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30호
[대구 구 제일교회]
제일교회는 경북지방에 처음 생긴 기독교회로,
선교사들이 이 지방을 개화시키기 위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했던 곳으로 선교사들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하였던 거점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이다.
고종 32년(1895) 부산에 있었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구로
옮겨지고, 광무 2년(1898)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계속해서 신도가 늘어 1908년에 재래양식과
서구 건축양식을 합작시킨 새로운 교회당을 지었다.
[정면에서 담은 제일교회]
현재 이 건물의 전체적인 양상은 평면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고,
앞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오른쪽에는 종탑을 세운 간결한 고딕 건물이다.
대구 제일교회는 대구의 수많은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 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한
상징물로서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33년 신도들의 헌금과 중앙교회의 성금으로
교회당을 새로 짓고 ‘第一敎會(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4년 새로운 제일교회가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에
건립되면서, 현재 이곳은 선교관으로 역사관으로 쓰여지고 있다.
[안내판과 제일교회 50주년 기념비 전경]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글 내용 2]
[제일교회 50주년 기념비]
[좌측 안내판 전경]
[목사 安義窩(안의와, 설립자 아담스의 한국명) 선교 기념비]
안의와 목사(Rev. James Edward Adams)는
대구에서 처음 교회를 설립하고, 제일 처음 초등학교와
남자 중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는 대구, 경북 장로교회의 창시자가 됨과 동시에
대구기독교학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안의와의 집안은 대를 이어 복음화에 이바지하였다.
그 결과 안의와 집안은 대구, 경북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큰 업적을 남겼다.
최초의 순교자를 탄생시킨 것도 안의와 집안이었다.
[앞쪽 골목길에서 담은 제일교회 전경]
제일교회내부를 둘러보기위해 몇번의 발걸음을 하였는지…
그러나, 들릴때마다 바깥대문이 잠겨져 있다.
바깥대문이 열려 있을 때도 건물 내부로는 ‘외부인 출입금지’란 팻말이
걸려 있어 들어가보지 못하고 되돌아와야했다.
검색을 해 본 결과 토요일과 일요일엔 개방한다기에
토요일 시간을 내어 들려보았지만,… 역시…여러가지 사정상
개방 하지 않고 있다 하네요.
시내에 볼일이 있어 들릴 때면 행여하고 다시 또 발걸음을 할것같다.
혹시 둘러보게되면 내부는 그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데레사
2017년 2월 14일 at 8:45 오전
교회가 겉모습만 봐도 고풍스러워요.
서울의 정동교회, 옛날 이승만 대통령이 다녔던 교회도
저런 모습이거든요.
나, 이제 대구를 안 가보고도 다녀온듯 많이 알게되었답니다.
덕분에요.
초아
2017년 2월 14일 at 10:51 오후
오래된 건물이라 더욱 그렇게 보이는것 같아요.
정동교회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아직 가보진 못하였어요.
아직도 소개 못한 곳이 많아요.
천천히 소개해드릴게요.
journeyman
2017년 2월 14일 at 11:01 오전
예전에는 아무나 들어와서 기도하라는 의미로 교회들이 개방되어 있었는데
요즘에는 도난과 절도를 비롯해서 사건, 사고도 많아지고
신천지라는 집단이 난입해서 신도들에게 분란을 일으킨다고도 하네요.
교회는 마음 편히 기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초아
2017년 2월 15일 at 5:53 오전
이 글이 왜 스팸으로 처리되었을까요?
스팸글을 삭제하려 들려 살펴보다가 보게되었어요.
스팸이 아닙니다. 승인의 절차를 거쳐 모셔왔습니다.
*
아무래도 여러가지 이유중에 그런 이유도 있을것 같습니다.
교회는 누구나 들려 마음놓고 기도할 수 있는 곳이여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진정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