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詩仙 金삿갓 遺蹟地(시선 김삿갓 유적지) 표석 碑(비)]
방랑 시인 김삿갓의 유명한 일화.
언제나 그렇듯 갓쓴 선비네들은 정자에 앉아
옆에 계집을 꿰어차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있었다.
그때 한 삿갓을 쓴 행인이 그들의 틈에
끼더니 시를 쓸테니 술대접을 해 달라고 했다.
양반네들이 그 행인을 쫓으려고 했지만 한 양반이 호감을
느끼고는 선비들을 말려서 그 삿갓쓴 행인에게 시를 지어보게 했다.
그 행인은 정자에 앉자마자 과제를 내라 했습니다.
너무 당당한 모습에 당황한 양반들. 양반들은 꾀를 내어
자신들의 이름을 이용해 詩(시)를 지으라 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밝혔다.
‘원 생원, 문 첨지, 서 진사, 조 석사’
그 말을 듣자 말자 대뜸 종이위에
글을 쓰놓고는 술을 단숨에 들이키곤 길을 떠났다.
그 선비들이 삿갓쓴 나그네가 지은 시가
궁금해서 읽어보니,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日出猿生員 (일출원생원)
해뜨자 원숭이 들에 나오고
黃昏蚊添至 (황혼문첨지)
날 저무니 모기들 처마에 모여드네.
猫過鼠盡死 (묘과서진사)
고양이 지나자 쥐는 모조리 죽고,
夜出蚤席射 (야출조석사)
밤 들자 벼룩은 자리에 나와 쏘네.
원생원을 원숭이로. 문첨지를 모기로. 서진사를 쥐로. 조석사는 벼룩으로…표현했다.
[靜巖(정암) 朴泳國(박영국)선생 功績碑(공적비) 전경]
[공적지 아래에 새겨진 글 내용]
邑名開城何閉城(읍명개성하폐성)
고을이름은 개성인데 어찌 문을 닫아걸며
山名松岳其無薪(산명송악기무신)
산이름은 송악인데 어찌 땔감이 없다 하느냐
그가 개성에 갔을 때에 어느 집 문앞에서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하자,
그 집주인은 문을 닫아걸고 땔감이 없어 못 재워준다고 했다.
이 때 지은 詩(시)
白髮汝非金進士(백발여비김진사)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
我亦靑春如玉人(아역청춘여옥인)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酒量漸大黃金盡(주량점대황금진)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世事縡知白髮新(세사재지백발신)
세상 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샘물을 떠 마시며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읊은 詩(시).
[향수시비와 풀이글 내용]
[유적지에서 묘역으로 오르는 길]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개울물]
自嘆(자탄)
스스로 탄식하다.
嗟乎天地間男兒(차호천지간남아)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知我平生者有誰(지아평생자유수)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萍水三千里浪跡(평수삼천리랑적)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琴書四十年虛詞(금서사십년허사)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靑雲難力致非願(청운난력치비원)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白髮惟公道不悲(백발유공도불비)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驚罷還鄕夢起坐(경파환향몽기좌)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三更越鳥聲南枝(삼경월조성남지)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越鳥(월조)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시비 앞에 놓여 있는 청동 굴비 밥상 ]
吉州明川(길주명천)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주불길주)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하지 않은 고장.
許可許可不許可(허가허가불허가)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하는 것은 없네.
明川明川人不明(명천명천인불명)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漁佃漁佃食無漁(어전어전식무어)
어전 어전 하지만 밥상에는 고기가 없네.
[시선 난고선생 사적 전경]
[글 내용]
[시선 김삿갓 난고선생 유적비에서 인증샷]
난고는 조부가 지은 불충과 조상을 능멸한
자신의 죄상을 뼈저리게 아파하며 평생을 참회 속에 살았다.
김삿갓. 그는 파격과 조롱, 기지와 야유를 바탕에 깐 해학과 풍자문학의 귀재였다.
촌철살인하는 기층 시와 난고의 생애를 소설화한 문학서적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며,
한때는 라디오 방송에서 ‘김삿갓 북한방랑기’가 방송돼 널리 회자됐고
가수 명국환이 부른 ‘방랑시인 김삿갓’ 은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방랑 시인 김삿갓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은 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젖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千里行張付一柯(천리행장부일가)
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餘錢七葉尙云多(여전칠엽상운다)
남은 돈 엽전 일곱 푼이 아직도 많은 것이니
囊中戒爾深深在(낭중계이심심재)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간직하려 했건만
山村訓長但知覓(야점사양견주하)
황혼에 술집 앞을 이르니 어이 할찌나
저녁 노을 붉게 물든 길을 가다가 주막을 보고
술생각이 간절하여 읊은 詩(시).
[묘역가는 길 안내팻말과 안내판 전경]
[안내판 글 내용]
[당집 전경]
김삿갓 집터는 묘소 앞의 ‘당집’ 옆으로 난 계곡길로 접어들면,
제법 널찍하게 닦인 길은 찾아들기 쉬울것도 같지만, 먼저 왔을 때도
가보지 못하고 이번 길에도 비가 내려 들리지 못했다.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함께한 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아쉬움에 자꾸만 뒤돌아보며 내려왔다.
[당집]
[약수물(우물)]
김삿갓의 둘째 아들 익균이 아버지를 찾아 헤메다가
첫번째로 아버지를 만난 곳은 경북 안동에서였다. 몰라보게 장성한
아들을 상면하자 김삿갓은 무슨 까닭인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아들이 잠든 사이에 야반도주하고 말았다.
두 번째로 익균이 아버지를 만난 곳은 강원도 평강에서였다.
이번에는 아들에게 십리쯤 떨어진 곳으로 심부름을 시켜 놓고
그 사이에 또 도망쳐 버렸다.
세 번째로 익균이 아버지를 찾아 만난 곳은 전라도 익산군 여산에서였다.
김삿갓도 이번에는 할 수 없다는 듯 꼭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부자가 함께 길을 걷다가 수수밭머리에 와서 대변을 보겠다고
밭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차마 용변하는 곳까지 따라가 지켜 볼 수는 없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익균이 삿갓 벗어놓은 쪽으로 가 보니
삿갓만을 벗어둔 채 그림자도 없이 또 사라지고 만 것이다.
[장승]
익균이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살아있는 아버지가 아닌 돌아가신 후의 아버지의 시신이였다.
1863년 계해, 철종 14년 3월 29일 전라도 화순 동복면 구암리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익균은 아버지께로 달려가서
시신이나마 자기 집 근처에 묻기 위하여 천릿길을 모시고 와서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록에 모셨다고 한다.
이때가 김삿갓의 나이 59세, 한 많고 기구한 시인의 한 생애가 이렇게 끝났다.
[시비앞 복숭아를 든 삿갓 조각상]
回甲宴(회갑연)
회갑잔치
彼坐老人不似人(피좌로인불사인)
저기 앉은 늙은이 사람 같지 아니하니
疑是天上降眞仙(의시천상강신선)
아마도 하늘나라 신선이 내려온 듯한데
其中七子皆爲盜(슬하칠자개위도)
일곱 아들 모두 도둑이 되어
偸得碧桃獻壽筵(투득천도헌수연)
천도를 훔쳐다가 수연에 바치는구나.
천도는 하늘에만 있는 복숭아로서 이것을 먹으면 2천년을 산다는 전설이 있다.
[詩仙(시선) 蘭皐(난고) 金炳淵(김병연) 墓(묘) 전경]
蘭皐平生詩(난고평생시)
鳥巢獸穴皆有居(조소수혈개유거)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는데
顧我平生獨自傷(고아평생독자상)
내 평생은 혼자 슬프게 살아 왔구나.
芒鞋竹杖路千里(망혜죽장로천리)
짚신신고 지팡이로 천 리 길을 다니며
水性雲心家四方(수성운심가사방)
물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지
尤人不可怨天難(우인불가원천난)
남을 탓할 수도 하늘을 원망할 수고 없고
歲暮悲懷餘寸腸(세모비회여촌장)
해마다 해가 저물면 서러운 마음에 슬퍼했다.
初年自謂得樂地(초년자위득락지)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에 태어나
漢北知吾生長鄕(한북지오생장향)
한강가 이름 있는 고향에서 자랐다.
簪纓先世富貴人(잠영선세부귀인)
조상은 부귀영화를 누려 왔던 사람들
花柳長安名勝庄(화류장안명승장)
장안 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 이었다.
[詩仙(시선) 蘭皐(난고) 金炳淵(김병연) 墓(묘)]
隣人也賀弄璋慶(인인야하농장경)
이웃 사람들 득남했다 축하해 주며
早晩前期冠蓋場(조만전기관개장)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 했건만
髮毛稍長命漸奇(발모초장명점기)
자랄수록 운명이 자꾸만 기구하여
灰劫殘門飜海桑(회겁잔문번해상)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다.
依無親戚世情薄(의무친척세정박)
의지할 친척 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哭盡爺孃家事荒(곡진야양가사황)
부모마져 돌아가셔 집안이 망했도다
終南曉鍾一納履(종남효종일납리)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風土東邦心細量(풍토동방심세양)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心猶異域首丘狐(심유이역수구호)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호 같고
勢亦窮途觸藩羊(세역궁도촉번양)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같은 나로다.
南州從古過客多(남주종고과객다)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轉蓬浮萍經幾霜(전봉부평경기상)
부평초 처럼 떠돌아가기 몇 해던고
[묘역에서 인증샷]
搖頭行勢豈本習(요두행세기본습)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오
口圖生惟所長(구도생유소장)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光陰漸向此中失(광음점향차중실)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三角靑山何渺茫(삼각청산하묘망)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江山乞號慣千門(강산걸호관천문)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風月行裝空一囊(풍월행장공일낭)
풍월을 읊는 사랑방은 언제나 비었도다
千金之子萬石君(천금지자만석군)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厚薄家風均試嘗(후박가풍균시상)
후하고 박한 가풍 모조리 맛보았노라
身窮每遇俗眼白(신궁매우속안백)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 보니
歲去偏傷빈髮蒼(세거편상빈발창)
흐르는 세월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佇亦難(귀혜역난저역난)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幾日彷徨中路傍(기일방황중로방)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마대산 등산로 초입인 김삿갓 묘역 아래쪽 전경]
선생은 원래 전라도 동북(지금의 전라도 화순군)에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둘째 아들 익균이 주거지인 하동면 노루목 바로
이 곳 골짜기에 묻어 주었으며, 그의 묘소는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정암 박영국선생의 노력으로 발견 되었다.
데레사
2016년 4월 21일 at 6:55 오전
김삿갓의 풍자시는 언제나 배꼽을 잡게 하면서도
오묘한 뜻이 담겨 있지요.
한때, 참 많이 외웠는데 지금은 기억하고 있는게
몇 수 안 됩니다.
초아
2016년 4월 21일 at 7:09 오전
그렇죠. 발음대로 읽으면
욕하는듯… 그러나 그 속에는
말씀처럼 오묘한 뜻이 담겨져 있어요.
저도 참 많이도 외우고 좋아했지만,
지금은 거의 잊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