는군에입대했다.배라도곯지않으려면그길뿐이었기에,여동생도따라입대했다.중국군대,팔로군(1937~45년일본과싸운중국공산당의주력부대,1947년‘인민해방군’으로이름이바뀐다)이었다. 일본이전쟁에지고조국은해방됐다는소문이돌았다.그러나돌아갈길은없었다.제2차세계대전은끝났어도중국은여전히전쟁중이었다.장제스(蔣介石)의국민군과마오쩌둥(毛澤東)의인민해방군,양쪽이치열하게대치하는선봉에소녀가배치됐다.간호병이었다.‘호리반(護理班)’이라고불렀다.12명이한반이고세반이한패인조직에서반장과패장노릇을했다. “반,패,련,영,단이있고그위에있는게사단이었어요.반이셋이면패,패가셋이면련,련이셋이면영,이런식이었지.난선봉반반장이고강철패패장이었어요.” 7년을전쟁속에서살았다.죽을고비를숱하게넘겼다.꽃다운나이에죽음을신물나게경험했다.남의나라전쟁이었다.남의땅이었다.7년의군생활은딴사람의일생보다길었다.삶을보는눈자체가달라졌다. “그걸말로다하라고?” 이제일흔여섯이된그소녀윤금선(尹錦先)은이야기를들으려고바짝다가앉는날보며어이없어했다.그러나나또한만만찮은사람.윤금선에게서숱한이야기를끄집어냈다.전에단한번도말한적없다던이야기,차마발설해서는안될듯한이야기,지금중국에살고있는세아들의신상이염려되는이야기들이윤금선의입에서술술술흘러나왔다. 그를세번만났다.서울방학동네거리에있는그의사무실에도가봤다.어떤독지가가무료로빌려준너른공간에서윤금선은중국에서배워온기공술을가르치고있다.그에따르면기공은좀더건강하고행복하게오래살수있는기술이라고한다. “피부빛깔이어떻든,어떤시대에살든동서고금모든사람에게는한가지공통점이있어요.건강하고행복하게오래살고싶다는소망이지요.그방법을내나라사람들에게선사하고싶어요.나는내눈물로조그만강도만들수있고조그만산도만들수있을정도로많은고통을겪으며살아나온사람이에요.할머니들을모아놓고말해요.‘노인의눈물을닦아주는세상이좋은세상이다.이제까지는고통을겪으며살아왔더라도우리지금부터는재미있고보람있게삽시다.내가그기술을가르쳐드릴게요’라고.” 인생에는조양(朝陽)오양(午陽)석양(夕陽)이있는데자신의석양을남들에게기공을가르치면서보람을찾고싶다는게지금남은윤금선의꿈이다. 24시간180리행군 군에입대한건1947년봄이었다.만주옌지(延吉)에서였다.큰아버지가이웃마을의나이많은남자에게자기를시집보내려한다는말을올케에게들었다.마침팔로군선전대가마을에들어왔다.가면밥도먹여주고가난한인민을해방시키는장한일을하게된다고했다.1930년생이니그의나이열여덟이었다.엄마한테만몰래말하고40리를걸어갔다.그부대이름은옌지쌍하진부대라했다. “폭탄소리탄알소리를겁안내고잘걸을수있니?”라고물었다.그러겠다고대답했다. “머리를요렇게땋았는데가자말자다깎아버리데.그리고허술한군복을줘.남자처럼헝겊으로갑빵(그는‘각반’을이렇게발음했다)을치고….이튿날부터바로전쟁판이었어.교육받을새도없이상병자(傷病者)들이몰려들기시작하는데말도못하지.피닦아주고붕대감아주는일만해도잠은커녕변소갈틈도없었어.” 영화나소설속같은상황이실제로벌어졌다.국민당군과직접교전하는부대였다.마오쩌둥의인민해방군이이기는중이었다.전선이바뀌므로야전병원도같이이동해야했다.무조건걸어야했다.24시간안에180리를긴급행군하는날도있었다.높은산도넘었다.산으로이동할때기압이낮아다들코에서탁탁소리가나더니코피가터졌다.대열에서떨어지면죽음이었다.여름두벌,겨울한벌지급되는군복이보급품의전부였다. 부대는말할수없이가난했다.그러나인민의물건은바늘한개라도탐할수없었다.이동하다빈집에자물쇠가채워져있고그방안에두터운솜이불이켜켜이쌓였어도,그앞에서떨며밤을지새울지언정빈집에맘대로들어가지못하는게규율이었다. “어느집에서물한모금을얻어먹으려면반드시그집물독에물을가득채워줘야했어요.마당도쓸어주고집안청소도깨끗이해주고나오라고했어.한번은내가어떤마을에서물을긷다두레박끈이뚝끊어져쇠로된바가지를우물에빠뜨렸어.그럴때아무리부대이동이급해도바가지를건져놓지않고는마을을떠날수가없거든.선발대는이미출발했는데두레박을빠뜨렸으니.간신히두레박을건져놓고먼저출발한부대를허겁지겁따라가느라고얼마나애를태웠던지….” 마침내황하를건넜다.물이목까지차는바다같은강이었다.부대원이다같이손을잡고한발한발거대한물살을헤치며건넜다.황하도강중숱한사람이죽었다.지역사람들이국민당군몰래배를저어와서12명한반이뱃전을잡고물을건너게도와주기도했다.그런배가뒤집어져반원이몰살하기도했다.윤금선의반원은한톨도흠결없이무사히강을건넜다.그는아래전사를잘보살핀공로로훈장을받는다. “인민군대엔열서너살짜리어린애도많았어요.그애들은눈만감으면사는줄알고위기가닥치면‘마야(엄마)’하면서눈을꼭감지요.” 그렇게늘죽음이목전에있고헐벗었어도,아니바로그랬기에부대원끼리나누는정은하늘아래그만큼뜨거울수없을정도로절절했다. “밥을서로먹으려고하는게아니에요.나이든반장들은제밥을한숟갈이라도덜어내서어린병사에게나눠주죠.행군을하고나면발바닥에콩알같이물집이잡혀요.이걸그냥두면탈이나거든요.소독한바늘에머리카락을꿰서물집에다살살통과시켜요.머리카락만남기고바늘을빼버리면그머리카락을타고밤새진물이빠져나오거든요.발바닥에다들스무개남짓의머리카락을늘이고잠이들지요.날좋으면그걸햇볕에꾸덕꾸덕하게말리고.그런걸서로해주면서걷는거지요.반장이나패장들은반원들발목주물러주느라고밤에거의잠도안자요.” 업힌부상자를뚫고간총알 큰부상을당하면부상자체보다후방으로후송되어부대원들과떨어지게되는걸더겁낼만큼부대원끼리감정적으로밀착해있었다.어려운전투를마치고나면서로어깨를붙잡고울었다. “꼭월드컵때축구공하나넣으면서로붙잡고우는것같았지.” 인민해방군은연이어승리했다.사기가하늘을찔렀다.그런만큼부상자도많았다.일선의야전이동병원은붐비고바빴다. “야전병원이야다외과환자지.의사,간호사구별도없어.그저지혈하고소독하고피모자라면수혈하고15분간격으로붕대갈아매주고부상이심한환자는후방병원으로이송하는거거든.핀셋으로붕대를집어주다서로꾸벅꾸벅조느라고허공에서핀셋이부딪치면깜짝놀라깨어나고….각자제피를100ml주사기로빼내서돌아서서환자에게수혈하는거예요.피가있어도보관할수가없으니그때수혈은다호리반전사들피를즉석에서빼서모자라는사람에게넣어주는식이었지.모자와군복에다들제혈액형을써붙이고다녔거든. 팔다리가끊어진상병자도많아.그러면일일이밥도떠먹여야해요.대변보면닦아줘야하고.아휴,그걸어찌말로다해요.그래놓고는금방다시행군을시작하는거지요.” 부대에서군의(軍醫)학교를다녔다.군사외과와내과를배웠다.사상교육이특히철저했다.‘3개기율,8대주의’를늘외고다녔다.‘인민의물건을건드려선안된다.인민에게손톱끝만치라도폐를끼쳐서는인민해방을위한군대가아니다’는것이첫째기율이었다. 한번은그가쓰러진부상병을등에업고달렸다.업힌중에그부상자의몸으로다시한번탄알이관통하는게느껴졌다.더욱죽을힘으로달렸다.막사안에내려놓으니부상자는이미죽은후였다.몸이피투성이가된것은물론이었다.나중생각하니업힌부상자가아니었으면그탄알은자기몸을뚫고지나갔을지도모른다싶었다. 밥은세끼를줬지만수수쌀아니면옥수수밥이었다.물이없어말오줌을마시는건늘있는일이었다.그냥행군만도아니었다.짐을져야했다.다른보급수단이있을리없었다.“길쭉한자루를기워서제먹을식량을넣어각자어깨에메요.이런말은한번도한적없지만,인민군들은각량이라고해서동전을길쭉한자루에넣어메고다녔어요.전사들은아니고간부들만그돈을70개씩자루에넣어서멨어요.그건국민당이다스리던마을에들어가면그들에게물건값을치르기위한돈이었어.우리는물한모금도인민의것을공짜로취하는법이없었거든요.이불을또한꾸러미메고약통도메고…간부일수록짐이무거웠다구.” 인민부대안에서구타나징벌같은건상상할수도없었다.전사들을진정금쪽같이위해줬다. “간부는사병의머슴이란생각이투철해요.나중6·25때우리나라군인들이아랫사람을구타한다는소리를듣고깜짝놀랐어.아니파시스트군대처럼왜사람을패요?인민군대는사병을팼다가는군사재판감이지.조국을위해청춘과생명을바치러나온사람을패기는왜패요? 장제스부대는기계화부대였어.미국이무기를대줬거든요.하지만우리는‘보총’이라는길다란구식총밖에없었어.팔로군은그걸로결국장제스부대를물리쳐서본토에서내쫓아버렸지.그게1949년10월1일이었어.마침내전쟁이끝난거지요. 그리고이듬해한국에서전쟁이났지요?내가어디로갔냐고?그건차마발설할수없어요.아직아이가넷(3남1녀)이나중국에살고있으니그들에게해가가면어떻게해.그저말로는다못할고초를겪었다고만해둡시다.그후6·25전쟁이끝난1954년에제대했어요.그러니군생활내내최전선에만있었던셈이지.” “내가우황청심환팔러왔나” 소녀윤금선은2000년서울로돌아왔다.어머니가아흔둘의나이로중국창춘(長春)에서돌아가시며유언을했다. “내가비록몸은여기서죽지만죽은몸일랑되놈들사이에묻지마라.가루내어송화강에뿌려라.뼛가루라도내고향합천으로흘러가보고싶다….” 어머니가그토록그리던고향이란도대체뭘까.돌아가보고싶었다.실은1992년에서울에온적이있었다.그사연을말하면서윤금선은갑자기눈물을보였다.옆에서사람이죽어나가는치열한전투얘기때는담담하기만하던그였다. “당시에는한국에나오기가쉽지않았어요.친척의초청이있어야했고준비하는데만1년넘게내부조사를받아야했거든요.그런데비자시효가석달밖에안돼요.청주사는친척이초청해나오긴했는데법무부에서석달만에떠나래요.떠나려니내마음이대단히섭섭하더라고요. 법무부출입국관리사무소에가서항의했지요.60년만에고향을찾아온사람을이렇게개쫓듯이내쫓는법이어디있느냐,내가중국에밥이없어온것도아니고옷이없어온것도아니다.내가무슨우황청심환이나팔려고온사람인줄아느냐.고향의기운을느끼고고향사람과이야기를나누고싶어왔는데어찌이리천대하느냐고.” 그때청와대비서실에근무하던김선호라는사람과연락이닿았다.김씨는소설‘단’의주인공인권태우옹의수제자로기공수련의고단자였다.이미중국에서그를한번만난적도있었다. 김씨는출국을연기해준건물론,청와대에데리고가국무위원들의병을보게했다.그는중국의사였다.군제대후창춘관성병원의중서의(中西醫)결합의사로20년넘게근무했다.서양의학과한의학을함께공부했고,게다가의사재직중세계최고의대기공사엄신선생문하에서기공술을배웠다.동서양의학의결합에기공이란미세한에너지의학까지통달한기술이니,김선호씨가그의기술을아까워하고자랑스러워했을만하다. 그해청와대에들어가문화부장관과외무부장관의병을봤던기억이있다.그가족들의병도봤다.처방도떼고음식과운동법을가르쳐줬다.당뇨병이중해눈에합병증이온장관에게는국화꽃을가만히오래들여다보라는묘방도내려줬다. “내가특이공능(굳이말하자면초능력에속하는어떤힘이다)이있거든요.병을봐줬더니그사람들이신기해하면서할머니이걸로음료수나사드세요,하면서주머니에서종이를몇장꺼내줘.지금생각하면그게수표였다고.내가여기돈을아나,그걸선호가모아놨다가나중에중국으로별걸다부쳐주데요.당시만해도창춘에는냉장고니텔레비전이니하는게없었어.그런낯선물건에다전자레인지까지다사서보내주더라니깐요.” 김선호란이는기공수련이상당한경지에이른사람이었던모양이다.민족정기가뭉쳐있다는‘소백두산’의정체를찾느라고일부러중국에다녀가기도했다. “선호와함께역사자료를뒤져지린성(吉林省)에있는소백두산이라는곳을찾아냈어요.한국서온팀들과거기서밤새도록수련을했지요.선호는늘말했어요.‘선생님,이좋은기술을한국에와서쓰십시오,우리나라에기공을보급해주세요,우리나라사람들에게특이공능을보여주세요.언제까지남의나라에서허송하고계실겁니까’….” 삼풍백화점붕괴가한국행좌절로 중국가지말고홍콩에잠깐나갔다다시들어오는수속을해주겠다고말했지만때가마침대통령선거철(노태우대통령에서김영삼대통령으로)이라선호가하도바빠보여일단중국으로돌아갔다.얼마후김선호에게서서류가도착했다.한국입국서류절차를다밟아보낸것은물론“선생님,예쁜옷사입고좋은신발도사신고오세요”하면서돈도상당액넣어보냈다. “우리큰아들에게병이있었어요.머리에종양이생겨수술을했는데수술중에운동신경을건드려버렸거든요.재수술하고그러느라고빚을졌는데선호때문에그빚을갚을수있었지요.얼마나고마웠던지….” 시키는대로좋은옷과신을샀다.며칠후면한국으로출발한다고만반의준비를갖춰놓은상태였다.그런데서울에서전화가왔다.불길했다.받아보니선호아내였다. “선생님,백화점이무너졌어요.아범이기표손을잡고백화점에간다고나갔는데….선생님,제발우리기표와아범을살려주세요.” 삼풍백화점붕괴였다.따라서그의한국행도붕괴됐다. “더가까운사람이죽은경험도많았지만선호때처럼슬프지는않았어요.정신이확나가서밤새도록기도해도아무것도떠오르질않았어.다음날자시쯤에야선호와애가건물더미에깔려있는게어렴풋이보였어요.이미희망이없데요….구하산에가서법사6명을청해서선호의49재를지내줬지요.그러고는한국올생각을접었어요.” 6년후한국정신과학연구소에서외국인연구원자격으로그를초청했다.늘선호의마지막말이귀에쟁쟁했다.외국이아니라한국에서기술을전해달라는말.앞에도언급했지만그는중국정부가인증하는고급기공사,특이공능기공사의자격을갖춘사람이다.마침출판사‘정신세계원’과인연이닿았다.그곳에서‘양생기공사반’을만들어줘사람들에게기공을가르쳤다.나이를초월한젊음과비상한정신력의원천이기공에있다는것을,엄신선생에게배운이론과실기를가르쳤다. 다섯해만에400여명의제자가생겼다.제자들은스승의귀화를간절히원했다.죽은선호와똑같이소중한기술을조국에풀어놔야한다고설득했다.그는지난해,고국을떠난지60여년만에대한민국국적을되찾았다.귀화해법적한국인이됐다.귀화하면서방학동네거리에‘난강(暖江·윤금선의호)기공양생수련센터’문을열었다.며칠전엔제자들이개원1주년잔치를알뜰하게마련해줬다.그게너무고마워그의눈엔또눈물이핑글돈다. 一日一食 그는매일새벽3시에일어난다.그시간에수련한지아마수십년이다.음식은하루한끼만먹는다.복기(復氣)할수있는힘이있으면실은인간은음식을먹지않고우주의기를흡입하는것만으로도충분히살수있다는주장이다(일반인에게권할일은못되지만어쨌든음식량을적게섭취하는것은매우바람직한일이란다). 고기는물론입에대지않고멸치조차먹지않은지오래다.중국에선오신채도취하지않았지만한국에서워낙마늘들어간음식이많아손님이오시면유난떨지않고그냥먹는편이다.단하루한끼이상은먹지않는다.그한끼도고구마나누룽지같은걸로가볍게거쳐간다.허기지면잣몇알넣고바나나를갈아서조금마실뿐이다.그래도그는기운이넘친다.인간은음식으로사는게아니라는것이다. 손가락하나만으로물구나무서기를10분씩하고양다리를가뿐히180도로펼쳐놓는다.비호같이산꼭대기에오르고6시간을쉬지않고강의해도지치는걸모른다.피부와머리칼은거의청년같다.윤기흐르고탄력있다. “목욕탕에가면다들머리칼도만져보고몸매도만져봐요.뭘먹길래이렇냐고물어요.이렇게되는방법을공짜로가르쳐줄테니수련원에나오라고해도다들안와요.” 새벽3시에일어나는건인시(寅時·3∼5시)가우주의황금시간이기때문이다.하루중그시간대가양중의양인데우리나라사람들은그걸모르고아까운시간을대개잠으로허비해버린다.그게그는몹시도안타깝다. “인시가,단전기가가장활력있을때예요.오늘은어제도아니고내일도아닌데그시간에잠을자다니.생활시계가잘못돌아가고있는거예요.한국은개인사업이대단하니까밤에늦게자느라고3시에못일어나지요.그러나중국인들중엔인시에일어나도닦는사람이굉장히많아요.” 그는고기를많이먹는민족,노인을공경하지않는민족은공업(共業)이많이쌓인다는말도했다.내생각에그말은새로운세기의혼돈스러운삶에지표가되는이데올로기가될듯했다.따로자연보호니환경인식이니가필요없는선언이었다. “사람은채식하고소식해야해요.고기의사료를대느라고지구에서기른채소의절반이상이든다고하잖아요.채식을하면양식이적게들어요.많은사람이나눠먹을수가있어좋고개인이병없이살수있어서좋고일부러비육동물을기르지않으면생태평형이이뤄져서좋지요.소식하고채식하면탐심이없어져요.탐심이없어지면만족감도절로따라오지요.고기에는죽으면서품은그짐승의한이배어있어요.그게우리몸에자꾸쌓여서좋을일이있겠어요? 우주만물과의대화 노인들이한을품고죽게해선안돼요.돌아갈때웃으며화평하게가는노인이많은나라가잘되는나라예요.불행하게세상을뜬노인이많으면나라에재난이그치지않게돼있어요.생명을귀중하게여기고힘없고무력한사람들을도와주는나라가복받고잘살거예요.그게안되면이나라가아무리전자제품을잘만들고많이팔아도아무소용없는일이에요.원한을품고저세상으로가는사람이많으면그원한은이땅에남게돼요.그신호(시그널)가나라안에공업이돼서남아있으면후손이잘될수가없어요….자연에자꾸따스한사랑을줘야해요.그따스한사랑이결국세상을화평하게만들거든요.” 이말을그는아주조용하게했다.기공을모른다고그의이야기를백일몽으로취급해버릴건가.그는세상모든생물이대화상대가될수있다고도말한다.그러니암만혼자있어도외롭지않다.아니생물이아니라도상관없다.아침마다높이쳐놓고뛰어넘는고무줄에게도얘기하고빈방과도얘기를나누고빗소리에게도말을건다.중국을떠날때수련하던곳에서있던소나무에게도작별인사를하고왔다. “안녕,이번에가면몇년있다오게될거야.그동안잘지내렴.” 분별심이없기에우주만물과의념,의식으로대화가가능하다. 그의집뜰엔들고양이가족이새끼를낳아여남은마리모여살고있었다.도무지갈생각을안해그는오늘아침그들에게간곡히말했다. “미안하지만나는돈을잘벌지를못한단다.그러니너희들이먹어대는식량을감당못하겠다.제발다른집에가다오.미안하다얘들아.” 어느날은자다가목이말라깨어보니화초에물주는걸잊어버려화분이바짝말라있었다.얼른물을주면서사과했다.미안하다.얼마나목이탔겠니.이렇게혼자중얼거리는것은외로워서가아니다. “주변에있는사물을천대해보세요.불만을가지는감각이반드시있거든요.반대로아껴주고사랑해주면주변이반드시환한감각으로보답을해오거든요.노인들을만나면늘그렇게권해요.대화상대가없어외롭다고자식들원망하지말고꽃이라도심어놓고말을걸어보라고.그러면집안에화기가절로생겨난다고.” 짐작했겠지만그가연마한엄신기공의근본은신체수련이아니다.덕성수련이다.‘덕성은기공세계의문을열어주는황금열쇠다.’ “기공수련자가덕을쌓지않으면모래를삶아서밥이되라는것과같아요.심성수련을경시하고공법에만뜻을두면아무래오래수련해도기술이늘지않아요.모든사람이내가족이요,모든만물이내스승이다,이것이엄신대사님이요구하는덕성입니다.책갈피하나도나를도와줬으니감사하고물컵하나라도나를편하게물마시게해줬으니감사하다.그래서소중히다루고아껴준다.그것이덕성의기본이되는겁니다. 신체보다마음수련이7이에요.고수가되면마음이9라고하지요.사람들은어떻게하면특이공능을개발하고천목(天目)을열까를먼저생각해요.그러나천목은누가열어줘서열리는게아니에요.덕성이높아져내몸의진기가날마다쌓이는어느날저절로열리는거지.” 창춘병원에근무할때그에게는지병이있었다.만성위염에관절염에목디스크에중허증이라고귀에서소리가나는증세까지있었다.그러던중병원으로날아온기공수련프로그램안내서를우연히봤다.1979년처음배운건학상장기공이었다.그걸마스터한후다시엄신대사를찾아가그에게수련을받았다. 기공에관한공식명칭도여럿얻었다.중국기공과학연구회특별회원,지린성기공과학연구회상무,지린성학상장기공위원회이사장등.기공을배운이후약을모르게됐다.지병이싹사라졌고외려몸이젊어졌다. 재미있는이야기하나. “서울와서롯데월드인가아이들노는기구많은곳에갔는데공중에빙빙도는그게타고싶더라고요.머리가허연노인이라고표를안끓어주는거예요.그건50세까지만타는게규정이래요.하도재미가있을것같아이쪽에와서모자를하나샀지요.흰머리칼을모자안에다감췄더니암말않고표를끊어주데요.곁엣사람은왝왝구역질을하는데나는좀더탔으면싶더라고요.” 병원에서신체나이를측정해보니45세정도로나오더란다.젊은시절그토록모진고초를겪었건만그의얼굴은화평하고웃음가득하다.인간이라면모름지기이세상을뜨는그날,미소를띠며단정히앉아‘그동안고마웠어요.다들안녕히계세요’라고하직인사를하고가야한다는게그의생사관이다.세상이고해라지만인간으로탄생한그자체가굉장한축복인데감사하고가는게온당하지않겠냐는거다. 세가지커다란설움 “내가오랫동안병자들하고같이지낸사람아닙니까.곁에서지켜보니몸아픈게가장큰고통입디다.좀모자라게먹고좀춥게입는것은아픈것에비하면아무것도아니에요.나는돈도없고지위도없어요.중국가면혁명유공자로연금도나오고아무도날괄시하지않지만한국에선중국교포를좀우습게아는경향이있지요.미국이나일본교포하고는대우가다르더군요. 나는일생세가지커다란설움을당하며사는사람이에요.어려서는식민지백성이라서설움,중국가서는소수민족이라는설움,돌아와서는교포라는설움.가장행복하고충만했을때가그런설움없는전쟁중의군대시절이었다면믿을수있겠어요? 그러나비록가진것없이나이먹었어도나는70평생살면서터득한바른길을알고있어요.그걸죽은선호말처럼우리나라사람들에게알려주고싶어요.이세상에울고태어났는데그리고살면서울일도많았는데갈때는최소한울지말자는겁니다.나이들면자기인생을미소를띠고바라보면서편안하게죽을준비를해야지요.‘나는이렇게사니까,이렇게먹으니까,몸이나날이편하고좋아지더라’는것을직접보여주고싶어요. 여사님(그는나를‘여사님’이라는낯선호칭으로불렀다)은영혼이맑은사람이지만정기신(精氣神)이많이약해졌네요.나는이나이에도정기신이충만해서다못쓸정도로남아도는데….어렵지도않고돈이들지않고시간이많이걸리는일도아니에요.기공을해보라면여기사람들은다들시간이없다고하더라고요.왜들그렇게시간이없는거지요?” 돈벌이하느라고시간이없는거라면기공수련이야말로진짜돈벌이아니냐고그가묻는다.아프지않고건강하면병원갈돈이절약되고국가적으로도의료비지출을줄일수있어큰이득이될게아니냐는거다.중국엔의료비지출을줄이려각마을끼리막대그래프를그려가며경쟁하는제도가있단다.그제도가기공이나체조로건강을지켜의료비를줄이자는붐을조성한다니시민사회나정책입안자들이귀기울일만한지적이다. 가난한청년과의결혼 친정의두오라비는다팔로군에나가죽었다.살아돌아온건딸인윤금선뿐이었다.아들대신친정부모님을모시고살아야했다.당시는가부장제가철저해딸이부모를모시는게쉬운일이아니었다.친정부모님을모시는데반대하지않을조선사람을찾았다.병원의동료가가난한청년을소개했다. “집에찾아왔어요.나가보니한겨울인데얇은재킷에발가락이나온양말을신고서있어요.그게마음이찡해서결혼을결심하고말았죠.나중알고보니그재킷조차형에게빌려입고온거더라고요.” 결혼하니양쪽부모형제합해서딸린식구가11명이나됐다.아이가태어나자식구수는더늘어났다.그는창춘병원의중견이었지만공산사회의의사급료는낮았다.그는전쟁에서대공을세개나따낸유공자로국가로부터연금을받았다.그렇지만식구가하도많아살림은넉넉할수가없었다.게다가아들이병이났고수술이잘못됐고그도몸이아팠다. “내가기공공부를시작한건양의만으로는뭔가부족한걸느꼈기때문이에요.양의는단순히주사놓고약바르고자르고깁고하는것만알잖아요.한의를배우면서좀더미세한것을알게됐어요.한의자체가기공과연관되어있었기에자연스레기공으로관심이흘러갔죠. ‘황제내경’에보면오운육기라는게있는데그냥의학책이아니에요.그가운데기공이들어있었던거예요.공부하면서거기무궁무진한동방의전통문화의보물이숨어있다는것을알게됐지요.노자도덕경80장안에들어있는말도모두기수련에관한얘기라는것도알아냈습니다. ‘본초강목’을쓴이도기공을통해비밀을알아낸거더군요.백가지,천가지약의쓰임을어떻게알았겠어요.이약은심경으로들어가고이약은간경으로들어가고감초는어느경락으로들어간다는것을일일이실험할수는없는일이잖아요.현대해부학에서는경락이보이지않습니다.그런데기공공능상태에서는다느껴지거든요.양의사는피를빼서확인하고초음파진단을하고기계를이용해객관적확인을하지만한의사는맥을짚고혀만봐도알수있잖아요.그런데기공은완전히의식으로상태를보는겁니다.손으로이렇게하는것은사실필요없는동작이고완전히마음으로보는거지요. 내가기공을배운과정은여간힘든게아니었어요.경제적여유도없었고시간을쪼개기도힘이들었죠.중국은땅덩이가하도넓어기공공부하기위해서사흘밤낮을기차를타고가야했거든요.1주일공부를위해1주일을차로달려가야했으니….그러나양의와한의와기공을다해보니그효과를누구보다잘알겠어요.그래서나는의사들이이공부를했으면좋겠다는거예요.양의로안되면한의기술을쓰고그게안되면기공을또같이쓰라는겁니다.종합치료를하면정말빠르고훌륭하게치유되거든요.” “암세포는굶겨야해요” 중국병원에서암치료를할때는단식이포함돼있었다.말기암일때는어쩔수없지만초기진단을받았을때는절대로벽곡(?穀)해야한다는게그의주장이다.실제벽곡으로암환자를여럿치유했다.암에걸렸으니체력을보충해줘야한다고여길지도모르지만소식과벽곡이어느약보다낫다는걸직접경험했다. “암세포는굶겨야해요.반벽곡도있고과일만먹는법도있지요.건강한사람도가끔단식을하면몸이더맑아져요.나는일일일식(一日一食)인데도가끔완전단식을행합니다.에너지는먹는것에서만얻어지는게아니란걸깨달을필요가있어요.” 그에게들은이야기를무슨수로다옮기랴.화가나면그릇에물을떠놓고그저바라보기만해라.물기운이마음의화(火)기운을곧다스려줄것이다.어린아이같은마음을지녀라.불편하거든자기가여섯살인아이(남자는일곱살)라고생각해라!그때의몸과마음의생기와약동을떠올려봐라.인생에대해미소를지어라.남에게항상좋은파동을전하라!이런충고들은되씹을수록주옥같다.굳이고급기공사의입에서나온말이아니라도우리삶에서유념할만한의미가풍부하게담겼다. 오래한국을떠나살던사람이본우리는어떤가.그의대답은이랬다. “뭐랄까,사람을너무‘사용주의’로대해요.필요하면당겼다가필요없으면밀어던져버린달까….중국사람들이텁텁하고수더분하다면여기사람들은너무매끄러워요.물론민족마다장단점이있기는하지만…. 그리고여기사람들은깊이사귈수가없어요.깊은속을안보이고마음이자주변해요.거리가깨끗하고중국에비해공기가맑고도둑도없어처음에는여기가바로천당인가싶었는데….” 그지적은우리를되돌아보게한다.저건우리가일쑤일본사람들을향해내뱉던지적과닮았구나.행복이란게뭔가.건강과죽음과전쟁의의미는또무엇인가.숱한생각을다스리지못한채윤금선선생의집대문을나선다. 서울에는가을이성큼다가왔다.기온이청량하고하늘이높아졌다.우리가전장으로내보냈던인민군소녀는죽지도않았고늙지도않았다.돌아와외려우리에게마음의평화를얘기하며따스하게손을내민다.역시인간으로태어나산다는건그의말처럼‘감사해야할대사건’임에틀림없구나. (끝)
金瑞鈴
●1956년경북안동출생
●경북대국문과졸업
●중앙중교사,‘매일경제’신문·‘샘이깊은물’객원기자
●월간‘동서문학’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