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계단 아랫쪽에서 담은 교구전시실 출입구 전경]
[순교의 꽃이 핀 교구 100년 현판]
[교구전시실 현판]
[입구쪽에서 담은 교구전시실 내부 전경]
드망즈 주교의 말씀이 걸려있는 전시실을
들어서면서 대구대교구 약사를 만날 수 있다.
[대구대교구 약사]
[입구에서 담은 교구전시실 좌측 전경]
전시실에서는 대구대교구 발전사와 이윤일 성인의 일대기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대구대교구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좌측 대구대교구 역사 스테인드글라스 자료]
[우측 이윤일 성인 과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스테인드글라스 자료]
[교구전시실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애니메이션 편집]
[출입구 옆 전시된 자료]
[대 교구장 안세화 주교의 주교좌 및 장궤틀]
[전시실 내부 전경]
[교구전시실 안쪽 전시된 자료]
[교황 요한 바오로2세 관련 전시물]
아래에는 교구전시실에 전시된 여러가지 자료들을 소개합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을 이장한 관]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나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 11월 18일,
중평리(여우목)에 천주교 비밀 교우촌이 있다는 사실을 문경관아에서
전해들은 포졸들이 습격하여 성인을 비롯한 신자 30여명이 붙잡혔다.
대원군의 명령으로 사형집행되기 위해 1867년 1월 4일
대구관아로 압송되었고, 압송되기 전에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나는 이제 순교하러 떠난다. 너희들은 집에 돌아가거든
성실하게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여라. 그리고 꼭 나를 따라오너라.”
1867년 1월 21일, 대구 남성 밖에 있는 병영(관덕정이 있었던 곳)
에서 경상감사에 의해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성인의 시체는 처음, 형장 근처에 임시 매장되었다가,
얼마 후 아들들이 비산동 날뫼 뒷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 성인의 유해는 여러곳을 이장하였다가
1987년 1월 21일에 대구 교구청 성모당에 안치, 이문희(바울로)
대주교에 의해 1987년 1월 21일에 대구대교구의 제2주보성인으로 선포되고,
1991년 1월 20일 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 성당으로 이송되어 제대 아래에 봉안되어 계신다.
성인은 1968년 10월 6일에 복자위에 올랐다가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성인품에 오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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