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8월15일,나는2살반을넘어가고있을때일본이무조건항복을했다.
그날밤,떠도는소문에왜왕이항복하자분을이기지못한왜인들이일본도를
들고사정없이한국어린애들을죽인다는소문에아버님형제들이5명의자식들을
마차에태워경기도소래면으로피신을시키기로했다.
마차에4촌들과타고그위를볏집으로덮어짐처럼위장을하고영등포역근처에서
마차가철로건널목을지나갈때,떠들면죽는다는큰사촌형님의말에숨을죽이고
공포에떨며,마차위에짐을싣기위해나무로설치된직사각형의짐싯는칸
나무사이로밖을볼때,철로건널목에는전등불이대낮처럼밝게비치고건늘목
초소에는대검을꼿은총으로무장한일본군인이집총자세로서있었다.
그일본군인이내기억에남은유일한일본인의모습으로남아있다.그래서한국이
해방을맏았을때그당시의모습은어땠는지,항상궁금증을풀지못하다검색을하다
타임캡술에숨겨저있든그당시의생생한사진들이담겨있는아래사진들을찾았다.
아래사진들은미군종포토저널리스트인DonO"Brien이1945-46년한국에일본군
무장해재를위해한국에진주한미군과함께한국으로와서찍은사진들이다.
한국노인과사진작가O’Brien
일본오키나와에서한국으로출발전미통신대.찦차앞범퍼에세워저있는도구는찰조망을자르는
장비.
유럽에서기록사진을촬영하든미통신부대(미군은통신부대가기록사진을찍는업무를
담딩한다)는히틀러의패망으로배를타고58일간의긴항해끝에유럽의반대쪽에있는
오키나와에도착했다.일본이항복을하고그해9월이들은오키나와에서배를타고
일본군의무장해제를위해상륙하는미군과함께인천에상륙했다.
인천항에도착한기록사진요원들과그들이사용하는장비.
악의가없는천사같이선한어린아이의눈을가진이노인이정말내마음을사로
잡는다.
마치나를보시면서,오를리나좀보게,나는말일세,평생어떤누구에게도페를
끼치지않고대쪽같이정직하게만살아왔다네,라고말씀하시는것처럼내가슴에
와닿는다.
한강에서배한척이물살을가르며평화로운모습으로어디론가향해가고있다.
핵폭탄두발을맞고항복한일본에서귀국한동포들의모습.나는이들이어떤모습으로
귀국을했는지항상굼금했다.
해방직후,아버님친구도일본에서돌아왔으나그들은고위직에있었는지비행기를
타고여의도비행장에서내렸을정도로일본에서잘살았었다.이야기는1960년초,아버님
친구들이모여서식사를할때직접그분으로부터들은이야기다.그래도감이잡히지않았으나
윗사진을보면서그들이어떤모습으로어떤옷을입고돌아왔는지상상을할수가있게
되였다.
서울에서구걸을하는걸인의모습.
무슨사연으로이렇게거리에나앉아구걸을하실까?왜인들에게가지고있든
농토를다빼앗기고가족이뿔뿔이헤어저서였을까?아니면독립운동을하시든
부친이왜경에잡혀갖은고문을당하시다가사랑하는가족을남겨두시고
저세상으로떠나시자남은가족이고초를격다가혼자되셨을까?애절한모습에
몸둘바를모들정도로가슴아픈사연을무언으로전하시는아주머니의
애처로운모습에가슴이저려온다.
일본군무장해재를위해진주한연합군환영행진.이들이신은군화와복장이
아마일본군의군복이아닐가하는추정을해본다.
일본군의무장해제를위해38선이북에진추한소련군인들과DonO’brien.이북에서남으로
피난을온사람들로부터6.25전쟁휴전후이들이저지른만행을정말많이들어서
나는어릴때이들이괴물같이생겼을지도모른다는생각을했었다.
북한에진주한많은소련군인들이형무소에같여있든죄수들도섞여있엇다는사실을
나이들어문서를검색해서알게되였다.평양에서피난온연세많은이웃으로부터
소련어로다와이(내놔),호로쇼(좋다),다다(yse),니엣(No)라는말을배웟을정도로나는
수많은소련군의만행을들으며자랐다.북한에서는소련군을통칭해서로스케로
불렀다.
v
사진작가DonO’brien의집차앞에서사진을찍은로스케.
내가들은소련군의만행한토막,시계를가져보지못했든소련군은길에서서지나가는
행인들의팔을검사해서차고있는시계를모조리뺏어서자신의양팔에차고다니다가
태엽을감을지몰라작동하지않는시계는버렸다고했다.
밀기울이나곡물껍질로만든검은빵을가지고다니며,베개로이용해잠잘때사용하다가
배가곺으면비고있는검은빵을뜯어먹으며,영하30도의한겨울에도철길에서철로를베고
잠을잔다는북한에진주한소련군들의모습.군표(점령지에주둔한군대가발행하는돈으로
현지에서만통용이가능하다)를찍어들고다니며가위로잘라가며사용한소련군의영향으로
북한경제에큰혼동을주기까지했다.내가상상했든괴물의모습못지않게이들에게서
야비함과잔인함마져느껴진다.
DonO’brien이소련군을만나러가위해서38선을향해가다철로에서있는일본군의
장갑으로무장한열차를발견하고사진을촬영했다.상륙하는미군에대항하기위해
특별제작한장갑열차의모습이다.
v
장갑열차를끄는장갑증기기관차의위용.일본군이열차까지장갑을입혔다는사실은그들이
일본열도와한반도에서최후의순간까지미군과의결전을준비하고있었다는사실을보여주고있다.
미국이원자탄을개발하지못했다면일본열도와한반도에서수많은미군과민간인들피를흘리는인명
피해는피할수없었을것이다.생각만해도끔찍하다.
JohnRHodge미육군중장.남한을통치하는군정장관하지중장이배를타고
인천항으로들어오는모습이다.
일장기를내리는모습을지켜보는미군
중앙청에서항복문서에서명하는일본총독
중앙청에있는행사장을찍은천연색사진
1946년귀국한이승만대통령환영행사
군정장관하지중장에게화환을증정하는소녀들
서울근교에있는작은기차역.사진을찍은오브라인은아름다운역사에매료되였다고했으나
서울근교어디에이런역사가있었는지는알수가없다.
이승만전대통령환영행사
36년간일제의만행에지친모습을지닌노인
시가행진을지켜보는서울시민들의모습.내부모님세대들의모습이보인다.
담뱃대를물고구경하는짚신을신은노인
연합군환영가두행진을하는보이스카웃과구경하는시민들
강원도동해안에서찍은사진에서보이는노인은눈길에서비록집신을신고,
여기저기기은두루마기를입었으나,이분의눈에서발산하는섬득할정도로
무서운눈빛은누구도범접할수없는위엄을보이며,일제에압제에도끄떡없이버텨낸
무서운저항력을간직한강한기가느껴진다.
서울의시장
하지중장과서있는이한국인은키가미국인과같다.집회에서통역을하시는
분은영국유학을다녀온장택상씨.
하지장군이남긴일화가있다.그내용은한국에식량이부족하다는보고를받자
장군은,계란을먹으면되지않느냐는말을해서현실을무시한(현실을몰라서)
말로오랫동안한국사회에회자되였든말을남겼다.
눈길을걷는농부
한국철도종사자들교육용자료를만들기위해한강철교를촬영하는오브라이엔
물통을머리에이고있는여인.한국어머니의당당한모습이보이는이한장의
사진에서한국어머니들의공통분모인자식을위해서러면어떤희생과역경도이겨내는한국
어머니의위대한사랑이느껴진다.
만4년간남태평양에서운행했든고물이되여가는C47미군수송기.화물과승객을동시에수송하는
이화물기는한국에서미군의수송업무를당당하기위해배치되였다.
젊은어머니와자식
부산에서서울을향해가는객차.회물칸을개조해승객을운송했다.
풍경
사과를승객들에게파는상인
일본에서귀국한할머니와손주
일본에서귀국한가족
절구질하는소녀
똥짱군을이용해밭에인분을뿌리는농부.서울근교와경기도지방에서는물통처럼생긴통두개에인분을
담아물지개로지고다녀서윗사진은서울근교가아닌남쪽지방에서나볼수있었든모습이다.
사진작가의찦자를타고있는농부
연합군환영현수막걸린건물앞을여유롭게유유히지나가는마차행렬.광복후의서울은현재와달리
일본처럼차량은왼쪽통행이었다.
작가는이사진의주인공이남자인지여자인지를구분하지못했으나내가보는사진속의인물은
여자가틀림없어보인다.
널뛰는소녀들
이노신사가목에걸치고있는털목도리는개털목도리가틀림없다.일제는만주지방에주둔한
왜병들의겨울철옷을만들기위해묶여있지않고떠돌아다니는길개를잡을수있는권한을많은
사람들에게주었다.이들은일명개백정으로불리며,전국을돌아다니며개를잡아고기는먹거나
팔고가죽은일본정부에바쳤다.개털이나가죽으로만든겨울목도리는육이오전쟁중에도주로
만주지방에서내려온동포들이많이들사용했다.
한국언론사진가지들
신탁통치반대격문
무엇을위한행사인지는알수없으나성조기를든것으로보아미군환영행사장처럼보인다.
축구선수들
행사장을경비하는미군
남대문과전차
서울의홍등가.영문으로미군의출입을금지하는팻말이붇어있고뒷쪽에미군헌병도보인다.
작고한배우김승호의영화마부를생각나게하는조랑말이끄는마차와마부
어릴때기억에남는것중의하나가인력거다.서울어디에서나볼수있었든인력거,어머님과함께
타기도했든이인력거는육이오전쟁수복후서울로돌아오자자취도없이사라져버러어린나에게
굼금중을불러일으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