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명동백작”에서 만난 사람들
2004년에제작한드라마명동백작을요즘미국EBS방송에서재방영을하고있다.
6.25전쟁후문인들과영화인그리고연극인들이명동을무대로
가난하고암울한시대를어떻게살았는지를볼수있는드라마명동백작은그당시
어린초등생이었든내가격지못한미지의세계로타임머신을타고빨려들어가듯
매일밤잠을설치고드라마를보고있다..


왼쪽은명동백작이봉구.바른쪽은나레이터정보석

가난한예술인들이펼치는삶과낭만과우정,가난한그들이마음놓고차를 마시며,술을마실수있었든이유는이들에게인정을베픈명동의이웃들이있었기 때문이다.명동을찾아오는문인들이좋아50년대중엽술집을열고70년대초까지외상으로문인들에게 술을팔았든주점은성의주인은최불암의어머님이였다. 최불암은어미니가돌아가시고주점에서외상장부를찾아들고외상값다받으면 부자가될것이라고생각했으나그의꿈은외상장부를여는순간물거품이되고말았다. 고객의체면을배려한최불암의어머님은고객의이름을모두암호로기록했기 때문이었다.드라마를통해서천재화가이중섭이왜죽었는지를알고가슴이저려온다. 가족도없고집도없이청동다방에자리잡고앉아줄담배를피우며,문인들의대부같았든시인공초오상순선생에게명동백작이봉구가선생님왜결혼을하지않으셨습니까?하고묻자공초오상순선생은저세상으로갈때가족에게짐이될것같아결혼 을하지않았다는대답을했다.무소유를주장하며,호강하다가올해초죽은어떤 스님과비교해보면공초오상순선생이야말로진정한무소유를몸으로 실천하시다죽은존경받아야될시인이다.

50년대가난한문인들이명동에서방황할때가난한내이웃들은배고픔을

이기지못해미군부대에서나온쓰레기음식찌꺼기를반을자른드럼통에끓여

파는꿀꿀이죽으로연명을하는사람들이많았었다.

배고픔을이기기위해등지고떠나온고향,돼지먹이꿀꿀이죽을

먹어야했든이웃들을위해내가해줄수있은것은무능한

정치인들이나,명동을방황하든문인들처럼아무것도없었다.지금도그때를

생각하면무능했든모두에게분노가치밀어올라와다시는고향을찾지않으려고

나는자식들에게모국어도가르치져주지않았다.

그렇게미워했든그고향이세월이흐르면서그립다.올가을에는그고향을

찾아가지못해사랑하든고향에게실연한사람처럼고향의추억을더듬으며,

뒷뜰감나무아래서서쪽하늘바라보며,공초오상순선생처럼한밤중줄담배를

피운다.

아침부터담배두갑이상을태우자목은견디지못하고부어오르며아픔을

호소한다.먹다남은항생제두알을입에털어넣고식은커피를마시며,

담배에다시불을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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