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나치독일 군가 릴리 마를린
BY orullee ON 4. 28, 2009
(수정중실수로삭제가되여다시복구했습니다)
2차대전중북아프리카에서사막의여우나치독일의
롬멜장군과대치하고있든영국군전차병들이한낮의살인적이
더위가식어가는밤9시55분이닥아오면서라디오주위에
한둘씩모여들기시작했다.
이때영문을모르는한병사가큰소리로무슨일이있냐고
묻자한상사가손으로자신의입에검지손가락을대면서
조용히하라고했다.영문을모르는병사는입을다물고둥글게
모래위에모여앉아숨을죽이며라디오에귀를기울리는
전차병들사이에끼어들어잠시기다리자젊은여인이
독일어로부르는노래가직직거리는잡음과함께흘러
나오기시작했다.
무슨뜻인지는이해를할수가없었으나그선율은자신이
이세상에태어나서처음들어보는가장아름다운음악이
었다.영국군전차병들이이해를할수없는독일어로
부르는그노래는"가로등이환하게밝혀진병영의정문앞에.."
로시작되는이군가의이름은릴리마를린이었다.
군가릴리마를린(LiliMarleen)은이차대전중독일군이처음
사용하기시작했으나전쟁의막바지때는적군과아군의
구별없이2차자대전에참전한모든병사들이다함께가장
즐겨부르고듣던군가로세계전쟁사를통해서유래가없는
일이었고또인류역사사상가장인기가있었든전설적인
군가가되였다.
맥주잔에피어오르는거품같은독일인의낭만은군복에서도
느낄수있다.
릴리마를린포스터
나치독일군가릴리마를린의탄생은세계1차대전때독일제국
군대에징집되여참전한독일병사HansLeip(1893-1983)가
자신의여친과다른한여인의이름을합처사용해시릴리
마를린이태어났다.
이시는"DasLiedeinesjungenSoldatenaufder
Wacht"("TheSongofaYoungSoldieronWatch"
젊은초병의노래)로1937년출판되였다.일년후,
1938년NorbertSchultze의작곡으로새롭게태어났다.
HansLeip이쓴최초의시이름은"DasMädchenunterder
Laterne"(Germanfor"thegirlunderthelantern"
기로등아래서있는여인),그러나1939년레일앤더슨이
처음음반을취입한후릴리마를린이라는이름으로("LiliMarleen")
유명해졌다.
릴리마를린이유명한계기가된이유는1942년벨그라드를
점령한독일군은지중해연안제국과유럽까지가시청지역인
SoldatensenderBelgrad(벨그라드병사의방송국)을개설하면서였다.
벨그라드방속국에근무하는한소위가1941년,비엔나로
휴가를떠날때방송국으로부터방송에사용할레코드판을
오라는부탁을받았다.
소위는휴가중중고레코드판상점을뒤져그당시700여장
팔린레일앤더슨이취입한지2년된레코드판을구입해
들고방송국으로돌아왔다.쓸만한음반이별로없었든
벨그라드병사의방송은릴리마를린을자주내보냈다.
릴리마를린이전파를타자나치선전상이었든조셉
궤벨은병사들의사기를저해한다는이유를들어릴리마를린의
방송을금하는명령을내렸다.릴리마를린의방송이중단되자
유럽각지역에주둔한독일병사들이방송국으로릴리마를린의
재방송요청이쇄도했다.
이들과함께독일군아프리카군단장이었던롬멜장군도
릴리마를린의방송을요청하자나치선전상궤벨도어쩔수
없이방송을허락하면서이때부터릴리마를린은밤9시55분에
방송이끝나는씨그널음악으로전유럽에다시전파를타기시작했다.
릴리마를린을애청한나치독일아프리카군단장어윈롬멜장군
놀만디작전이성공한후연합군은릴리마를린에자신들의
가사를붙여"theD-DayDodgerssong"으로편곡해불렀다.
최초의영변릴리마를린의음반취입은AnneShelton’s,로
알려졌고1040년대독일출신MarleneDietrich가영어와
독일어로음반을취입해미군들은그녀가부른릴리마를린을
가장좋아했다.일설에는그녀가독일어로부른릴리
마를린을방송해연합군이독일군의사기를저하시키려
했다고주장하나독일군이먼저방송을한릴리마를린으로
독일군의사기를저하시키려했다는설은터무니
없는낭설에불과하다.
릴리마를린의애잔한선율속에서이글을쓸때아련한
나의릴리마를린이기억속에서되살아나기시작했다.
월남으로떠나기일주일전,마지막으로쌘프란시크코를
다녀오는버스에서옆좌석에앉은중년여인나에게말을
걸어왔다.
묻는데로대답을하다가보니이여인은동부택사스
주에서캘리포니아에사는친척을방문하는길이었다.일주일
후면월남으로떠난다는말을들은이여인은연인이
있냐고물었다.
나에겐이곳에가족도없고연인도없고오직나혼자라고
하자월남에가면편지를해줄연인이없어서외롭겠다는
말을하면서자신의딸과편지를나누며월남에있는동안
친구를해보라고권했다.몇살이냐고묻자16섯살의고등학생
이라고했다.
20대중반을넘은내가어린애와무슨말을나눌수있냐고
하자,그래도그녀는없는것보다는낳지안겠냐면서사양을
해도자신의딸이병명도없이많이아파일년에학교를
6개월정도쉰다고하면서딸의이름과주소를적어서주었다.
친절을안받을수도없고해서주소를받아지갑에넣고
월남으로떠났다.월남에서몇개월이지난어느날,지갑을
뒤지자그동안까맣게잊고있었든16세여고생의이름과
주소가적혀있는메모지를발견했다.
편지한장해주는연인이없었든나는위문편지라도받으려고
편지를당장썻다.몇주후,지금은이름도잊은그소녀로
부터답장과함께사진이한장왔다.
그녀는은발에파란눈을가진병약해보이는가냘픈몸매를
가진소녀였다.몇번편지를주고받고오팔목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