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빅토리아여왕시대(1837-1901)는산업혁명을거치며경제발전을이룩한영국은전세계
식민지에서착취로부를쌓아,대영제국은지구상에서해질날이없다는말로위세를떨치며,
대영제국은개국이후전성기로접어들었다.
빅토리아여왕
워싱턴카운티에$380,000여불에매물로나온빅토리아시대주택
빅토리아시대를대표하는건축양식도일반주택과공공건물,밎교회건물에
복고고딕(Neo-Ghotic)양식으로나타났다.
빅토리아시대의가구도둑특한형태로나타났다.
빅토리아여왕시대변천하는패션
여인들의패션
티파티를즐기는빅토리아시대여인들
남자들의패션
우리의속담에등따듯하고배부르면딴짓한다는말이있다.전세게에식민지를가진
대영제국은섬나라영국의백배도넘는인도를정복해식민지로만들어인도인들의
피와땀으로생산한차를홀짝거리며마시다무료함을달래기위해식민지(1876년
영국의보호령이된이짚트는식민지와별차이가없었다)이짚트에서들여온미이라를
주목하기시작했다.
등따듯하고배가부른선남선녀들을위해호탤이나클럽에서파티후에
미이라를싸고있는천벗기기광고를내면아무리참가비가비싸도선남선녀들이
구름처럼모여들었다.
파티에참석한선남선녀들이주최측이제공한식사를마치고거나하게한잔한후,
긴테이불위에놓여있는미이라앞으로모여들어숨을죽이고미이라를벗기는
사람의손놀림을주시할때,2천년을넘은미이라를감은천은무참하게벗겨지면서,
미이라가슴안에서어떤부장품이나올것인가를숨죽이며지켜보기를즐겼다.미국에서도
그당시영국과함꼐파티후미이라벗기기가유행했었다.
빅토리아시대를복고고딕시대로도표현하는영국에서파티를끝내고미이라를
벗기는행위는멋있(Cool)는행위로여겼다.
1800년대이짚트에서는길가에서노점상들이미이라를
놓고팔았다.고대이짚트에서미이라를만든이유는사람이
사후구천을떠도는영혼의머물곳을위해그당시사람들은자신이
죽은후육체를미이라로만들기를원했다.고대이짚트인들이남긴
미이라는대략3천만개정도로추산하고있으나현재도계속발굴되고있어서
정확한미이라의숫자는아무도예견할수가없디.
유색인종은그당시나지금이나미개인으로취급하며,자신들은신의선택받은
인종으로거들먹거리는구미백인들이미이라를벗기는것으로는만족하지않고,
그들은이짚트의고대미이라를수입해분쇄한후가루로만들어관절과혈약순환
밎장수의명약으로복용했다.유색인종과그들의문화를비하하며거드름을피우든
구미의백인들이미이라를만병통치약으로팔고또먹었다는얘기다.
유럽의대표적인미이라복용자는프랑스왕Francis1세로,그는매일미이라
가루를만병통치약으로믿으며,죽기전까지장기복용했다.
장작을태워식민지이집트에서증기기관차를운영하든영국은나무가없는
이집트에서장작이떨어지면미이라를태워증기기관차를운영했다.
빅토리아시대,파티후벗겨진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