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각(山神閣)의 비밀(秘密)

산신각(山神閣)의비밀(秘密)

-출처:http://www.cheramia.net
-글쓴이:박성수(朴成壽)

1)절에웬단군상인가?

우리나라방방곡곡에불교사찰이있다.
불교가인도에서중국을거쳐한국에들어온지어언2천년이나되었으니불교도이제는한국전통문화의중요한부분을차지하고있다고할수있다.

그러나불교가우리고유의종교가아닌데는의문의여지가없다.
우리의민족고유종교는신교,즉단군교였다.
그래서불교가처음고구려나백제,신라에들어왔을때모진박해를받았다.

왜우리나라절에는山神閣산신각이있는가.
이문제를생각하기에앞서불교에대한민중의반발과위정자들의박해가있었다는사실을상기하여야할것이다.

왜불교와는아무상관이없는산신각이절에있어야하는가.필자가이사실에대해의문을품기시작한것은아주오래전의일이었다.

그때가4월초파일로기억되는데식구들을데리고한탄강에놀러간일이있었다.
아이들이물에서노는사이에필자는강변에작은사찰이있는것을보고찾아갔다.

지은지얼마안되는작은절이었는데오래된고찰이라면꼭있는一柱門일주문도없고사천왕문도보이지않았다.

단지대웅전하나만외롭게서있는아주조촐한절이었다.
대웅전안에서는염불이한창이었는데마이크까지설치하여놓아소리가사방에요란하였다.
그건그렇고그때이상한것을발견하였다.
대웅전앞마당에작은단군상이있는것이아닌가.

단군상은어디서나볼수있는석고상이었다.
그때만해도단군상은길에서상인들이팔고다녔었다.
그래서너무나눈에익은단군상이었는데신도들이여기에도촛불을켜놓고기도를드리고있었던것이다.

절에웬단군상인가.
아무리생각해도납득이안가는장면이었고그때부터산신각에대해유심히보기시작했다.

흔히불교와신교가함께공존공생하는현상을神佛褶合신불습합이라한다.
불교가신교와겹쳤다는뜻인데달리말하면겹옷을입었다는뜻이기도하다.
속에는불교옷을입었는데겉에는신교,즉단군교의옷을걸쳤다는의미이다.

이런현상은역사가오랜나라에서는얼마든지볼수있는일이다.
우리나라의경우태초에신교즉단군교가있었고다음에불교가들어왔다.

이런경우단군이主神주신이되고부처는客神객신즉손님신이되는것이다.
두신은한동안서로힘겨루기를하다가결국에가서는싸움을멈추고서로손을잡고공존공생하기로결심한다.
이것을신불습합이라하는것이다.
절에단군상을모셔놓은것이바로신불습합의좋은사례이다.

대웅전이란이름도한국에만있는명칭인데그어원을따져보면환웅전이대웅전이되었다는것이다.
환웅은단군의아버지요천신인환인의아들이다.
이삼신을믿고살아온우리에게손님신인부처가들어와서자리를빼앗았으니이름이라도한(환)웅전으로살려주겠다는것이었다.
한(환)은크다는뜻이니이를큰대자를써서대웅전이라한것이다.

그러나
아무리두종교가습합했다고는하나대등한것이아니어서주객이전도되고말았다.
손님인부처가대웅전을차지하고주신인단군이앞마당노천에서비바람을맞게되었으니민망하기짝이없는것이다.

2)산신각은삼신각이다.

물론나중에안일이지만한탄강에서본절에왜단군상이모셔져있었는가하면아직산신각을지을돈이없어서임시로단군상을모셔놓았던것이다.
그러나단군이곧산신이라고생각한절의주지에게잘못은없었다.
왜냐하면"단군=산신이다"는생각은불교에서이미오래전부터통념화되어왔기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절에반드시산신각이있어야하는것으로되어있다.
"산신각이없는절은절이아니다"고할정도로산신각은절의필수시설이었다.

박정희시대의이야기인데당시권력의핵심부에있던이후락이전국불교평신도회장직을맡고있으면서엉뚱하게도절의산신각을철거해버리자는운동을벌였다가신도들의맹렬한반대운동에부딪쳐서좌절했을뿐아니라회장직마저잃게된웃지못할대사건이있었다.

가엽게도이후락은산신각이없는절은한국의절이아니라는원칙을몰랐던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절이먼저있었던것이아니라산신각이먼저있었던것이다.
산신각은우리불교와같이일본땅에도건너갔는데그대표적인것이일본대진이라는도시의"신라의숲"속에있는新羅善神堂신라선신당이다.
이당집은일본最古의건물로국보로지정되어있다.

일연의<삼국유사>를보면우리나라는방방곡곡에당집으로가득차있었는데불교가들어오더니당집을헐어절을지었다는사실,그리고당집을헐었더니땅속에서황금이쏟아져나왔는데그돈으로절을지었다는등등의기사가보인다.

또같은<삼국유사>에보면절에원인모를화재가자주일어나고있다는기사가보인다.

이역시단군을모신자리에절을짓고부처를모신데대한민중의앙갚음이었던것이다.
이런기사들을보더라도불교가우리나라에처음유입되었을때神佛相爭신불상쟁의비극을일으켰던것을알수있다.
목을잘렸다는순교자異次頓이차돈의이야기는신불상쟁의대표적인참극이라할수있다.

필자가전국의산신각을찾아서먼저경상북도김천의直指寺직지사를찾아갔을때도아도화상의억울한죽음에대한이야기를들었다.

고구려에서신라에와서처음불교를전한분이阿道和尙아도화상이었는데그는병으로죽어가는신라의공주를살려놓고왕의신임을듬뿍받았음에도불구하고불교를배척하는여러신하들의모함을받아직지사에서멀지않는선산으로낙향하여끝내는자진하였다는것이다.

그런아도화상이생전에손가락으로이곳을가리키며직지사를지어라하였다는것이니김천직지사는신불상쟁의아픔을참고탄생한절이요그안의산신각역시종교전쟁이낳은귀중한옥동자라할수있다.

그래서그런지직지사에는한국최고의걸작품으로알려진山神圖산신도가있다.
김천직지사에는또한한국제일의탱화(부처님초상화)가있었다.

필자가영국런던의大英博物館에갔을때이국보급탱화가전시장밖의복도로밀려나가계단벽에걸려있는것을보고분통을터뜨린일이있었다.
이탱화는엄청나게컸다.
벽전면을덮는아주큰대형작품이었다.

분하기짝이없는일이었으나언젠가는이부처님도고국에돌아오리라생각하면서자위할수밖에없었다.

도대체남의나라국보급보물을잔뜩훔쳐다가자기물건인양박물관에전시하는뻔뻔스러운나라들이있는데이런나라를온전한나라라고할수있는가.

3)산신의수염은검어야한다.

막상직지사에들어가보니산신각문이굳게잠겨있었다.

그러니승방을찾아갈수밖에없었다.공교롭게주지스님이출타중이시라대신젊은學僧학승이나와서공손히인사를나눈뒤산신각문을열어주었다.

직지사의산신각은담으로둘러쌓여있어절본채와분리되어있는것이특색이었다.
다른절에서는산신각이따로있지않고경내에같이있다.

그런데직지사의산신각은절의여러건물과는담을쌓고독립해있는것이다.
말하자면독채를쓰고있는셈이다.

그런산신각에어렵게시리들어가니먼저삼성각이라쓴액자가보였다.
산신각이라쓰여있지않고三聖閣삼성각이라쓴것도특이하였다.
필자는그때즉각산신각의원명이三神閣삼신각이구나하는느낌을받았다.

聖과神사이에는생과사를가르는선이그어져있다.
성은이승의인간으로서최고의존칭이다.
가령공자를가리켜성인이라한다.

그러나신은성인과는차원을달리하는존재에대한칭호이다.
직지사에서산신각주인을삼성이라한것은단군을의도적으로낮추어부른호칭이라고도볼수있으나다른한편단군을신이아닌인간으로본탁견이라고도할수있다.

삼성각안에는유명한산신도가보였다.
우리나라에서가장잘그렸다는산신도라고하니약간긴장감을느끼며감상하였다.
먼저얼굴을보니수염이검어서좋았다.

다른절의산신도를보면산신의수염이허옇게백발이다.
잘못된것이다.
흰수염은중국의도교에물든사이비산신도이다.
산신무릎에안기듯이바짝붙은호랑이역시위엄이있어좋았다.

호랑이그림은그생명이눈에있다.
직지사산신도의호랑이눈은상대를노려보는것이무섭다.
눈빛이살아있는것이다.
산신의뒤에는늙은소나무가가지를늘어뜨리고있는데이또한수작이다.
이노송이다름아닌환웅이태백산에내려와서神市신시를열었고또그곳에서웅녀를만나단군을낳았다는神檀樹신단수인것이다.

신단수옆에는불로초를달여서산신에게갖다바치는선녀두사람이보인다.

산신도를감상한뒤다른한쪽벽에걸린그림을보고"이분이누구신가요"라고학승에게물었다.

"이분은那般尊者나반존자이십니다.나반은天神인데산신은地神이십니다."고학승이대답했다.

산신이단군이라면당연히천신이아니라人神즉임금이시다.
단군의아버지인환웅은천신인환웅의아들로서지상에내려왔으므로환인은지신이다.

나반은아바이즉아버지라는우리나라함경도사투리를한자로음역한낱말이다.
그아내가阿曼尊者아만존자인데이분또한어머니의함경도방언오마니라는소리를한자로바꾼것이다.

따라서나반은환웅이요아만은웅녀요산신은단군인것이다.

4)산신당의나라,한국

우리나라를가리켜서산신당의나라라했다.불교가들어오고유교가들어온뒤에도마을마다산신당이있고신단수가서있는농촌풍경은전혀바뀌지않았다.

오히려더많아졌다.
정월당산제,2월영둥제,6월농신제,10월告祀고사등모든연중행사는단군이래의오랜역사를가지고있어아무리나라에서금지하여도사라지지않는우리민족문화의핵심이었다.

모든축제는산신을불러내리는降神강신행사에서시작된다.
산신은본시天神이어서마치환웅이그랬듯이먼저하늘과가장가까운큰산에내리신다.

백두산,묘향산,구월산,금강산,치악산,오대산,태백산,지리산,한라산등팔도의모든명산에서강신제를올린다.고을마다鎭山진산이있는데이들작은산에도신이내린다.

이렇게지상에내린하늘님(우리는본시그렇게불렀다)은모든마을에풍년이들고가정에는질병이없는행복한새해가될것을약속했던것이다.

이같은우리문화에대해서는중국과한국그리고일본의여러문헌에서확인되고있다.
하늘님을부르는데중국인들은술로서대접한다.
그러나우리는’굿’으로신을흥겹게하여드리면서모셨다.

일본에진출한우리조상들도똑같이굿으로신을모셨다.
굿은우리문화의핵심이다.
그러나신을부르지않고신이내리지않는요즘의굿은죽은굿이다.

영국의유명한등산가가"거기산이있기때문에산에오른다"고했다.
우리는그런맹목적인산행은하지않았다.
산에는우리의산신이계시기에그분을뵙고자산에올랐다.

그래서산에서는반드시근신했고술마시고고함을지르는따위의불경행위는삼가하였다.
지금우리산신께서는노하고계신다.
절의산신령도함께노여움을참지못하고계신다.
그리고멀지않는장래에무서운재앙을받으리라고경고하고있는것이다.

(완)

(그림자료)무늬호랑이를부리는군자의나라동이족삼신각탱화(버클리도서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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