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오로지문학으로발언…문학은이념아닌인생에봉사해야”
‘은교’의작가박범신씨를햇살좋은봄날서울종로구평창동카페에서만났다.약간마른몸집의작가는60대라고는믿기어려울만큼경쾌하고에너지가충만했다.그가영화속이적요의살아있는모델이라는생각이들었다.서영수전문기자kuki@donga.com
박범신의‘은교’가영화로나온다니기대로가슴이설레었다.서가에있던‘은교’를찾아보니2쇄였다.책갈피에‘나이듦에대한성찰’이라는나의메모가적혀있었다.세상의추앙을받는칠십노(老)시인이적요의‘적요한’인생을송두리째흔들리게만든열일곱소녀은교,스승을동경하면서도질투하는제자서지우와이적요의팽팽한줄다리기가또하나의스토리라인이다.작가박범신은“은교를열일곱소녀로만보면소설을오독(誤讀)한것이다.은교가40이라도,60이라도상관없다.남자였어도좋았을것”이라고말했다.그러나독자가작가의주문대로소설을읽을필요는없다.평론가신형철은“연애소설이예술가소설로육박한사례”라고썼다.독자들이17세소녀와노년시인의사랑을담은애틋한연애소설로읽는다해도누가말릴사람은없다.
그렇지만작가는연애소설이아님을강조하는말로인터뷰를시작했다.“은교는본원적갈망의끝에서만난불멸의가치를상징한다.소설적재미를위해서열일곱살로설정했을뿐이다.소녀에대해노인이순정을바치는내용으로비치지않기위해소녀의이름도‘은교’라는중성적느낌이나도록했다.”
―‘은교’를갈망의3부작중마지막작품이라고하던데무엇에대한갈망인가.[화보]‘은교’김고은,시원한각…
[동영상]‘은교’김고은,“파격…
“1993년절필선언을했다가1996년‘흰소가끄는수레’를발표하며본업으로돌아왔다.그때부터15년가까이나를사로잡은화두가‘갈망’이다.‘촐라체’에서는히말라야를배경으로인간의지의한계를,‘고산자’에서는대동여지도를만든김정호의꿈을다루었다.갈망은깊은그리움이다.초월적세계에대한욕망과그리움,영원성과불멸,사랑의완성과같은얻기힘든가치에대한욕망이다.그런데절필의시기가내가늙어가는시기였다.절필을통해소설을쓰고자하는욕망,유명해지고자하는욕망등세속적기득권을버렸다.그래도불편하지않았다.절필자체가문학으로얻어낸현실적기득권에대한욕망을던져버린행위였다.그런데그걸던지고나니까근원에대한욕망이나를사로잡았다.늙어가는것이두려웠고시간은뭐고,존재의근원은무엇인가하는강력한물음에직면하게됐다.‘은교’는그것을가장정면으로응시해본소설이다.”
―이적요가곧‘박범신’이라고했던데늙는것이두려운가.
“이적요는완전한가공의인물이지만그의존재론적발언과갈망,추락의감정은내육성(肉聲)이나다름없다.늙음을슬퍼하고두려워하는게어디나뿐이겠는가.삶의유한성에대해모든이가고통을느낀다.자본주의소비문화가잠시잊게하고있을뿐,본원에대한욕망은누구에게나도저(到底)한것이다.나는늙음을좀다르게본다.자기변혁에대한욕망이없으면늙는것이고,자기변혁을꿈꾸면청춘이다.나는육체적쇠락의사이클에정신을내맡기고싶지않다.육체적기운은못하지만내적으로는열정과갈망이화염병처럼분출을노리고있다.육체적쇠잔이정신을훼손하는것을방관하지않을것이고,이적요처럼반항할것이다.나박범신은그런의미에서청춘이다.청춘박범신으로써달라.(웃음)”
‘은교’에서“당신,지금썩은관처럼보여!”라는청년의말에노시인은죽음보다더한굴욕을느낀다.농경문화의전통사회에서노인은삶의지혜를지닌웃어른이고존경의대상이었지만정보화시대의노인은컴퓨터와인터넷의홍수속에서변화의속도에뒤처진세대라는인식도있다.인터넷을들여다보면지하철에서10대들하고자리싸움이나하는잉여인간으로노인을폄하하는버릇없는누리꾼들도있다.
―어떤과정을거쳐영화화가결정됐나.
“‘은교’를블로그에연재할때이적요의나이는77세였다.책을펴낼때출판사에서이적요의나이를60대로줄여달라고하더라.주인공이죽어가는노인이라면책이판매가안된다고하면서.소설은독자가읽어주어야하기에기분나빴지만타협했다.은교와만날때를69세로,죽을때를70세로설정했다.책도잘팔렸고영화제작자로부터러브콜을많이받았다.정지우감독도그중한명이었다.정감독의예전영화를보니인간의밑바닥본능을그려내는데재능이있었다.이런감독이라면노인이갖는본능,짐승같은면을잘그려낼수있다고생각해동의했다.”
―영화‘은교’에대해만족하는가.
“세번쯤보고서야영화의디테일과참맛을느낄수있었다.원작을안읽은관객중에는눈물을흘리는사람도많았다.영화는주제를비교적잘살린수작이라고생각한다.한국영화판에서노인을주인공으로하는영화를만들기가쉽지않았을텐데원작의주제를충실하게밀고나가는것자체가모험이었을것이다.”
작가가영화‘은교’에대해특별히칭찬하는대목은두가지.하나는서지우가승용차에탄채추락하는장면이다.배우김무열은스승에대한배신감과슬픔,절망의감정을고스란히담은채추락한다.원작에없는이장면은소설이가질수없는영화의강점을드러낸다.둘째는서지우와은교의정사신에등장하는“여고생이왜남자랑자는지알아요?나도외로워서그래요,나도”라는은교의대사를꼽았다.영화에서가장야할수있는장면이이대사로인해정당성과품격을갖게된다.
―원작자가영화에대해칭찬하는것은드문일이다.
“왜불만이없겠는가.최대불만은이적요의캐릭터가너무순화됐다는것이다.이이야기는이적요가혼자서벌이는반란이다.삶의유한성이라는운명에순응하지않은기록이다.시간에굴복하지않고‘맞짱’을뜨는것이다.사회문화가정해놓은늙어가는양식에대한통절한반역이다.그런데돌처럼단단하게잘구조화된이적요의고독감과카리스마가활자로는잘드러났지만영화로는잘표현되지않았다.자칫하면노인의순정드라마처럼읽힐수있다.그럼에도불구하고2시간내에영화라는장르에이모든것을담을수는없다는점을이해한다.요즘처럼할리우드블록버스터나가벼운코미디가판치는시대에이런근원적주제로진지하게찍은영화에젊은관객이몰리고있다는점도작가로선행복한일이다.”
―은교는어떤여자인가.
“관능적여자다.나는관능을‘마음속폐허’로본다.은교는마음속에폐허를가진여자다.그녀는열일곱소녀의외피를갖고있지만사랑이무엇인지를태어날때부터본능적으로이해하고모든것을받아들이는여자다.이런여자야말로남자들의로망이다.”
―‘은교’를블로그에연재했고,페이스북이나트위터활동을하던데….
“나는텍스트의힘을믿는사람이다.텍스트가좋다면야그것이종이이건,인터넷이건괜찮다고본다.‘은교’를펴낼때도출판사를설득해‘e북’도함께냈다.페이스북이나트위터활동도하고있지만그것에매몰되지않는다.내가트위터팔로어수나기억하고있다면그때부터나는정파(政派)주의의감옥에갇힌것이다.무엇보다나는인터넷상의소통을믿지않는다.리플이달린다고해서그게소통인가.인터넷에는깊고대등한토론도없고연대감을느낄수없다.혼자지껄이는것보다좀낫지만그렇다고그게본업이될수는없다.”
―요즘일부작가는대규모팔로어를끌고다니며사회적목소리를낸다.
“문학은이념에봉사하는것이아니라인생에봉사해야한다.문학은불행한사람,부자유스러운사람,상처받은사람,억압받는사람들의편에서왔다.그런의미에서문학하는사람들이범좌파로분류되는것도이상한일은아니다.하지만나는내문학이그런좌우이념보다우위에있다고본다.그런편협한정파주의감옥에왜내가들어가야하는가.그럴이유가없다.작가는혼자있는놈이다.내편도집단이되면‘죄’를만든다.나는단독자로서내문학을할뿐패거리를만들지않는다.패거리하고어울릴거면정치를하지,왜문학을하는가.”
그는자신에게도이데올로기가있다면그이데올로기란첫째로문학순정주의라고말한다.오로지문학으로서만발언하는것이다.언제나자신이작가라는전지적시점을의식하고견지하려고노력한다.둘째는인간중심주의.역사는명분을기록한것이고소설은사람의오욕칠정(五慾七情)을기록한것이다.울고,웃고,화내는내면세계를기록하면그게소설이고그걸읽는독자들은궁극적으로명분도떠올리게될것이라고한다.
―올해대선이있는데이번대선의시대정신이뭐라고보는가.
“국민이필요로하는것은덕성(德性)있는지도자다.공자는덕이있는정치를멀리서도사람이찾아오는정치라했지만나는덕성은부동심(不動心)이라고본다.하지만덕만있으면편안한이웃집아저씨밖에더되겠는가.따라서대통령은개별사안에흔들리지않고미래에우리국민이나아갈비전을제시해주어야한다.덕성을갖추고비전을제시해줄수있는과묵한지도자가필요하다.”
―명지대교수로서오랫동안학생을가르쳤는데요즘20대들정말힘든가.
“현상적삶으로보면‘힘들다’는아이들의불평은엄살이다.우리젊을때는끼니가걱정이었다.지금젊은이들이고통스러운것은자본주의가가르쳐준삶의방식을자신의욕망으로착각하기때문이다.자본주의소비욕망에물든아이들은쇼윈도로가득한길을걸어가는것에도스트레스를받는다.세상이그렇게가고있는데아이들은그트렌드에자신의몸과마음을내준것이다.자본주의가지표가없는아이들의욕망을부추기고있다.그렇다고자본주의를뒤엎을수는없다.우리가젊은이들에게가르쳐야할것은자신이누구인가하는정체성을갖도록해내부에서오는신호를수신하도록하는것이다.그런데효율성만강조하는지금의대학교육은이것을제공하기는커녕훼방만놓고있는꼴이다.”
작가는‘은교’에대한영감이떠오른후한달반기간에폭풍우처럼써내려갔다.그는지금내부에서오는신호를기다리고있다고말한다.다음작품에대한영감을기다리고있다는말이다.고향충남논산으로낙향해살면서서울집을왔다갔다하는그는최근‘나의사랑은끝나지않았다-논산일기2011겨울’이라는산문집을펴냈다.그가애태우며기다리는것은소설이아니었다.‘내인생마지막승부는은교가아니야.그냥사랑이야.얻고싶은것도그뿐.사랑보다큰권력은경험하지도,알지도못하기때문.’(5월7일박범신트위터에서)그는불멸의사랑을기다리고있는청춘이었다.
정성희논설위원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