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 75-1
전남기념물 제1호
[息影亭(식영정) 입구]
식영정은 원래 16세기 중반 棲霞堂(서하당) 金成遠(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林億齡(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라 한다.
息影亭(식영정)이라는 이름은 임억령이 지었는데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서하당유고’ 행장에 따르면, 김성원이 36세 되던 해인
1560년(명종 15)에 식영정과 서하당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송강정철 가사의 터 비]
김성원은 정철의 처외재당숙으로 정철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정철이 이곳 성산에 와 있을 때
환벽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문이다.
林億齡(임억령), 金成遠(김성원), 高敬命(고경명), 松江(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四仙(사선)’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息影亭二十詠(식영정이십영)’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星山別曲(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문화관광부에서는 1991년 2월 송강 정철의 달로 정하고
우리나라 가사문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송강 정철을 기념하는
표석을 2개소에 세웠다.
하나는 이곳 ‘성산별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
식영정 입구와 또 하나는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8경의
하나인 삼척 ‘죽서루’ 경내에 있다.
[息影亭(식영정) 가는 돌계단]
담양과 삼척에 세워진 ‘송강 절철 가사의 터’ 표석은
종전의 일반적인 시비와는 달리 팔각형 장대 표석과 8각형의 기단으로
이루어졌으며 기단 8각의 각면마다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 수결, 세움말,
가사 창작의 배경을 적어놓아 송강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미니 박물관 구실을 하도록 되어있다.
제봉집에 전하는 고경명의 한시 식영정이십영 중의 두편을 소개합니다.
秋月翠壁(추월취벽) 추월산의 푸른 절벽
鐵壁上蒼然(철벽상창연)
무쇠같은 절벽 창연도 한데,
層賞尺去天(층령척거천)령
층층의 봉우린 하늘에 가 닿을 듯.
秋風衣欲振(추풍의연진)
갈바람에 옷자락 떨치려 하니,
直待桂輪圓(직대계륜원)
둥근 달 오르기를 곧장 기다리리라.
鶴洞暮煙(학동모연) 학동에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
獨樹全迷頂(독수전미정)
홀로 선 나무 정상을 가리우고,
遙山淡抹腰(요산담말요)
먼 산허리에 어슴푸레 감도네.
洞門深不見(동문심불견)
학동은 깊어서 보이지 않고,
歸鶴失危巢(귀학실위소)
돌아오는 학 제 깃조차 찾지 못하네.
[息影亭(식영정) 현판]
그림자가 쉬고 있다는 息影亭(식영정)
정자의 이름을 지으면서 장인과 사위간에 그림자 이야기가 오갔던 모양이다.
그 내용은 ‘식영정기’에 실려있으며, 명종(15년) 임억령 나이 65세 때라한다.
[전라남도 도기념물 제1호 식영정]
식영정은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흔히 중앙에 방을 배치하는 다른 정각들과는 달리 방을 귀퉁이로
몰아놓고 앞면과 옆면에는 마루를 만든 특이한 배치 구조의 양식이다.
소쇄원, 식영정, 취가정, 환벽당을 양품에 안고
광주댐 너른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증암천을 그 옛날에는
자미탄이라 불렀다한다.
옛날 이 일대에 자미가 많이 피어 있었다한다.
‘자미’는 배롱나무의 별칭이고 ‘탄’은 여울이라는 뜻이니
개울 양옆으로 늘어선 배롱나무의 아름다움으로 얻은 이름이라한다.
백일홍의 여러가지 이름
자미, 배롱나무, 미끄럼나무, 간지럼나무, 쌀밥나무
꽃말
‘떠나버린 벗을 그리워 한다’는
의미로 무덤가나 정자주변의 한적한 곳에 심는다.
[식영정 내부에 걸려있는 편액]
식영정은 원래 서하당 김성원이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각이며, 식영정 바로 밑에 본인의 호를 따서 지은
‘서하당’이란 또 다른 정각은 최근 복원하였다한다.
[息影亭(식영정)과 성산별곡 碑(비)]
무엇보다 식영정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것은
송강 정철의 가사 ‘星山別曲(성산별곡)’이다.
조선조 사대부들은 관직에선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
하였고, 관직에서 물러나면 토지를 근거로 한 修身齊家(수신제가)에
힘쓰며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의 삶을 누렸습니다.
성산의 아름다운 四季(사계)와 전원 생활의 풍류를
시로 풀어내 노래한 송강의 유쾌한 정서가 식영정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星山別曲(성산별곡)’의 탄생에 기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星山別曲(성산별곡) 碑(비)]
식영정 앞산을 두른 성산(별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송강별곡의 첫구절은,
주인 김성원을 부르는 노래로 시작된다.
어떤 길손이 星山(별뫼)에 머물면서
棲霞堂(서하당) 息影亭(식영정)의 주인아 내 말을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 산중에 들고 아니 나오시는가
松根(송근)을 다시 쓸고 대 평상에 자리 보아
잠시간 올라 아 어떤가 다시 보니
하늘가에 뜬 구름이 서석(無等山)을 집을 삼아
나는 듯 드는 모습 주인과 어떠한고
滄溪(창계)의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렀으니
직녀의 좋은 비단 그 누가 베어 내어
잇는 듯 펼쳐 놓은 듯 요란스럽기도 하구나
산중에 冊歷(책력) 없어 사계절을 모르더니
눈 아래 펼쳐진 경치 철철이 절로 나타나니
듣는 것 보는 것 모두가 신선세상이로다
……..(中略)
[芙蓉堂(부용당) 전경]
식영정 아래에는 1973년에 ‘松江集(송강집)’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을 건립하였으며, 1972년에는 부속건물로
芙蓉堂(부용당)과 棲霞堂(서하당)을 건립하였다.
[芙蓉堂(부용당)]
주변에는 정철이 김성원과 함께 노닐던 紫薇灘(자미탄),
노자암, 견로암, 芳草州(방초주), 釣臺(조대), 瑞石臺(서석대)등
경치가 뛰어난 곳이 여러 곳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광주호의 준공으로
거의 물 속에 잠겨버렸다한다.
[芙蓉堂(부용당)에서 인증샷]
식영정에서 뒤 오솔길을 따라 내려와 넓은 뜰로 들어서면
김성원이 거처하던 棲霞堂(서하당) 터(1560년)와 부용당(1996년 복원)이 있다.
[부용당 인공 연못]
1972년에 지어진 인공 연못은 부용당에 딱 맞춘 듯한 연못이다.
식영정입구는, 부용당과 서하당의 건물이 우선 눈에 들어와
그곳이 식영정인가 하고 둘러보고 쉽게 지나쳐 버릴 것 같다.
안내판을 눈여겨 읽지 않으면, 돌계단 그 위에 올라가야
식영정이 자리한 것을 모른채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도 있을것 같다.
[棲霞堂(서하당)]
대개의 ‘정자’는, 벽은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만든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잠시 머물러 쉬어가며 강을 굽어본다든가
아름다운 주변 풍광을 본다든가 땀을 식히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쉼터의 역할을 하였다.
[藏書閣(장서각)]
책을 간직하여 두는 書庫(서고)
‘松江集(송강집)’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해 세운 藏書閣(장서각)
[부용당 뒷쪽에 있는 사당 삼문]
이곳은 문이 닫혀 있었으며,
낮은듯 보이는 돌담도 둔덕위에 있어
담너머로 담기에도 적당하지 않아 삼문만 담고 돌아섰다.
[뒷쪽에서 담은 부용당 전경]
식영정 가는 길은 두 곳이 있다.
정면 돌계단으로 올라가서 부용당쪽으로 내려오는 길과,
부용당 뒷쪽길을 이용해서 식영정에 다다르는 길도 있다.
어디로 가나 그건 찾아가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지만,
어디를 통해서 가나 문화재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면 다 같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