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04ㅡ1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禮安鄕校(예안향교) 앞의 보호수]
예안향교는 도산서원을 찾아가는 길에 함께 들러보면 좋다.
사시사철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도산서원과 달리
예안향교는 안동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발길을 멈추는 이가 드물다.
예안향교는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 방면으로
약 20㎞ 떨어진 서부단지에 있으며, 이 길은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이어서 대부분의 안내판은 도산서원을 가리키고 있다.
때문에 예안향교를 알리는 팻말을 놓치기 쉽다.
향교 앞까지 자동차가 접근할 수는 있지만,
급한 경사를 곤두박질치듯 내려가야 하니 조심해야 한다.
도로 가장자리에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다.
주위를 잘 살피고 자동차를 세운 뒤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는 게 좋다.
입구에는 오래된 은행나무(약 600년)
함께 자라고 있으며, 향교의 역사와 함께 했다 한다.
[進道門(진도문)]
進道門(진도문)은 향교로 진입하는 문이다.
맞배 형식의 단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은 병렬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 중앙칸에만 문을 두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경북에서는
봉화향교의 대성전에만 볼 수 있다고한다.
조선시대에 禮安懸(예안현)에 설치하였던 향교이다.
처음 건립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선조 34년(1601)에
重修(중수)가 있었고, 영조 21년(1745)에 크게 개수하였다.
太祖(태조)는 건국 후 바로 지방관에게 명하여
군, 현에까지 향교를 설치하였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관학기관이며,
1郡(군)에 하나의 鄕校(향교)를 두었는데
예안향교는 예안현에 설치되었던 향교이다.
예안은 고려시대에는 군이었으나 고려 말 이후
현이 되어 현감이 파견되었다.
예안이 군으로 승격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안내판 글 내용]
[禮安鄕校(예안향교) 전경]
경내에는 大成殿(대성전), 明倫堂(명륜당), 典祀聽(전사청)과
동, 서의 齎(재) 등과 부속건물로 庫直舍(고직사)가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孔子(공자)를
위시한 한국과 중국의 성현들을 배향하고 있다.
대개의 향교가 前堂後廟(전당후묘)의 격식을 따라
명륜당과 대성전을 앞뒤에 나란히 배치하는데 여기서는
명륜당이 왼쪽으로 비켜서 있는 점이 특이하다.
명륜당은 정면 2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유학을
가르치고 공부하던 곳이다.
[100년된 무궁화를 찍기위해서…]
무궁화의 품종은 무려 100여 가지나 된다.
그 가운데 ‘안동’이라는 품종의 무궁화가 있다.
바로 경상북도 안동 지방의 지역 이름을 딴 무궁화다.
‘안동’ 무궁화 품종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이 나무는 안동 도산서원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다.
그냥 스쳐지나기 십상인 ‘예안향교’ 앞마당이 그곳이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 살아 있는 무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것이라 한다.
꽃 크기가 동전500원 크기만 하며, 예안향교
안 마당에서 100여년을 피고 지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한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처럼 수명이 긴 나무에 비하면
어린 나무로 밖에 볼 수 없지만, 그러나 무궁화로서는
100살이나 된 古木(고목)임에 틀림없다.
명륜당 현판 아래 담너머로 조금 보이는 초록의 저 나무가
100년 묵은 안동 무궁화나무라 하지만, 담이 높아서…
저렇게 밖에는 담지 못함이 내내 아쉬웠다.
[향교 뒤에서 담은 전경]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노비, 토지, 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의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조선시대에 매년 봄, 가을로 두 차례 제사를 올렸다.
일제 강점기에는 양력 4월 10월 15일에 제사를 드리다가 해방 후
전국 유림대회 결의로 공자님 탄신일인 음력 8월 27일에 제사를 드렸다.
예안향교는 고유의 홀기에 의하여 제사를 진행한다고한다.
매우 세밀하게 예법을 정하여 두었으나 향을 올리고,
제사음식을 진설하는 법, 강신례, 초헌
初獻(초헌) : 술 첫잔을 올리는 것
亞獻(아헌) : 두번째 잔을 올리는 것
終獻(종헌) : 끝으로 잔을 올리는 것
례, 분헌례, 음복 망례 등으로 진행된다.
현재 祭享(제향)은 2월 春秋節(춘추절)과 8월 上丁日(상정일)에 받들고 있다.
[도로에서 내려다 본 禮安鄕校(예안향교)의 모습]
안은 문이 잠기어져 있어서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밖에서 사진을 찍으며 만족할 수 밖에…
예안향교로 내려가는 길은 포장은 되어있었지만,
비탈이 너무 심하여…내려가기도 올라오기되 쉽지는 않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옆지기 내려가자 하기에
내려가긴 했지만, 올라오는 일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도로 옆의 넓은 공간에 차를 세워두고 내려오지
못한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그러나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올라올 수 있어서 다행이였다.
데레사
2016년 2월 26일 at 8:23 오전
아주 어릴적 영덕에 살때 향교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곳에 가서 놀기도 했고
여기 과천향교는 블로그 이웃이신 아멜리에님이 그곳에서 일한적이
있어서 만나러 갔던 적도 있어요.
자동차 운전하면 늘 그런게 걱정이죠.
그런데 막상 해보면 또 별것 아닐 때도 많고….
오늘도 두분 오순도순 잘 다니세요.
초아
2016년 2월 26일 at 5:08 오후
향교가 그냥 향교가 아니겠네요.
어릴적 추억과 함께하니 향교가 남다르게
느껴지겠습니다.
예, 길이 너무 좁은 논두렁길이거나,
외길일때는 맞은편에서 혹시나 차가 올까
가슴이 콩닥거릴때도 있답니다.
그냥 유원지가 아니라 묘소를 다녀야하니까
좁은길 가파른길 험한길 가리지 않고 가야하니까
남편은 저를 전천후인줄 착각하나봅니다.
괜찮은척해도 마음속은 불안불안할때도 있거든요.
그럴게요. 오순도순 잘 다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