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산 32-1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0호
[金宇顒(김우옹) 神道碑(신도비)전경]
신도비와 묘소는 성주 대가면 옥화리에 자리하고 있다
[神道碑(신도비)와 안내판 전경]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神道碑(신도비)]
거북이 형상을 한 비좌와 비신,
그리고 두 마리 용을 조각한 비두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질은 비좌와 비두가 화강석이고, 비신은 烏石(오석)이다.
[우측 옆에서 담은 神道碑(신도비) 전경]
비문은 갈암 이현일에 의해 숙종 15년(1689∼1704) 사이에 지어졌고,
글씨는 미수 허목의 사후 그 글씨를 집자하여 사용하였다.
이 신도비는 경종 3년(1723)에 세워졌다.
[神道碑(신도비) 뒤 전경]
神道碑(신도비)는 그 주인공의 역사적 비중과
더불어, 비문 찬자와 집자한 서체 등에 특색이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神道碑(신도비) 뒤쪽 墓域(묘역) 전경]
墓(묘)는 神道碑(신도비)를 지나 둔덕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東岡(동강) 金宇顒(김우옹) 墓域(묘역) 전경]
東岡(동강) 金宇顒(김우옹 , 1540~1603)
상주 대가면 칠봉동 사도실에서 태어났다.
용모가 뛰어났으며, 기질이 단아하며 말하는
것이나 노는 것이 어릴 때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한다.
[좌측에서 담은 墓(묘) 전경]
일찍부터 교육을 받아 문장이 뛰어나고 남명 조식의 문인이자
외손서이며, 망우당 곽재우와 동서지간으로 심경근사록을 배우고,
이어서 퇴계 이황의 제자가 되어 퇴계의 높은 학문의 정맥을 이어 받았다.
[우측에서 담은 墓(묘) 전경]
동강선생은 화려한 벼슬살이를 거쳤다.
[墓(묘)와 墓碑(묘비) 전경]
선생은 1567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정자를 지내고
수찬, 응교를 거쳐 선조 6년(1573), 호당에 뽑혀 사가독서하고
이로부터 전적, 교리, 직제학 등을 역임.
10년 후 삼사인 대사헌, 대사간, 대사성, 양관인 홍문관,
성균관, 제학을 거쳐 예조, 이조, 형조의 참판을 지냈다.
그 후 4년이 지나, 안동부사로 나가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일으키는 것을 행정의 근본으로 삼아 안동부민이
그 덕을 사모하여 잊지 않기 위해 비를 세웠다.
선생은 선조 22년(1589), 기축옥사(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 회령으로 유배되었다.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고,
1603년(선조 36년) 11월에 돌아가니 향년 64세였다.
선생이 돌아가자 조정에서 선생에게 호성공신으로 이조판서,
대제학을 증직하고 숙종 때 ‘文貞(문정)’이란 시호를 내렸다.
선생의 行狀(행장)은 동향 친구 한강 정구가 기록하였다.
[墓碑(묘비)]
東岡 金先生之墓(동강 김선생지묘)
새겨져 있으며,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墓(묘) 후경]
[墓(묘)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일찍이 남명 조식선생은 다른 선비들과는 달리
敬義劍(경의검)이라 이름한 검을 차고 또 허리춤에 달린
惺惺子(성성자)란 이름의 방울소리로 그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 했다고 전한다.
[묘에서 내려오며 담은 신도비 전경]
그리고 이 성성자를 전해 받은
인물이 바로 동강 김우옹 선생이라고 한다.
그것은 평소 그의 바르고 진중한 마음가짐을 보고
그의 도를 전할 또 하나의 수제자로 그를 인정했음을 전한다.
저서로는 ‘동강집’, ‘속자치통감강목’
등이 있으며, 편서로 ‘경연강의’가 있다.
먹구름이 몰려올듯 곧 비라도
한줄기 뿌릴듯 하다가도 금방 또 햇님이 반짝
[신도비 좌측 옆 옥화교회 전경]
이 묘소를 찾기 위해 오르락 내리락 서너번은 하였다.
네비에 주소를 넣어 왔건만, 오락 가락
목적지 부근에 다 왔다는 말만 하곤 끝.
지나가는 분들께 여쭈어보았지만,
좀더 가야한다해서 좀더 가다가 다시 여쭈었더니
이번엔 지나쳐 왔다한다.
묘역 아래쪽 도로에서 시소타기도 아니고 올랐다 내렸다…ㅠ.ㅠ
동사무소에 들려 여쭈었더니, 이 주소로는 찾아가기 어려우니
‘옥화교회’를 찾아가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드디어 ‘옥화교회’ 도착
작은 길 건너 교회 옆쪽에 신도비가 커다랗게 세워져있는게 보였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철리…^^
행여 찾아보시고 싶으신 분이 계신다면
옥화교회를 찾아 가셔요.
지도에도 옥화교회는 나오는데…
동강 김우옹선생의 신도비나 묘는 나오지 않네요.
사설이 길어졌네요.
오늘의 답사를 마칩니다.
데레사
2017년 11월 22일 at 2:03 오후
우리집 부근에도 옛 선인들의 묘나 신도비 이런게 더러
있는데 그런곳에는 한번도 가보질 않았어요.
그냥 묘지라고 하니까 약간 무섭기도 하고요. ㅎ
초아님 덕분에 나도 이제는 한번 들러보고 싶어 졌어요.
초아
2017년 11월 22일 at 5:11 오후
저도 처음엔 불만이 많았어요.
겉으로는 평온한척하였지만,
풍수를 좋아하는 남편 기사로 취직한 제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라고나 할까요. ㅎ
지금은 전천후가 되어 가리지 않고 올리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