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이끝나고나서북으로도주하지못한인민군과동조세력들이지리산으로
들어갔다.그들이빨치산이다."장백산줄기줄기피어린자욱"으로시작되는빨치산
가는초등학교2학년때피난지학교에서인민군들이어린우리들에게가르친첫
곡이었다.동네마다김일성의초상과탱크가인쇄된포스터가붙어있었으나
포스터에어떤슬러건이인쇄되여있었는지는기억이없다.
어린나이에도부르면부를수록뭔가어린가슴에재미가있는느낌이들어몇십년의세월이
흘러갔어도빨치산가가사는잊혀지지않고아직도기억에생생하게남아있다.휴전이되자
부친은공군문관이되여공군이노획한이민군군용차량을이용해후생사업이라는
운수업에손을대셧다.
후생사업이란한국군대에서군용차량을이용해운수업을하면서부수입을올리는
일종의알바였다.아버님이후생사업에사용한차는소련제Zil-151모델의인민군
군용트럭이었다.이트럭은미국의Studbaker를개량한모델로쌀을40가마싣고
언덕을거침없이올라갈정도로힘이좋아미제2톤반트럭의능력을능가하는힘을
가졌다.
페차수준으로전락한질트럭을정비소에서한달간정비를하고나자어린내눈에도
거대한새차처럼보였다.
미국의한수집가가소장한소련군용트럭Zil-151모델
이차로운수업을하시든부친에게코메디같은일이발생했다.짐을싣고지리산어느계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