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遺墨과진경을만난다/조선일보/곽아람기자
입력:2012.05.0723:39
입력:2012.05.0723:39
그가1936년서울경성미술구락부경매장에서조선청화백자한점을1만4580원에낙찰받은이야기는이미’전설’이됐다.큰기와집한채가1000원이던시절,500원으로시작된경매는순식간에1만원을넘어갔다.일본골동품상야마나카와간송두사람이끈질기게경합했기때문.야마나카가1만4550원을끝으로두손을들자,간송은1만4580원을불러마침내백자를손에넣었다.나물캐던할머니가야산에서파내참기름병으로사용하다단돈5원에일본상인에게팔아버렸다고전해지는국보294호’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은이렇게고국(故國)의품에남게됐다.
올해는’문화독립운동가’간송의50주기.서울성북동간송미술관이오는13~27일’간송오십주기기념진경시대회화대전’을연다.그의유묵(遺墨)넉점도이번전시에나왔다.누런갱지위에숲을거니는선비를그린’방고사소요(倣高士逍遙·1956)’는추사(秋史)의’고사소요’를임모(臨摸)한것.최완수(70)간송미술관실장은"아이들이나쓰는갱지에그림을남긴것에서문화재구입에는큰돈을쓰면서도자신에겐인색했던간송의면모가나타난다"고설명했다.갈필(渴筆)의’방고사소요’가수척하고쓸쓸한느낌을주는데반해,’묵국(墨菊·1956)’은활달하고호방한필치.외사촌형인소설가월탄(月灘)박종화와친분이두터웠던간송이월탄과대작(對酌)하던중취흥(醉興)에그린것이다.
이번전시의키워드인’진경시대(眞景時代)’는조선성리학을바탕으로한우리문화의절정기였던숙종(1661~1720)~정조(1752~1800)대125년간을일컫는말.진경시대회화의대표주자겸재(謙齋)정선(1676~1759)작품으로’청풍계(淸風溪)’,’인곡유거(仁谷幽居)’등이나왔다.’청풍계’는인왕산특유의백색암벽(岩壁)을장쾌한붓질로검게묘사해흑백을뒤바꿔버린역작.’인곡유거’는51세때인왕산밑으로이사한겸재가자신의일상을수채화처럼맑은필치로그린그림이다.
이밖에현재(玄齋)심사정(1707~1769),단원(檀園)김홍도(1745~?),혜원(蕙園)신윤복(1758~?)등조선후기화가들의작품110여점을만날수있다.(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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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설립된간송미술관소장품은훈민정음해례본(국보제70호·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혜원전신첩(국보제135호),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제68호)등12점의국보와10점의보물이포함된것정도만알려져있을뿐,정확히몇점,어떤작품이있는지공개된적이없다.
1971년가을부터매년봄·가을각2주씩무료로열리는정기전이일반에소장품을공개하는유일한기회다.
‘신비주의’덕분일까.혜원신윤복의대표작’미인도’가나왔던2008년가을전시엔2주간7만여명,지난해가을전시엔5만7000여명이몰렸다.관람객은몰리는데전시공간은낡고비좁아,몇시간기다린관객이작품에’눈도장’만찍고나가야하는것이미술관의고민.
미술관측은"궁극적으로는새건물을지어상설전을여는게해답이겠지만,현실적여건때문에시간이걸린다.우리도’체질개선’을위해방안을고민중"이라고밝혔다.
간송타계이후미술관운영은아들성우(78)씨와영우(72)씨등이,관리및연구는’간송학파’로불리는최완수실장과그제자들이맡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