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1074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4호
[歸來亭(귀래정) 흙돌담 길]
이 건물은 조선 영조 31년(1755) 驪江李氏(여강이씨)
川西門中(천서문중)에서 글방으로 세운 것인데, 원래 정자의 이름이
六花亭(육화정)이라 하였으나,止軒(지헌) 李哲明(이철명, 1477~1523)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는 뜻을 기리기 위해 추모하여
1930년경 문중에서 귀래정으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골목 옆으로 난 작은 문]
앞 출입문은 굳게 닫혀있고,
돌담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작은 문이 보이기에
작은 문을 미니 닫혀보였던 문이 열려서 고마워하며 들어갔습니다.
[안내판 글 내용]
[행랑채]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은 마당과 행랑채의 살림집과 초가집이 보였다.
[歸來亭(귀래정)옆쪽에서 담은 전경]
초가집 옆으로 난 작은 문을 통과하니
눈앞을 막아서는 육각형의 정자가 보였다.
이 육각형의 정자가 귀래정이라 한다.
여름 한 철 제 멋대로 자란 풀들이 묵은 향기를 품어내는 것같다.
[歸來亭(귀래정) 현판 글씨]
현판의 글씨도 뚜렷한 歸來亭(귀래정)
지헌은 연산군 10년(1504)에 문과에 합격한 후
병조좌랑, 예조정랑을 거쳐 홍문관 檢校(검교)를 지냈다.
안채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대 귀래정은
사랑채 역할을 하며, 정자로는 흔치 않게 정육각형을 이루고 있다.
[정면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귀래정은 六角平面(육각평면)을 지닌 건물로 평면구성,
構造結構法(구조결구법)과 造園構成(조원구성)의 獨特性(독특성)을
지니고 있어韓國傳統建築( 한국전통건축)과 造園硏究(조원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다.
[우측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일반적으로 육각형 건물에는 온돌을 두는 예가 드문데,
이곳에는 앞뒤로 나누어 앞을 마루로 하고 뒤는 온돌로 하였다.
[좌측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과 빗천장.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다.
평면구성이 육각형으로 특이하며, 조경 구성이 독특하여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정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 되고 있다.
[歸來亭(귀래정)과 연못]
정문으로 들어와 연못위에 놓인 다리를 통과해서
歸來亭(귀래정)에 오르면 아마도 신선이 된 기분이 될 것도 같다.
제 멋대로 돋아난 풀들이 연못위 돌다리를 감고
자라고 있었지만, 그것 또한 운치가 있어 보였지만, 연못의 물을 탁했다.
물빛은 탁했지만, 잔잔한 연못은 주위의 경치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 주었다.
옛 사람들의 정취를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 넣고
우린 다시 다음의 답사를 하기 위해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데레사
2016년 3월 12일 at 8:44 오전
우리들 어릴때는 이 외동마을은 대부분 손씨와 이씨가 살았는데
중학교때 부터 이 동네 사는 아이들하고 만났거든요.
양반티를 하도 내서 친하기가 좀 어려워서 놀러갔던 기억이
없어요.
서울로 와서 여행으로 가서 들려봤을뿐이라 외동마을 일대에
별 추억은 없어요. ㅎ
초아님 덕분에 내 고향 구경 잘 합니다.
초아
2016년 3월 12일 at 6:41 오후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같은 성씨를 갖이신 분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곳이 많았지요.
아마도 이곳도 그랬나봅니다.
양반티를 조금 덜 내었드라면 좋은 친구로
기억에 남았을텐데.. 좀 그렇네요.
추억이 없어도 타향에서는 고향까마귀만 봐도 좋다잖아요.
고향 구경 잘하셨다는 말씀이 힘을 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