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 401-2
[광거당 전경]
南坪文氏(남평문씨) 세거지인 인흥마을의
書舍(서사) 및 學堂(학당)으로 쓰인 건물인 廣居堂(광거당)
처음 이곳에 들렸을 땐 닫힌 문 앞에서 아쉽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광거당 솟을 삼문]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저 또한 간절히 원하였기에 들릴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역시 닫힌 문 앞에서 단절감을 느끼고 돌아와야 했는데…
귀인을 만났지요. 바로 이곳에서 문화해설을 해주시는 문화해설사님.
목에 걸고 계신 명찰을 보고 알아보았다.
광거당 문이 닫혀 있어서 다시 들렸는데… 하고 말끝을 흐렸더니,
그곳 지키시는 분이 잠시 외출을 하였는 것 같다면서 열어주시겠다 하신다.
물론 정중히 인사도 하고 여쭈었지요.^^
[헛담]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장 마지하는
흙과 숫기와로 쌓은 헛담이 본채의 직접적인 노출을 막고 있다.
기와로 만든 한 송이의 꽃잎이 담의 밋밋함을 메꾸어주는 것 같다.
[헛담과 광거당 전경]
고종 9년(1873) 後隱(후은) 文鳳成(문봉성) 부자가
지은 건물로 문중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라 한다.
[광거당 전경]
정면 4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ㄱ’자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면 좌측 3칸에 전퇴가 설치되었고,
우측 1칸 앞으로는 누마루가 돌출되어 있는데 누마루는 툇마루보다 1단 높게 만들어졌다.
[廣居堂(광거당) 현판]
조선 후기 이름난 서화가이자 문신이었던 석촌 尹用求(윤용구)의 글씨라 한다.
[壽石老苔池館(수석노태지관) 현판]
秋史 金正喜(추사 김정희) 의 글씨체로 알려진 이 현판은
글자 그대로 보면 ‘수석과 늙은 이끼가 끼어있는 연못이 있는 집’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누 마루 안쪽에 걸린 高山景行樓(고산경행루) 편액]
중국 개화기의 학자인 張鍵(장건)의 글씨이며,
장건의 글씨가 이 집에 오게 된 연유는 당시 중국에 망명해 있으면서
장건과 교류하고 있던 사학자 창강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라 한다.
[누마루와 고산경행루 편액 전경]
高山景行樓(고산경행루) 편액의 글이 담고 있는 뜻은
이 마루에 앉아 높은 산의 웅지와 아름다운 정취를 느끼겠다는 뜻이라 합니다.
[좌측에서 담은 누마루 전경]
[좌측에서 담은 광거당 전경]
[광거당 뒤 굴뚝]
[광거당 뒤 전경]
[누마루 옆 전경]
[누마루 옆 전경]
[누마루 아래쪽]
누마루 아래에는 文人石(문인석)을
옮기는데 사용했다는 옛날 수레가 보존되어 있다.
[우측 옆에서 담은 광거당 전경]
이곳에서 1980년대 장미희가 주연한 영화 ‘황진이’의 촬영 장소였다 합니다.
[세거지 입구에 달의 연인 촬영지 안내판]
달의 연인 촬영지라 세거지 입구에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구요.
또 이곳에서 드라마 촬영도 하였다 하는데..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광거당쪽에서 담은 솟을 삼문]
문을 열어주신 문화해설사님의 뒷모습도 함께 담겼네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고마움의 마음을 전해봅니다.
[외양간 빗장과 빗장의 둔태]
[돌아오며 멀리서 담은 광거당 전경]
광거당은 남평문씨세거지 가장 안쪽에 있는 한옥인데
그 규모가 상당하고 평소에는 개방을 하지 않아 잘 보존이 되어 있다.
수백당(수봉정사)와 광거당은 상시 개방인 줄 알았는데,
광거당은 상시 개방이 아닌 광거당은 지키시는 주인 어르신의
계실 때만 허락을 얻고 들리는 곳인것 같다.
혹 이곳을 들리시는 분은 문이 닫혀 있다면,
문화해설사님께 부탁을 드려 동행한다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 길 왔다가 되돌아가면 안 되잖아요.
부탁드려 꼭 들러보시고 가셔요.^^