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chosun.com/svc/cinema/slideshow.html?contid=2012050702178
"은교"라는소설이나영화를본적은없습니다.
그러나신문이나인터넷상에알려진내용들을종합해보면
줄거리는간단합니다.
17세소녀인은교와70세의노老시인의사랑이야기입니다.
영상映像이좋다고하더군요.
세간에화제가되는것은그게되냐안되냐
그게말이나되는이야기이냐
뭐,그런이야기입니다.
이게뭐어제오늘의이야기는아니지만영화의흥행을
돕는다하는면에서는이만한것도없습니다.
한마디로돈이된다는것이지요.
이런이야기를내놓고는못하지만
얼마든지있을수있는일이고일어나고있는일이라생각됩니다.
17세라는게문제가되긴하지만
요즈음의고등학생들옛날의고등학생들이아니잖아요.
몸과마음과정신의성숙도가그렇다고생각됩니다.
양귀비는22세에57세의현종을만나지요.
양귀비의결혼은이보다더이른16세였습니다.
우리나라의모화가畵家도43세연하와결혼했고
뭐,예를든다면부지기수로많습니다.
파바로티도그러했고
피카소도그러했고
Bible의다윗도그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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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통념상관습상질서상에문제를
가져오기는하지만어찌하겠습니까!
세계65억의사람들이다똑같이살아갈수는없지요.
우리가사는세상은이러기도하고저러기도하지요.
더더구나서로가사랑한다는데야어찌할수있나요.
통념상정상적이지는않지만
본인들은정상적이라고생각하니요..
그런문제에화두畵頭를던진영화라생각합니다.
이미있어왔지만,그래도
금기시되던이야기를과감하게밖으로끄집어낸것이지요.
좋다나쁘다된다안된다하기이전의이야기입니다..
이런영화가한두편상영된다하여
되었다하여화제가되었다하여
기존의관습이나상식이나질서가깨어지리라여겨지지아니하며
견고하게그틀을지켜나갈것이라생각합니다.
세상에는특이한특별한돌연변이적인일들이심심치않게있어왔습니다.
부모의입장에서는미치년미친늙은이의미친짓에불과하지만..
당사자들은자신들이감당해야할몫이라고생각하니요..
그렇다고해서17세의은교와70세노老시인의사랑을방관하고싶지는않습니다.
다만그럴수도있지않겠나하는가능성에대하여이야기하는거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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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동아일보에보도된기사전문입니다.
‘남자의물건’김정운씨-‘은교’박범신작가만나다“
삶이아득해져요.”
문화심리학자인김정운씨(50·전명지대교수)가“젊은여자를보면
(은교를바라보듯)애틋한마음이생기느냐”고묻자
박범신작가(66·상명대석좌교수)가답한말이다.
“출근할때상명대횡단보도앞에서신호에걸려멈춰요.햇빛이쏟아지고
여대생과여중고교애들이기운차게내앞을지나가요.삶이아득해지는
그순간나의돌이킬수없는세월도지나가죠.김소월의어법으로말하자면
그냥꽃이저기저만치에있는거지.그러면상처와슬픔이생기죠.
툴툴털고자하지만여전히남은그슬픔이내문학적동력이지요.”
‘남자의물건’이‘은교’를만났다.김씨는올초출간된
‘남자의물건’집필과정에서박작가를만나인터뷰를진행했다.
박작가의소설‘은교’를소재로두남자가나눈대화가책에짧게언급돼있다.
그런데‘남자의물건’을펴낸출판사북이십일이책에넣지못한두남자의이야기를담은
인터뷰동영상‘오나의처녀,은교’를제작했다.
동영상은카드북닷컴(www.cardbook.com)에올렸다.
“나이가들어서도어린여인에게사랑을느낀다는것을
선생님이써주신덕분에남자들의그런욕구에대한면죄부가생긴것같아요.
저뿐아니라다른남자들도그렇게생각하죠.”(김)
“남주인공은70세고여주인공은17세소녀죠.평생자기절제를해온
노시인에게나타난은교는단순히젊은아이가아니에요.불멸의처녀성을뜻하지요.
처녀가늙어애낳고시집가고그러는것은노인의머릿속에없는거예요.”(박)
김씨는‘은교’를읽으면서칠십노인의열일곱소녀에대한사랑에
자꾸감정이입이돼몇번이나눈물이났다고했다.
그는“나이가들면젊은여성에대한욕망을품을수없다고사회가,
그리고스스로규정짓는게슬프다”고털어놓았다.박작가는“안된다고할때갈망은더커진다.
본성을드러낼수있고,사랑때문에패가망신하는사람이많은사회가좋은사회다.
비록나는못했지만…”이라며웃었다.
박작가는교수로서젊은제자,특히여제자들을바라보는
시선에대해서도대담하다싶을만큼솔직하게털어놓았다.
그는지난해까지명지대문예창작과교수로재직했다.
“교수인내입장에서아이들은영원한‘버진(처녀)’이에요.열일곱살그대로있는거죠.
…교수가60대쯤됐을때제자들도늙어50대쯤되면참평화스러운데,
나는60세가됐지만제자는아직도20대초반이죠.거리가많이생기니,
마음이아프고상처받는일이많아요.”(박)
인터뷰내내50대에갓진입한남자는70세를향해가는
또다른남자에게‘늙어감에대한슬픔을어떻게극복해야할지’물었다.
“전미리부터늙어가는게참슬퍼요.그슬픔이소설에잘나와있지요.
하지만노시인이결국은교의손을만지는걸로끝이나는데,전굉장히비겁하다고봤어요.
‘이렇게슬프게해놓고손만만지고가게하나’,그런생각을했지요.”(김)
“가질수없기에,은교죠.그렇기에우리마음속에갈망이남는거고요.
전늙어가는게불편하진않아요.
하지만말할수없이슬프죠.하지만깊은슬픔을간직하는게오히려좋다고봐요.
또무언가를끝없이갈망하고자해요.그러면진정늙은건아니니까요.”(박)
이지은기자smiley@donga.com
영상제공=출판사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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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917010736273100020
“한국의피카소?…난하모니즘개척한‘한국의김흥수’”
▲밝은표정을담고싶다는사진기자의요청대로파안대소하는김흥수화백.수차례백내장수술과척추수술로눈이잘안보이고거동이불편한데다최근두달여병원신세를질만큼몸이좋지않았지만인터뷰를즐기듯진지하게자신의삶과예술에대해이야기했다.김선규기자
▲1992년결혼식전부터26년여함께살아온장수현김흥수미술관관장은김화백의아내이자예술적동반자다.김선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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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타고나타난노화백은패셔너블한흰가죽재킷,검정가죽바지차림이었다.트레이드마크가된흰턱수염과대조적인검정중절모,백구두와빨간색셔츠와큼직한목걸이등강렬한서양화같은특유의패션도여전했다.1919년생,추상과구상,동양과서양,음과양을한화폭에담아낸‘하모니즘’미술의창시자!올해91세의김흥수화백은화단의거목다운카리스마가주위를압도했다.
예술혼뿐아니라43세연하제자와의결혼등파격적인행보로도스포트라이트를받은90대노화가의삶과예술에대한열정은아직도‘현재진행형’이다.예술의전당미술영재아카데미를포함해서울종로구평창동김흥수미술관에서10년여지도해온어린제자와함께하는‘아름다운동행’전을7월10일~8월10일제주현대미술관에서열었다.9월무더위에스스로“화랑전시론마지막이다”고선언하며종로구삼청동의fn아트스페이스에서개인전을열고있다.지난10일개막한개인전을통해작품활동의절정기작품으로지목하는1960~1970년대추상화를집중적으로선보였다.
지난14일오후문화일보와의인터뷰를위해fn아트스페이스를찾은김흥수화백은부인장수현(48)김흥수미술관관장외에처제,구순의노화백을이모부라부르는다섯살짜리처조카와동행했다.귀에대고큰소리로말을건네야하고다리도불편해이동할때부축을받아야했지만노화가는쩌렁쩌렁한목소리로카리스마를발휘해주위를긴장시켰다.노화백은대화중수시로정확한용어와연도를되살려내려는듯,한동안말을끊고생각에잠기곤했다.
인터뷰내내자신을대리해무언가를말하려는아내에게“내가이야기할때는가만있어”라며싫은내색을하면서도,자신과작품을‘국보’및‘문화재’로평가하는아내에대한각별한마음을감추지않았다.
고정관념에얽매이지않고자신의내면에충실하게,자유롭고거침없이삶과예술을일궈온그였다.운동삼아1950년대파리유학시절배운사교댄스를즐겨아마추어춤대회서1등을받을정도지만춤춘지도오래다.
김화백은지난7월예술원회원이됐다.하지만김화백은“예술원이이야기는더이상하고싶지않다”며손사래를쳤다.‘백구두’‘젊은부인’등의튀는면모가걸림돌이됐던것일까.김화백은91세에비로소한국문화예술계의원로집단인예술원회원으로선임됐다.김화백이예술원회원이되기전까지상당히오랜기간일반인들에게모습을드러내지않았다.요즘어떻게지냈을까.
노화백과의인터뷰는전시장에서인근칼국수식당으로,김흥수미술관으로옮기면서4시간넘게이어졌다.노화백이생각하고안마받으며쉬는틈틈이부인과처제의보충설명이더해졌다.
―요즘건강은어떠십니까.
“지난7월제주현대미술관의‘아름다운동행’전개막후몸이아주안좋았어.두달여병원에입원했더니미술영재교육을받는제자들이울면서걱정할정도였지.전시를하고기자와인터뷰를한다니옷차려입을기분도나고기력이되살아나이렇게외출도해.”
―그림도그리십니까.
“얼마전까지감각으로그리는여체드로잉은가능했으나그림을못그린지두달이넘었어.손발이떨리니그림이안돼….(그럼에도전시도록에사인펜으로‘사랑을온세상에김흥수’라고쓴뒤겹쳐진2개의하트속에‘사랑’이란두글자를써넣었고1957년부터사용해온‘KIMSOU’라는알파벳사인까지했다.)직접그리진못해도그림을가르칠순있어.”
그러면서전시장을찾은미대생제자에게김화백은“추석명절지나누드드로잉부터다시하자”고말을건넸다.역시괴짜는괴짜다.김화백은나이는들었지만모든게마찬가지라고말했다.“새벽4시눈뜨면그림만못그릴뿐신문도사설과스포츠뉴스부터TV프로그램까지꼬박꼬박챙겨읽고,TV서축구,격투기경기도집중해서봐요.물론전시도록의원고도직접챙기고.오늘도일교차큰요즘날씨와시린다리를고려해청바지대신가죽패션으로내가직접색맞춰코디했어.사랑도누구에게고백하지않고혼자마음속으로하는‘플라토닉러브’(노화가는이단어를줄곧‘플라스틱러브’라고발음해주위의미소를머금케했다.)가가능하니행복하지않은가.예쁜여자를보고‘참예쁘다’라고느끼며상상하는가운데,시·소설과음악도나오는게아닌가.”
그의이번전시에누드화는2009년작‘염화미소’한점뿐이다.대부분은1960~1970년대추상화들이다.“피카소,마티스가그렇듯위대한예술가는어떤장르도다할줄알아야해.나를누드그리는화가정도로여기며‘김흥수가추상을할줄아느냐’고도하던데,나는치열한구상과추상의시기를거쳐화면속에서이질적인장르인추상과구상이조화를이루는‘하모니즘’을창시한걸아시란말씀이요.”
김화백은15세때함흥고보시절시작한미술작업이76년째에접어들었다.이번전시에는화백인생의절정기라할1960~1970년대추상화를선보이고있다.전시작중1973년작‘광상곡’은추상으로보는러브스토리다.
그럼김흥수의하모니즘은과연뭘까.“내가그림공부를한도쿄미술학교는리얼리즘의전통이셌지만나는리얼리즘이시대에뒤떨어진것같아새로운것을추구했어요.전쟁중부산피란지에서도낡은일본책을구해보며추상화를연구했지.1953년서울반도호텔에그렸던벽화‘한국의봄’작품값3000달러를들고파리로유학갔을때,‘큐비즘’을비롯해새로운미술사조를접했지만내작품은아닌것같더라구.‘내가그린것,세월이흘러도언제나김흥수의작품이무엇일까’하고오랜세월고심해왔지.그렇게20년이흘렀고미국서교환교수로체류중이던1977년하모니즘을정식으로선언했어요.”김화백은“그하모니즘미술로한국화가로는최초로1990년파리뤽상부르미술관에서,1993년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미술관과모스크바푸시킨미술관에서초대전을열었다”고회상했다.
김화백은‘사랑과열정의화가’라는의미에서‘한국의피카소’로불린다.이같은평가에김화백은“나는‘한국의김흥수’다”라고잘라말했다.그의이선언은단호해보였다.피카소가스페인혹은프랑스의피카소이듯,자신의작업의원동력은애국심이라는말도했다.전쟁직후폐허에서사막을걷는느낌으로이제문화적인면에서모든걸만들어야겠다는각오가컸다는것이다.김화백은“다른나라에뒤떨어져선안된다는마음으로그림도생사를걸듯그렸다”고강조했다.
―김흥수화백하면우선누드화부터떠올리게됩니다.
“최근수년간발표한누드소품은생활을위해팔려고그린작품이야.평생누드를많이그리긴했지.그러나내가그린건여자가아니라인간이에요.다만내가남자니까아름다운여성을그렸을뿐이에요.나는단순히여인의피부,누드의표피만을그린게아니야.희로애락을가진여인의환희와절망,허무와끝없는욕망을그린거지.지금도미술영재교육과정의마무리단계가바로누드화야.사실나는어머니에게업혀다닐때부터여성의아름다움을느끼기시작했으니좀조숙한건있어요.”
―부인장수현김흥수미술관관장과오늘도동행이시네요.
“장관장이야기는자꾸쓰지마라.새장가가려는데….하하하.”
덕성여대미대생시절사제지간으로만난김화백과8년여동거기간을거쳐1992년1월결혼식을치른‘젊은부인’장수현씨도이제오십을바라본다.1990년파리뤽상부르미술관에서열린하모니즘초대전때김화백과동행한한복차림의젊은여성장씨가세인에게알려지게됐다.결국두번의결혼과이혼경력이있는,정년퇴임한73세노화가와30세의젊은미술학도는부부의연을맺었다.함께산지26년째.
그러나요즘부부는각기미술관과자택에서별거중이다.장관장이2년여암투병중이라김화백의의식주일체의생활을두여동생이챙기고,장관장은김화백의미술영재교육과전시등미술일을틈틈이거든다.
부부이야기가나오자장관장이직접나섰다.“남녀로만났다면진작깨졌을거예요.김선생님의문화재급작품을잘지키고,전하고자하는사명감때문에오늘까지지탱해온것같아요.어느인터뷰에선가김선생님이아무도알아주지않던하모니즘을처음인정하고평가해준사람이65세때만난저라고하시더군요.”
부인의말에김화백은웃음으로화답했다.“야구,수영,스케이트만우리나라가세계1등이아니라,그림도세계적수준이에요.”김화백은“우리의미술수준을제대로알리기위해,해외전시만할게아니라국내외작가의작품을동시에보여주는비교전시를자꾸마련해야한다”고강조했다.
인터뷰=신세미문화부부장sse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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