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4일,한옥사진을찍기위해전주한옥마을을갔다.조선조이태조를모신경기전과
이경기전을관리하고제사를지내는제물을만들든부속건물을둘러보며사진을찍었다.
이사진도광각렌즈를사용해실물보다크게보인다.
경기전을관리하며제물을준비하든부속건물전경
경기전을관리하고제물을준비하는부속건물로들어가는입구
제물을준비하는건물
우물
제물을준비하는건물로들어가는문
조선조태조이성계의어진을모신경기전
어진을모신건물의단청,창문안에태조이성계의어진이모셔저있다.
크로스업한단청
경기전왼편쪽건물에는몇명의조선조왕들의어진이모셔저있다.그중에나의눈길을
끄는왕은바로강화도령이원범철종의어진이었다.궁에서강화도령이원범을모시러
간관리들이그의집에도착하자이원범은자신에게사약을가지고온관리로착각하고
마니산으로숨어들어가삼일이지나서야그를모시러간관리들의설득으로한양으로
가서왕위에올랐다.
자식이왕족으로모반이라는누명을쓰고사약을받고죽는것을원치않았든부모의
원대로그는살아남아왕위에까지올랐으나아이러니하게도철종은바로무식해서왕위에
오를수있었다.기막힌그의운명은왕위에올라서수많은궁녀들과무질제한성생활로
젊은나이에요절을하면서안동김씨의세도정치로국운이기울어진조선에대원군이
등장하면서며느리인민비와권력다툼으로회생의기회를놓친조선은결국일본의
식민지로전락했다.
경기전을들러보고뒤길로가자그곳에는뜻박에혼불의저자최명희의기념관이있었다.
2006년고향방문때친기가선물로사준"혼블"을읽으며그녀의작품속으로흠뻑빠져들어
지금도시간이날때마다집에서읽고있다.너무나반가웠다.전주가혼불의저자최명희
의고향이라는사실도처음알았다.
"혼불"이란살아있는인간이가진혼의불로파란색이다.이혼불이육체에서
꺼지는순간인간은3일아니면길면3개월내에죽는다.기를볼수있는
능력이있는사람들의눈에보인다는인간의몸에서발산되는광배와는다른혼의불이다.
"혼불"은박경리의토지와비교되는대하소설로전주매안이씨3대종부들이양반집안의
채통을지키려며살아가는삶의이야기로그당시사회단면을그려낸역작이다.
일본식민지기간일본인을본기억이라고는1945년8월15일일본이무조건항복하면서
일본인들이한국인어린이를일본도로살해한다는소문이나돌아8월15일밤,2년
7개월이됀나와크고작은사촌들10여명이함께마차를타고피난길에올랐다.
마부는사촌들과내가탄마차위를볏집더미로덮어마치마차는집더미를싣고가는
마차처럼위장하고마차가철길을건널때집더미사이로손에땀을쥐고내가본
일본군인은집총자세로건널목을지키며서있는일본군이내가본유일한일본인의
모습이다.
그런나에게최명희의혼불은구한말과일제식민지치하에서조선인들이만주를오가며,
반가의전통과체면을지켜며어떻게살아갔는지를볼수있는삶의이야기들로,1945년
8월15일이라는장벽을넘어그전시절과나를연결해주는연결고리역활을해주고
있다.
양반가의법도를지키며,체통과체면을지키며살아가는3대종부들과등장하는인물들을
통해그당시호남지방의전통적인풍습과혼례와상례,언어,민요,복식등호남지방의모든
풍속을총망라한내용들을발굴해서10권의대하소설로옮긴최명희의혼불은자신의
혼불을장작처럼훨훨태워한덩이재가될때까지쓴역작이다.
최명희기념관두건물사이를연결하는회랑
대둘보에매달린등불은마치혼불의작가최명희혼이불을밝히고있는것처럼느껴졌다
진열된혼불의원고지에서등장인물들이나여기있소하며당장이라도소리치며
튀어나올것처럼느껴진다.
최명희의기념관을나와전주한옥마을로가자"대한황실승광재"라는간판이
보였다.대한제국의황손이석씨가살고있는집을알리는안내문이다.
승광재간판뒤쪽이골목길끝에승광재의대문이보인다.
승광재대문
대문안에는단풍나무잎이붉은색으로곱개물들은체아직도가을을간직하고서있었다
황손이석씨가살고있는승광재,안내원에게이석씨를만날수있냐고묻자그녀는
예약을해야만그를만날수있다고했다.안내원의말이떨어지는순간노무현전
대통령이생각났다.
봉하마을에서찾아오는방문객들을하루에몇변씩만나인사를하고대화를
나누며살든전직대통령과는달리대한제국황손이석씨는황족답게일반인들과
거리를두고있었다.
그런이석씨가나에게는좀거만하고미련하게보였다.민중과거리를좁히며
민중에게다가가야이석씨나다른황족들이원하는황실의부활이야기도나눠야
국민들로부터공감을얻을텐데말이다.
그래서이석씨와사진한컷찍으려던꿈은깨졌다.
북촌한옥마을사진을찍었으나아직까지올리지않고있는이유는변형이심해서다.
그래서전주한옥마을을찾아가북촌과비교해보니,이황토흙토담에서보듯그런대로
제모습들을많이간직하고있었다.한옥둘레의담장은토담이어야제멋이있다.
바른쪽앞의토담은인부가방금황토흙을발라손질을한것처럼수리를한
흔적이,이한옥에는사람이살고있다는말을대변하고있었다.
한옥의황토담장이야말로한옥과가장잘어울리는담장이라는말을대변이라도하듯
한옥에대한멋과맛을뚝뚝쏫아내며서서나를반기는이한옥이야말로내가내아내를만나
유혹할때,나와결혼해준다면,돈을많이벌어서그대에게윗사진과같은기와집을
지어주겠다고굳게약속을했건만….결혼후몇십년이지나도고향에는아직땅한평,
초가집한칸없으니….
결혼전약속을지키라고호통을치치않는아내가고맙기만하다…
이집황토흙담장은윗담장보다한껏멋을낸담장이다
뒷담장믿에옹기종기모여있는항아리들이한옥의멋을더해주고있다.
이집의담장은토담이아닌벽돌담장이다.
잔주한옥마을의한쪽인도는물이흐르고있었다.세심한벼려가있었다는증거다.
물이흐르는인도옆에는이렇게아름다운조경도있었다.
금강산도식후경이라고햇겠다.오후4시가지나자배가곱았다.한옥마을주민들에게
전주에서제일우몀한비빕밤집이어디냐고묻자다이집을카르겨주었다.이식당
이름이아마종로뭐라고했는데잊었다.
식당으로들어가메뉴를보고놀랐다.비빔밥보통5-6천정도로알고있는데…비빔밥
만원이러고메뉴판에적혀있었다.은퇴한미육군부사관이팔자에없는만원짜리비빔
밥을시키고기다리자먼저반찬이줄줄이상위에올라왔다.
그중에생굴이올라와놀랐고또맨나중에올라온비빔밥위에창란젓을듬뿍올려
놀랐으나그것은창란젓이아닌육회였다.한마디로정성이담긴반찬과비빔밥은
맛도일품이어서비빔밥한그릇에만원이아깝지가않았다.
전주에도착하자마자아랑낭자가먼저와서기다리고있었다.
서부의사나이에게천년전의신라의상을입은아랑낭자는너무
대조적이었다.
그래서이렇게한컷찍어보니아랑낭자의의상이별로시대에
뒤떨어지지않는다는사실을사진을통해발견했다.
신라인들의시대를뛰어넘는의상디자인이빛나는순간이었다.
식사를끝낸아랑낭자는다시염라대왕의명을받고급히
돌아가자이노병은홀로버스터미널로택시를타고가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