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222번지
[芝薰文學館(지훈문학관) 현판]
현판 글씨는 지훈선생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쓴 현판이라 한다.
[芝薰 文學館(지훈 문학관) 전경]
현판을 쓴 문학관을 들어서면 170여 평 규모에
단층으로 지어진 목조 기와집이 ‘ㅁ’자 모양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문학관 출입구]
趙芝薰(조지훈, 1920~1968) 시인, 국문학자
본관 漢陽(한양). 본명 東卓(동탁). 아호 芝薰(지훈)
아버지 趙憲泳(조헌영), 어머니 全州柳氏(전주류씨)의 4남매 중 둘째 아들이다.
1920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조부는 고을의 이름높은 한학자였고, 부친 趙憲泳(조헌영)은
일본 중앙대 영문학과를 나와 제헌 및 2대 국회의원을지내다, 6.25 때 납북되었다.
[시청각실 출입구]
어려서는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3년 간 고향의 보통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했다.
조부의 의도에 따라 한학을 공부하면서도, 한편으론
부친과 그의 형 세림의 영향으로 신학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당시의 각종 잡지와 서적을 두루 읽었다.
문학관에는 그의 육필원고,
시집을 비롯한 유품, 사진등 300여점이 전시돼 있다.
[趙芝薰(조지훈)선생 동상]
1939년 ‘文章(문장)’지를 통햐여 ‘古風衣裳(고풍의상)’,
‘僧舞(승무)’, ‘鳳凰愁(봉황수) 등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문학관 내부]
[문학관 내부 2]
[선생의 대표시 승무, 봉화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쓴 조지훈 시 도라지꽃]
[선생의 초상화와 서예 도구]
[문학관 내부 3]
금관문화훈장과 시인의 체취가 느껴지는 나비낵타이
생전에 쓰시던 안경, 라이타, 담배파이프, 도장등이 진열되어 있다.
손때묻은 장갑, 부채 책등등…
모시두루마기와 삼베바지도 전시돼 있다.
[감사장]
[육필원고, 시집을 비롯한 유품]
조지훈시인은 광복 후 한글학회 국어교본 편찬원이 되어
우리 손으로 된 최초의 국어교과서와 국사교과서를 편찬하였다고 한다.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문우들과 함께 대구에서 <문총구국대>를 조직하여
전선을 찾아 종군 작가로 활동했다.
데레사
2016년 8월 9일 at 7:58 오전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참 즐겨 읊었지요.
새삼 옛 시집을 꺼내읽어 볼려고요.
초아
2016년 8월 9일 at 9:59 오후
저도 즐겨외웠습니다.
시험문제에도 자주 등장을 하였지요.
요즘은 책하고는 담을 쌓고 지낸답니다.
많이 게을러졌어요.
찬바람이 불면 책과 가까이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