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3동 219-3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23호
[드망즈홀(설립자관) 2관 현판]
[전시관 내부에서 담은 르망즈홀(설립자관) 2관 출입문쪽 전경]
[드망즈주교]
1911년 4월 8일 교황 비오 10세는 조선교구를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분리하였으며 드망즈 주교를 대구교구장으로 임명하였다.
[전시관 내부]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드망즈주교는 숙소조차 없어
임시로 주교좌 성당 근처 한옥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설립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였다.
[전시관 내부 2]
그만큼 성유스티노신학교 설립은 드망즈 주교의
가장 큰 업적이며 온 정성을 쏟은 사업이었다.
신학교야말로 교회의 모든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시관 내부 3]
그의 노력으로 한국 교회는 대구교구가 창설된 지
25년 만에 전주교구와 광주교구를 분리시킬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전시관 내부 4]
드망즈주교는 신부. 주교로서 40여 년 동안을 오직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한 전교에 힘썼으며, 특히 그 중의
27년 동안은 대구교구장으로서 교구 발전에 뛰어난 공적을 남겼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내 사제 휴양소에서 임종전의 드망즈 주교]
1914년에 57명으로 시작한 성유스티노신학교는 드망즈주교가
사망한 1938년 당시 118명이 수학하고 있을 정도로크게 성장하였다.
[전시실 내부 5]
드망즈홀은 성유스티노신학교 설립자관으로
드망즈주교의 생애와 관련된 문서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으로 떠나는 선교사들 빠리 외방선교회 사제들의 파견식(1865)]
[안내 글과 사진 설명 내용]
[전시관 내부 6]
[전시관 내부 7]
[祭衣(제의)]
[초대 교구장의 모관]
서정길 대주교와 이문희 대주교도 주교 성성식 때 이 관을 사용하였다.
모관[주교관] : 교황, 추기경, 대수도원장, 주교가 의식 때에
착용하는 모자 속에는 두꺼운 종이등을 넣었고 바깥에는 비단이나
린넨으로 된 두 장의 뾰족한 천으로 덮여 있다.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벗어야 한다.
[전시관 내부 8]
내일은 3관을 소개하려 합니다.
데레사
2017년 4월 12일 at 8:44 오전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님들의 활약이 컸지요.
성지에 가보면 대부분의 신부님들이 그곳 소속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전교를 했지요.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요.
고마워요. 초아님.
초아
2017년 4월 12일 at 10:01 오후
맞아요.
그분들께 감사하지요.
그러나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더 많이 잊고 지내는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Pingback: 조선미디어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